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로세오를 떠나면서 팔라티노 쪽에 있는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을 잠깐 살펴보았다. 콜로세오와는 별 관계가 없는 이 개선문이 멀쩡한 상태로 남은 것은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명성 덕분이었으리라.
4세기 초 여러 공동 황제와 부황제의 대립과 다툼으로 정치적 혼돈에 빠져 있던 로마를 힘으로 평정하고 단독으로 제국을 통치했던 그는 로마제국 최초의 기독교도 황제였다.
그는 그냥 예수를 믿기만 한 게 아니었다. 전임자들이 몰수했던 교회의 재산을 돌려주었고 지금의 카톨릭 교황에, 해당하는 로마 주교에게 궁전을 기부했으며, 새 수도로 정한 콘스탄티노플 황궁 바로 앞에 ‘하기야 소피아’라는 소박한 교회도 지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기독교는 수많은 소수 종교 가운데 하나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내전을 평정한 직후 세운 이 개선문 상단의 부조는 다른 황제들의 기념비에서 돌을 떼어와 만든 것이라 예술적 평가의 대상은 되지 못했다.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주변에 기관단총을 든 군인들과 무장 차량이 있었다. 개선문 경호를 목적으로 그들이 거기에 있었던 건 물론 아니다. 유럽 여러 곳에서 끔찍한 살상 행위를 저지른 극단주의 이슬람 무장단체 IS(Islamic State)의 테러를 막기 위한, 조처였다.
그들 덕분에 집시와 소매치기에 대한, 이야기가 헛소문으로 느껴질 만큼 콜로세오 일대는 질서정연했다. 게다가 군복을 입고 총을 든 이탈리아 청년들은 영화배우가 아닌가 싶을 만큼 미남이었다. 기념 촬영을 청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는 이가 없기에 참고 지나쳤다.
유시민의 『유럽 도시 기행 1』 (주, 도서 출판. 아름다운 사람들) 111~113쪽에서 인용.
*각설하고 올레길을 걸어보자.
▲해수욕장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나서니 오래된 막돌 비석 두 개가 높게 서 있다. 하나는 <바르게 살면 미래가 보인다>이고, 다른 하나는 <身土不二>다. 둘 다 식상하고 하나 마나 한 말씀으로 치부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아니 지금은 다르다. 가슴을 차고 오른다.
<바르게 살면 미래가 보인다>는 누구나 이해하는 일반적인 정신이다. 그러나 한자로 쓴 <신토불이>는 아는 사람만이 안다. 그래서 여기 이 돌을 세운 뜻, 전문을 소개한다.
-사람은 땅에서 태어나서 땅으로 돌아가니/ 자신의 몸은 둘이 아닌 하나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물도 땅을 생명의 근본으로 하는 것으로서/ 우리 땅에서 이루고 가꾼 농산물이/ 우리 몸에 가장 잘 맞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우리 체질과 건강에는 우리 땅에서 난 것이 가장 좋고(신토불이)/ 안전성과 믿음성이 있으며 농어민을 위한 길입니다. 1996. 11 월, 사단법인 한국농업경영인 북제주군 연합회 우도면 회.-
<신토불이(身土不二)>가 어찌 농어민만을 위한 구호겠는가. 여기에는 식량주권과 자아 발견, 나아가 인류 평화까지 포함된 생명 사상이 들어 있음을 선진국들이 증명하고 있다.
<신토불이 운동>은 90년대 초에 농협이 선봉이 되어 벌인 국민 운동이었다. 신토불이 사상은 인간이 생존하는 한 지속되어야 할 삶의 미덕이다. 참고로 11월 11일은 농업인의 날이니 그날을 기념하여 이 비석을 세웠을 것이다.
포구 앞 광장을 벗어나려는데, 하얀 시비 하나가 또 기다린다. 시에 약한 길손, 시를 읽는다. 제목이 좋다 <우도에 가면>, 서정혜 시인의 시다. 전문을 소개한다.
밤새 별을 품은 파도가/ 모래 둔덕에 앉아 기웃거린다/ 싱싱한 새벽 건져 올리는 해안선/ 물풀은 한없이 자유롭고/ 돌아와 누우면/ 가슴팍을 찾아드는 뱃고동 소리/ 단단하게 속이찬 하늘/ 깊이 뿌리박고 꿈을 부르면/ 비로소 닻을 내리는 바다// 목쉰 등대 몰아대는/ 우도의 바람은 불지 않고 늘/ 운다.
이름도 고상한 시인은 시집 세 권을 상재 한 중견이라 한다.
길에서 만난 시는 언제나 가슴 설렌다. 파도, 모래, 해안선, 물풀, 뱃고동, 꿈, 닻, 바다, 등대, 우도에 오면, 시인의 눈에는 모두가 우도요 모두가 사랑이다. 그래서 시인은 우도의 바람은 불지 않고 운다고 했으리라.
우도 포구를 벗어난 올레는 갈림길에서 들길로 접어든다. 왼쪽으로 난 해안도로 끝엔 섬의 섬, 비양도(飛陽島)가 보이는데 올레길은 그 길로 가지 않는다. 여기 비양도는 한림읍의 비양도와는 양 자가 서로 다르다. 이곳은 볕 양(陽)인데 한림의 비양도는 떠오를 양(楊)이다.
이곳 비양도(飛陽島)의 등대와 해신당과 봉수대가 그리도 곱다는데 언제 다시 우도(牛島)에 오면 꼭 당신을 품으리라. 생각하며 오른쪽 길로 꺾어 조일리 사무소를 지나 평원을 기어가는데,
저 멀리 영일동 포구와 검멀레 해안이 손짓으로 불러본다만 시간이 부족한 올레꾼은 곁눈도 돌리지 못하고 곧장 <쇠머리오름> 가파른 계단 길로 들어선다.
계단 길을 한 번 쉬어서 산허리에 올라서니 별천지가 펼쳐진다. 언제였던가, 한라산 백록담을 내려다본 기분에 버금가는 풍경이다. 우도등대가 서 있는 우도봉을 정점으로 하여 그 아래 조그만 오름이 감싸고 있는 우도저수지가 마치 백록담과 흡사하다.
여기서 바라보는 푸른 잔디와 하늘과 바다가 어우러진 모습을 지두청사(地頭靑沙)라 하고 우도 8경의 하나에 넣었다. 나는 등선을 걸어 산 정상을 오르면서 왼쪽의 벼랑으로 쉼 없이 밀려오는 파도와 오른쪽으로 펼쳐지는 곡선의 푸른 평원에 깊이 빠져들었다. -79)-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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