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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 길 위의 풍경>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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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석봉1 2024. 11. 14.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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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세오를 떠나면서 팔라티노 쪽에 있는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을 잠깐 살펴보았다. 콜로세오와는 별 관계가 없는 이 개선문이 멀쩡한 상태로 남은 것은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명성 덕분이었으리라.

 

4세기 초 여러 공동 황제와 부황제의 대립과 다툼으로 정치적 혼돈에 빠져 있던 로마를 힘으로 평정하고 단독으로 제국을 통치했던 그는 로마제국 최초의 기독교도 황제였다.

 

그는 그냥 예수를 믿기만 한 게 아니었다. 전임자들이 몰수했던 교회의 재산을 돌려주었고 지금의 카톨릭 교황에, 해당하는 로마 주교에게 궁전을 기부했으며, 새 수도로 정한 콘스탄티노플 황궁 바로 앞에 하기야 소피아라는 소박한 교회도 지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기독교는 수많은 소수 종교 가운데 하나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내전을 평정한 직후 세운 이 개선문 상단의 부조는 다른 황제들의 기념비에서 돌을 떼어와 만든 것이라 예술적 평가의 대상은 되지 못했다.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주변에 기관단총을 든 군인들과 무장 차량이 있었다. 개선문 경호를 목적으로 그들이 거기에 있었던 건 물론 아니다. 유럽 여러 곳에서 끔찍한 살상 행위를 저지른 극단주의 이슬람 무장단체 IS(Islamic State)의 테러를 막기 위한, 조처였다.

 

그들 덕분에 집시와 소매치기에 대한, 이야기가 헛소문으로 느껴질 만큼 콜로세오 일대는 질서정연했다. 게다가 군복을 입고 총을 든 이탈리아 청년들은 영화배우가 아닌가 싶을 만큼 미남이었다. 기념 촬영을 청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는 이가 없기에 참고 지나쳤다.

 

유시민의 유럽 도시 기행 1(, 도서 출판. 아름다운 사람들) 111~113쪽에서 인용.

 

*각설하고 올레길을 걸어보자.

 

해수욕장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나서니 오래된 막돌 비석 두 개가 높게 서 있다. 하나는 <바르게 살면 미래가 보인다>이고, 다른 하나는 <身土不二>. 둘 다 식상하고 하나 마나 한 말씀으로 치부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아니 지금은 다르다. 가슴을 차고 오른다.

 

<바르게 살면 미래가 보인다>는 누구나 이해하는 일반적인 정신이다. 그러나 한자로 쓴 <신토불이>는 아는 사람만이 안다. 그래서 여기 이 돌을 세운 뜻, 전문을 소개한다.

 

-사람은 땅에서 태어나서 땅으로 돌아가니/ 자신의 몸은 둘이 아닌 하나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물도 땅을 생명의 근본으로 하는 것으로서/ 우리 땅에서 이루고 가꾼 농산물이/ 우리 몸에 가장 잘 맞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우리 체질과 건강에는 우리 땅에서 난 것이 가장 좋고(신토불이)/ 안전성과 믿음성이 있으며 농어민을 위한 길입니다. 1996. 11 , 사단법인 한국농업경영인 북제주군 연합회 우도면 회.-

 

<신토불이(身土不二)>가 어찌 농어민만을 위한 구호겠는가. 여기에는 식량주권과 자아 발견, 나아가 인류 평화까지 포함된 생명 사상이 들어 있음을 선진국들이 증명하고 있다.

 

<신토불이 운동>90년대 초에 농협이 선봉이 되어 벌인 국민 운동이었다. 신토불이 사상은 인간이 생존하는 한 지속되어야 할 삶의 미덕이다. 참고로 1111일은 농업인의 날이니 그날을 기념하여 이 비석을 세웠을 것이다.

 

포구 앞 광장을 벗어나려는데, 하얀 시비 하나가 또 기다린다. 시에 약한 길손, 시를 읽는다. 제목이 좋다 <우도에 가면>, 서정혜 시인의 시다. 전문을 소개한다.

 

밤새 별을 품은 파도가/ 모래 둔덕에 앉아 기웃거린다/ 싱싱한 새벽 건져 올리는 해안선/ 물풀은 한없이 자유롭고/ 돌아와 누우면/ 가슴팍을 찾아드는 뱃고동 소리/ 단단하게 속이찬 하늘/ 깊이 뿌리박고 꿈을 부르면/ 비로소 닻을 내리는 바다// 목쉰 등대 몰아대는/ 우도의 바람은 불지 않고 늘/ 운다.

 

이름도 고상한 시인은 시집 세 권을 상재 한 중견이라 한다.

 

길에서 만난 시는 언제나 가슴 설렌다. 파도, 모래, 해안선, 물풀, 뱃고동, , , 바다, 등대, 우도에 오면, 시인의 눈에는 모두가 우도요 모두가 사랑이다. 그래서 시인은 우도의 바람은 불지 않고 운다고 했으리라.

 

우도 포구를 벗어난 올레는 갈림길에서 들길로 접어든다. 왼쪽으로 난 해안도로 끝엔 섬의 섬, 비양도(飛陽島)가 보이는데 올레길은 그 길로 가지 않는다. 여기 비양도는 한림읍의 비양도와는 양 자가 서로 다르다. 이곳은 볕 양()인데 한림의 비양도는 떠오를 양()이다.

 

이곳 비양도(飛陽島)의 등대와 해신당과 봉수대가 그리도 곱다는데 언제 다시 우도(牛島)에 오면 꼭 당신을 품으리라. 생각하며 오른쪽 길로 꺾어 조일리 사무소를 지나 평원을 기어가는데,

 

저 멀리 영일동 포구와 검멀레 해안이 손짓으로 불러본다만 시간이 부족한 올레꾼은 곁눈도 돌리지 못하고 곧장 <쇠머리오름> 가파른 계단 길로 들어선다.

 

계단 길을 한 번 쉬어서 산허리에 올라서니 별천지가 펼쳐진다. 언제였던가, 한라산 백록담을 내려다본 기분에 버금가는 풍경이다. 우도등대가 서 있는 우도봉을 정점으로 하여 그 아래 조그만 오름이 감싸고 있는 우도저수지가 마치 백록담과 흡사하다.

 

여기서 바라보는 푸른 잔디와 하늘과 바다가 어우러진 모습을 지두청사(地頭靑沙)라 하고 우도 8경의 하나에 넣었다. 나는 등선을 걸어 산 정상을 오르면서 왼쪽의 벼랑으로 쉼 없이 밀려오는 파도와 오른쪽으로 펼쳐지는 곡선의 푸른 평원에 깊이 빠져들었다. -79)-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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