★3천 년 전 이탈리아반도 중부 지역에는 에트루리아인이 독립 문명을 이루고 살았다. 그들은 언덕에 집을 짓고 저지대에는 시신을 매장했다. 그때 여러 부족 집단이 이탈리아반도로 이주해 와서 에트루리아인과 대립했는데, 라틴어를 쓰는 부족 하나가 B.C. 8세기경 테베레강 동쪽 언덕에 작은 왕국을 세웠다.
라틴인들은 에트루리아인의 묘지가 있는 저지대에 흙을 채우고 배수로를 냈으며 바닥에 돌을 깔아 시장을 만들었다. 종교시설과 행정기관, 사법기관이 들어오자, 그 저지대는 도시의 경제, 정치, 문화의 중심이 되었다. 포로로마노가 탄생한 것이다.
로마가 공화정을 실시한 때 이곳에서 정치인들은 연설로 시민들의 마음을 샀고, 장군들은 개선 행사를 열었으며, 시민들의 축제를 했다.
포로로마노 구경은 폐허 산책과 비슷했다. 그곳의 건축물들은 저마다 흥미로운 신화와 역사를 품고 있다지만, 우리 눈에는 다 그게 그거 같아 보였다. 집터가 축구장만 했다는 ‘막센티우스 바실리카’는 커다란 아치형 천장만 남아있었다.
천장을 덮었던 도금 타일은 성당 지붕 건축자재로 뜯게 나갔다고 한다. 불의 여신을 모신 ‘베스타 신전’은 돋보이게 아름다웠지만 기둥 몇 개와 벽 채 일부만 남아있어서 실감할 수 없었다.
유시민의 『유럽 도시 기행 1』 (주, 도서 출판. 아름다운 사람들) 114~116쪽에서 인용.
*각설하고 오늘도 여전히 올레길을 걸어보자.
▲그런 톨칸이를 바라보는 언덕 위에서 우도봉(132m)을 올려다보면서 관광객들이 스마트폰을 들이대고 있는데, 그 옆에 선 당당한 시비 하나가 언뜻 말을 걸어온다. 말을 거니 나도 답해야 하는 것이 예의다. 말을 걸어온 시의 전문은 이러하다.
<그 섬>
김철수(우도 출신)
말없이 흐르는 파도를 타고/ 떠나가는 뱃머리에 앉아/ 멀리 우도를 바라본다// 그녀가 밟고 간 노을 위로/ 애잔한 발자국만 서러워/ 뱃고동도 길게 운다// 못다 한 말 대신/ 꽃잎을 뿌려놓고/ 서러움을 참는다// 만남은 또 이별을 부르고/ 아픔만 남긴다.
아하! 시어에 낯선 말은 한마디도 없는데 시가 난해하다. 시인의 가슴에 아픔만 남긴 여인이 떠나갔는데, 시인도 그 여인을 찾아 떠나가는지? 아니면 우도 출신 시인이니 고향을 버리지 못하고 여기 남아서 아픔을 달래고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아무렴, 어떤가!
인연이 되면 다시 만나게 될 것을, 이별의 아픔 때문에 만남을 두려워하지는 말고, 만나라! 만나서 죽도록 사랑하라! 의상대사와 선묘 아씨처럼 죽어서 후회하지 말고, 그 섬이든 여인이든 누구든……
시인에게 아픔을 준 여인을 생각하며 내려오는데, 한반도를 닮았다는 암반이 있다는데 그것이 <한반도 여(암반)>인데, 우도 지석묘가 있다는데 그것이 저 안내판 밑이라는데, 해변으로 돌탑들이 무리를 지어 무성하다는데, 그것이 이름하여 <소원기원 돌탑길>이라는데……
앞에 가는 길손이여! 그냥 가지만 말고 소원 한번 빌고 가소! 다들 무엇이 바쁜지 그냥 간다. 그냥 가는 길은 바로 아침에 도착한 천진항으로 이어진다. 이로써 우도를 한 바퀴 돌아서 처음 그 자리에 다다랐다.
사람도 청춘 시절 고향을 떠나서 낯선 도시를 돌고 돌아 마침내 중늙은이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오듯이 우도 올레도, 인생사 돌고 돌아 흙으로 돌아가듯이 이와 같으니, 감회가 깊지 않은가! 어허, 내가 너무 감상적인가, 아닐 것이다. 역시 1~1코스는 제주올레의 축소판이라 할 만하다.
포구에는 시간마다 오가는 연락선이 이미 대기 중이다. 승선하려는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섰다. 우리도 긴 줄에 매달려서 떠나기 싫은 마음을 다잡아 배에 올랐다.
길게 우는 뱃고동 소리에 눈을 감고, 나는 김철수의 <그 섬>을 다시 품었다. 아니 언젠가 다시 돌아와서 그때는 좀 더 오래 품게 될 것이라 예감하면서……,우도를 생각하면서……,생각하니 우도는 그런 섬이다. 그런 섬이 우도다.
천진항을 뒤로한 연락선 상에서 바라보는 한라산 자락의 원경을 천진관산(天津觀山)이라 하고, 길게 뻗은 우도의 근경을 전포망도(前浦望島)라 하여 우도 8경에 넣었으니 이렇게 화창한 날씨에 선상의 선남선녀들이 어찌 가만히 있겠는가.
디카 든, 스마트폰이든, 쉴 사이가 없었다. 그날 오후 우리는 이른 저녁을 먹고 김포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로써 네 번째 여행에서 네 코스를 걸었다. 몸은 나른하다만 마음만은 행복이 넘쳐났다. -81)-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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