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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 길 위의 풍경>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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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석봉1 2024. 11. 12.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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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세오에서 포로로마노 가는 쪽에 티투스 개선문이 있다. 로마제국의 제10대 황제인 티투스는 콜로세오를 만든 인물이니 거기에 그 개선문이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티투스는 최고의 행운과 최악의 불운을 모두 겪은 황제였다. 그가 유대 민족주의자들의 반란을 진압하러 예루살렘으로 간 아버지 베스파시아누스 장군과 함께 전쟁터에 있었던 68, 로마제국의 ‘대표 폭군네로 황제가 헤어날 길 없는 정치적 위기에 몰린 끝에 자살했다.

 

황제 자리를 놓고 야심가들이 벌였던 살벌한 내전은 전쟁터에 나가 있던 베스파시아누스 장군의 황제 추대로 결말이 났다.

 

총사령관 자리를 물려받은 티투스는 난공불락이라던 성벽을 무너뜨리고 예루살렘을 점령했으며, 유대 성전에서 약탈한 보물과 수만 명의 포로를 앞세우고 로마에 들어왔다. 티투스 개선문의 부조에는 그 개선 장면이 새겨져 있는데,

 

유대인 포로를 콜로세오 건설 공사에 투입하고 일부 포로와 약탈한 보물을 팔아 공사비를 조달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내가 유대인이라면 이 개선문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을 것이다. 그가 그다지 행복한 인생을 살지는 못했다는 것이 조금 위로가 되기는 했다.

 

79년 제위에 올랐던 티투스 황제는 성격이 온화하고 정적에게 관대했으며 여론을 존중했기 때문에 인기가 있었지만 4년밖에 되지 않았던 재위 기간 내내 끝도 없이 찾아온 재난과 싸우다 지치고 병들어 죽었다.

 

즉위 직후 베수비오 화산이 터져 폼페이 일대가 통째로 파묻혔고, 다음 해에는 로마에 큰불이 났으며, 곧이어 들이닥친 페스트의 확산을 막는 한편 불타버린 로마를 재건하는 와중에 네로의 황궁 연못 자리에 콜로세오까지 지었으니, 로마제국 최강의 토건 황제라고 해도, 지나 치지는 않을 것이다.

 

유시민의 유럽 도시 기행 1(, 도서 출판. 아름다운 사람들) 107~110쪽에서 인용.

 

*각설하고 올레길을 걸어보자.

 

제주올레, 길 위의 풍경1~1코스(우도 코스)

 

우도는 제주도의 부속 도서(島嶼) 중에서 가장 큰 섬이고, 한라산과 성산일출봉에 이어 제주 관광의 3대 필수 코스로 사랑받고 있는 섬이다. 섬은 <둘레가 오십 리요, 바닷길이 십 리>라고 조선 중종 때 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與地勝覽)>이 전하고 있다니 예부터 본섬에서 소리치면 들릴 정도로 가까운 섬이다.

 

전날은 점심을 먹고, 제주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일주도로 버스를 타고 성산읍 고성리 부근에 내려, 올레 2코스를 역방향으로 걸어 성산 반도로 들어왔다. 2코스는 예전에 걸었던 길, 덕분에 두어 시간 다시 걸으니, 친구처럼 고마웠다.

 

성산포 초등학교 부근 조용한 게스트하우스에서 편안한 하룻밤을 지내고, 거기에 비치된 주방 기구를 이용하여 간단한 아침밥을 지어 먹고 길을 나섰다. 게스트하우스는 그래서 편리하다.

 

걸어서 성산포항에 도착하니, 봄날 휴일의 항구는 만원이었고 햇살은 살이 벗겨질 정도로 따갑고 공기는 상큼하고, 따라서 항()의 분위기는 황홀하였다. 3일을 비 오고 바람 불어 우중충하더니, 오늘은 기어이 좋은 일을 내시고 말았다.

 

제주 본도에서 우도로 가는 길은 뱃길뿐이다. 언젠가 다리를 놓자는 의견도 있었다고 하나 이는 자연을 크게 훼손하는 일이라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것이다. 한편 제주 본도에서 우도 가는 배를 타는 항()은 종달항과 성산포항 두 곳이다. 하지만 성산포항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만큼 종달항보다 성산포항이 배편이 많아 편리하기 때문이리라.

 

성산포항을 떠난 배는 우도봉을 바라보며 서서히 바다로 나아가는데, 삽시간에 우도의 <천진항>에 도착한다. 짧은 선상에서의 풍경을 안고 <천진항>에 내리니 항구는 아담하고 소박하다. 배에서 풀어놓은 관광객들과 어울린 포구는 시골 장터 같은 분위기다.

 

오토바이, 세발이, 스쿠터 대여점들이 관광객들을 유혹하고, 카페나 음식점들은 아침 굶은 길손들을 빨아들인다.

 

포구 광장의 <해녀항일 기념비>의 의연한 모습 자랑스럽다. 우도 해녀들의 항일 정신을 되새기게 한다. 1931~1932년에 일어난 <제주해녀 항일운동>은 이곳 우도와 성산, 구좌 해녀들이 중심이 되어 일어난 운동이었다. 그만큼 우도는 뼈대 있는 섬의 섬이다.

 

우리는 광장 한쪽 구석에 서 있는 올레 간세와 해후하고 포구를 나섰다. 길은 왼쪽으로 접어들어 마을회관을 지나 바로 광활한 들길로 이어진다. 마침 들 중앙의 초원 위에는 어미 소 한 마리가 길게 누워 <되새김질>을 하고 있다. 마치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우도처럼 여유롭게……, 우리도 저 어미 소처럼, 우도처럼 여유롭게 걸어 나갔다.

 

초록의 들길을 지나니 이내 푸른 해변이 다가온다. 다가가니 그냥 푸른 게 아니고 그냥 흰 게 아니다. 이름하여 <서빈백사(西濱白沙)>, 서쪽 바닷가의 흰 모래사장인데, 이렇게 눈이 부시도록 희다니 놀랍도록 새롭다. <홍조단괴 해빈 해수욕장>이라는,…… 그 이름도 고귀한 해변의 풍경은 몽환적이다. 꿈에라도 본 적이 없는 풍경이다.

 

눈부신 모래밭 너머의 에메랄드빛 찰랑대는 바다는 어머니 자궁, 그 너머 검푸른 물결에 뿌리박은 짙푸른 피라미드 <지미봉>은 아버지의 품!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다. 당장이라도 저 백사에 파묻혀 잠들고 싶어진다.

 

붉은 바닷말의 퇴적 덩어리(紅藻團塊)로 이루어진 서빈백사는 이제 지명이 되었을 정도로 유명하다. 천연기념물 제438호로 지정된 대한민국의 보물이다. 이런 풍경이 우도 8경의 하나라니 손색이 없겠다. -77)-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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