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라티노 황궁의 정원을 거쳐 티투스 개선문이 보이는 동쪽으로 계단을 내려오자, 에마누엘 2세 기념관이 높이 솟은 북쪽 카피톨리노 언덕을 향해 포로로마노가 펼쳐졌다.
포로로마노는 라틴어로 ‘포룸 로마눔’, 영어로는 ‘로마 포럼’이다. 유럽 언어에는 라틴어에서 파생한 단어가 많은데, 이탈리아어는 라틴어의 여러 자손 언어 가운데 하나여서 더 그렇다.
로마의 고유명사는 이탈리아어, 라틴어, 영어 표시법이 다 있지만 이 책에선 로마를 돌아다닐 때 알아두면 편리한 이탈리아어 표기를 사용한다. 그래서 원형 공연장을 ‘콜로세움’이 아니라‘콜로세오’라고 한 것이다.
포로로마노는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와 아고라, 플라카 지구를 모두 합친 것 같은 종교, 정치, 경제 활동의 무대로서 공화정 시대에는, 가장 번화한 상업지구이자 정치적 공론장이었지만 지금은 부서진 건축물 잔해를 모아둔 고물상 야적장을 연상하게 한다.
인류가 반복해서 저질렀던 문명 파괴의 현장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공화정 시기 로마 역사를 품고 있는 공간은 여기 말고는 찾기 어렵다.
유시민의 『유럽 도시 기행 1』 (주, 도서 출판. 아름다운 사람들) 113~114쪽에서 인용.
*각설하고 오늘도 올레길을 걸어보자.
▲5월의 풍운아(?)는 한라산 중턱에 목장을 세웠다지만, 외돌개 군신이 환생하신다면 여기에 그의 정원을 세우지 않고 또 어디에 세우겠는가!
오름의 정상에는 설문대할망의 석상 하나가 관광객을 유혹한다. 동전을 던져 소망을 빌어보라고… 제주에는 할망의 전설이 곳곳에 있는데, 할망은 옥황상제의 셋째 딸로 지상에 내려와 제주를 창조하셨고, 영실 오백 나한을 낳으신 제주의 수호신이자 건강과 다산의 신(神)이다.
그런 신이 우도 정상에서 소망 항아리를 받쳐 들고 속인들을 유혹하시니, 세상이 하 수상(殊 常) 한 건지, 그분이 변하신 건지, 모를 일이다. 그뿐일까? 아니다. 석상의 할망은 주름살 하나 없는 젊은 시절이다. 웃는 모습이 귀엽기까지 하니 어째 설문대할망의 거룩한 이미지와는 사뭇 어울리지 않는다. 나만의 생각인지 모르지만.…
오름 중턱에는 인천 팔미도 등대와 미국의 킹스턴 등대, 덴마크 안홀트 등대 등 국내외의 유명 등대들의 조형물을 세워 놓은 <등대마을>이 홀연히 놓여 있는데,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까운 명물로 자리 잡았고, 그 아래는 비단길 같은 평원이 마치 풀빛 치마처럼 펼쳐지고 그 풀빛 치마 위의 풍경들, 풀밭 위의 식사를 즐기는 우마들. 아 황홀하여라.
그뿐이면 더 무슨 말을 하리, 어설픈 기수를 태우고 뒤뚱거리는 승마들, 포장마차 앞에 서서 종이컵을 들어 올리는 손목들, 끼리끼리 손잡고 깔깔거리는 검은 머리들, 작은 파라솔 아래에서 이마를 맞댄 얼굴들, 아! 여기 우도가 아니면 또 어디서 볼까나.
평원을 내려선 우리는 포장마차 귀퉁이에 앉아서 종이컵 몇 잔을 맛보지 않았다면 누가 우리를 우도에 왔었다고 증명하겠는가, 우도의 특산물 땅콩에다가 삼다수로 다스린 그 농주는 애주가가 아니더라도 한 번 맛본 사람이면 잊을 수 <없을걸>이다. 다만 종이컵이라고, 막걸리라고, 얕보다간 큰코다치기가 십상이다.
그러한들 어떤가, 땅콩과 알코올이 햇빛과 화학작용을 했으니, <애비>도 몰라본다는 낮술의 진가를 여기서 만나지 않았다면 또 어디서 만나리.
깡 술을 마셨으니, 안주를 먹을 차례다. 나는 거의 대취한 상태로 조금 아래쪽 공원 입구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식당의 간판 메뉴인 고기국수 한 그릇으로 안주를 대신하니 걸음이 바로 선다.
걸음을 바로 하고 좁은 산길을 내려서니, 철쭉과 보리밭, 푸른 잔디와 야생화가 지천으로 깔렸으니, 길이 아니라 잘 가꾼 미래의 정원 같다. 게다가 취기가 여전하니 취중불언(醉中不言)이면 진군자야(眞君子也)! 하지만 나는 군자이기를 포기하고 콧노래를 부른다. 어허 조오타!
길의 마지막쯤에서 뒤로 돌아 오름을 올려다보니 기암절벽이 장관이다. 이름하여 <톨칸이 해변>, 톨칸이는 촐까니의 변형이고 촐은 꼴, 혹은 건초를, 까니는 큰 그릇이라 하니 톨칸이는 바로 소 여물통이 된다.
해변의 생긴 모습을 보고 지은 이름이리라, 해변 위로는 비가 오면 폭포가 된다는 <비와사폭포>, 그 아래로는 용왕님이 살았다는 <어룡굴>, 모두가 우도가 아니면 만날 수 없는 전설이다. -80)-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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