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제주 올레, 길 위의 풍경> 75

기행문

by 웅석봉1 2024. 11. 9. 12:44

본문

돌과 콘크리트로 지은 로마제국 최대의 공공건축물 콜로세오는 황제의 권력만이 아니라 제국의 힘과 당대 건축 기술을 집약해 보여준다. 콜로세오 이전의 공연장은 아테네의 디오니소스 극장이나 헤로데스 아티쿠스 극장처럼 경사진 터에 객석을 만들고 아래에 무대를 설치하는 반원형 야외극장이었다.

 

콜로세오는 그런 극장과 차원이 다르다. 단순히 반원형 극장 둘을 맞붙인 게 아니라 3층 객석이 있는 타원형 건물을 평지에 세웠다. 엄청난 비용과 수준 높은 건축 기술이 들어갔다.

 

로마의 건축 기술자들은 중력을 이용해 중력에 맞섰다. 콜로세오의 외부 경계선을 따라 땅을 깊이 파고 거대한 돌덩이를 심은 다음, 그 위에 벽돌을 쌓는 방식으로 공연장 외벽을 올렸다.

 

아치형 벽을 3단으로 쌓아 벽돌의 하중을 분산하고 기둥은 도리아, 이오니아, 코린트식으로 층마다 다르게 멋을 냈다.

 

수만 명의 관중이 짧은 시간에 드나들 수 있도록 관중석 계단 사이에 방사형 통로를 만들었다. 통로와 천장은 자갈과 석회석을 혼합한 콘크리트를 썼고, 바깥벽 꼭대기에 설치한 나무 기둥에 천막을 늘어뜨려 태양을 가렸다.

 

유시민의 유럽 도시 기행 1(, 도서 출판. 아름다운 사람들) 106쪽에서 인용.

 

*각설하고, 오늘도 올레길을 걸어보자.

 

<소라의 성>을 지나니 정자 하나가 우리를 기다린다. 한라산 정상이 내려다보는 언덕 위의 정자에서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정방폭포 주차장으로 접어들었다. 정방폭포로 오르내리는 길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여기도 유명한 유원지라 관광객들로 만원이다.

 

위험한 정방폭포 길은 패스하고 <서복공원>으로 들어섰다. 진시황제가 불로초를 구해오라고 보낸 <서복>이란 사람이 스치고 간 곳이라, 이를 기념하여 세운 공원이자 중국 관광객을 염두에 두고 세운 공원인데,

 

중국 하북성(河北省)이 우호 교류 협력관계를 증진하기 위하여 기증한 <서복 동도도>라는 조각상을 전시한 공원이 <서복공원>이다. 공원 속의 기념관은 마침 오늘이 무료입장이라 부담감 없이 내부를 일람할 수 있었다.

 

좀은 뜬구름 같은 옛 전설을 엮은 <서복공원>을 벗어난 길은, 여기서 a 코스와 b 코스로 갈린다. a 코스는 <이중섭거리>와 서귀포 <매일올레시장>을 돌아 <칠십리공원>으로 이어지는 위쪽 길이고,

 

b 코스는 부둣길로 들어서서 서귀포항과 천지연폭포를 지나 산길로 접어들어 <칠십리공원> 앞에서 a 코스와 연결되는 길이다. 우리는 b 코스를 향했다. a 코스를 비롯한 시내는 오늘밤이나 내일 아침에 둘러볼 요량이다.

 

b 코스는 <서복공원>을 빠져나와 해변을 따라 서귀포 방파제 쪽으로 가는 길이다. 방파제 시작점에서 오른쪽으로 접어들어 서귀포수협 옆길을 걷는데 어디로 가려는지 한 그룹의 해병들이 항에서 걸어 나온다. 귀신 잡는 해병이라는데 무섭기보다는 반가운 손님 같다. 같이 걸으면 오죽 좋을까 싶은데, 그들은 서귀포 시내로 가고, 우리는 천지연폭포로 향했다.

 

평일인데도 폭포로 들어가는 길은 초만원이었다. 역시 제주 제일의 관광지라는 명성에 어울리는 풍경이다. 큰 소()를 품은 천지연은 여전히 넓은 물줄기를 내리꽂는다. 오른쪽 큰 줄기는 어머니, 그 옆 작은 줄기 셋은 아들이려나, 사이좋게 떨어지는 소()는 모자의 사랑만큼이나 깊었다.

 

깊은 소리를 빠져나오는데 폭포 오른쪽에서 서늘한 기운이 나를 감싸고돈다. 섬뜩하여 위를 보니 폭포 옆으로 높고 긴 암벽이 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왜 자기는 봐주지 않느냐고 소리치는듯한데 폭포 소리에 묻히곤 하니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이해가 간다. 그래서 다시 한번 암벽을 쳐다보고 그를 위로하면서 걷는다.

 

제주의 많은 폭포 중에서 천지연과 정방, 천제연을 제주 3대 폭포로 꼽는다. 천지와 정방은 이곳 6코스에서 만났지만, 천제연은 중문단지에 있으니 8코스를 걸으면서 만나게 될 것이다.

 

올레는 천지연을 뒤로하고 오른쪽 산기슭에 정좌한 황룡사를 비켜서 구불구불 가파른 산길을 올라탄다. ! 황룡사! 그 절을 만나면 역사가 생각난다.

 

<황룡사>는 삼국유사에 세 꼭지나 나오는 절이 아니던가, 신라 선덕여왕이 세운 황룡사의 9층 탑에는 층마다 한 나라씩 이름을 새겨, 아홉 이웃 나라의 침략을 막고자 했음은 자명한데,

 

1층은 일본, 2층은 당(중화), 3층은 오월, 4층에 새긴 글이 탁라, 탁라는 곧 탐라이니, 당시엔 탐라가 신라에 위협적이었다는 반증이 아닌가.

 

그리고 5층은 백제, 6층은 말갈, 7층은 거란, 8층은 여진, 9층은 고구려를 새겨 넣었고, 그 탑 높이가 아파트 21층 높이었다니 상상키 어렵다. 모쪼록 여기 황룡사도 호국 의지로 세웠음이리라.

 

차도를 따라 산으로 오르니 길은 상당히 가파르다. 헉헉거리며 고개에 올라서니 서귀포항이 한눈에 들어온다. 가까이는 새연교의 높은 기둥이 돛을 닮아 한 척의 범선이 떠 있는 분위기를 연출하고, 그 뒤로 새섬에 연이은 문섬은 포구를 지키는 든든한 수문장의 모습이니, 서귀포 항구는 천혜의 요새로다.

 

고개를 오른 길은 바로 <서귀포 칠십리 시() 공원>이라는 넓은 평지로 이어진다. 서귀포를 대표하는 공원답게 자연과 삶과 문화가 어우러진 공원이다.

 

공원 모퉁이의 작은 장자에 올라서니 천지연과 한라산이 일직선으로 한눈에 들어온다. 폭포의 물보라와 산 위의 흰 구름, 그 조화로움! 환상적이다.

 

공원(公園)은 시() 공원답게 시비도 많다, 그 많은 시비 중에 가슴을 쓸어주는 시 하나가 있어 옮겨 적는다. <그리운 바다, 성산포> -설교하는 바다. 이생진(1929~ )

 

성산포에서는 설교를 바다가 하고/ 목사는 바다를 듣는다/ 기도보다 더 잔잔한 바다/ 꽃보다 더 섬세한 바다/ 성산포에서는/ 사람보다 바다가 더 잘산다.

 

언젠가 성산포에 가서 구순을 바라보는 노시인을 만나 약주 한잔 올리고 싶다. 시 공원을 지난 길은 <남성마을>을 스쳐 봉수대가 있던 삼매봉을 오른다. 완만한 경사길이만 기름이 빠진 몸은 숨이 차다. 클라이맥스는 역시 긴장된다. 산 중턱 고지를 점령한 KBS 방송센터 송신탑을 우러러보면서 우리는 발바닥에 마지막 힘을 실었다. 75)- 계속-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