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을 삐면 왜 아플까?
누구나 손가락이나 발가락이 삐어 고생한 경험이 한두 번은 있을 것이다. 학창 시절 체육 시간에 피구(避球) 하다가 손가락 끝으로 공을 너무 세게 잡거나, 실수로 손가락을 벽에 부딪혀 손가락 인대(靭帶), 힘줄, 관절(關節), 뼈 등을 다치면 손가락을 삐었다고 표현한다. 발가락도 마찬가지다.
손가락을 삐면 처음에는 욱신욱신 쑤시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시큰하게 둔한 통증(痛症)만 남는다. 테이핑 등으로 고정하고 일주일 정도 지나면 통증과 부기가 사라지고 2~3주 지나면 낫는다. 하지만 단순히 삔 정도가 아니라 골절(骨折)이라면 통증이 점점 강해진다.
통증이 심하면 뼈가 부러지거나 힘줄이 끊어졌을 수도 있다. 증상만으로는 판별(判別)하기 어려우므로 통증이 심할 때는 빨리 병원에 가는 것이 현명(賢明)하다. 간혹 손가락이 삐면서 말단 관절이 박리(剝離) 골절을 일으켜 손가락 끝이 굽은 채로 펴지지 않는 ‘망치 손가락’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
『과학 잡학사전 통조림 <인체 편>』 (지식을 쌓으려면 통째로 조목조목!) <엮은이 키즈나출판 편집부, 옮긴이 서수지, 감수 이경훈, 하라다 도모유키(原田知辛) (사람과 나무 사이, 2023)>, 127쪽에서 인용.
▲각설하고 난중일기를 읽어보자.
을미년 정월(1595년 1월)
1월 1일(갑술/2월 9일)
맑다. 촛불을 밝히고 홀로 앉아 나랏일을 생각하니 무심결에 눈물이 흘렀다. 또 나이 80이신 병드신 어머니(어머니 초계 변씨는 1515년 5월 4일 생으로 을미년에는 나이가 80세였다)를 생각하며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새벽에 대청으로 나가 여러 장수들과 색리(色吏)와 군사들이 와서 보고하고 세배를 했다. 원전(元琠)과 윤언심(尹彦諶), 고경운(高景雲) 등이 왔다. 이들에게 술을 대접했다.
1월 2일(을해/2월 10일)
맑다. 나라 제삿날(명종비 인순왕후 심 씨 제사)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장계 초고를 수정하였다.
1월 3일(병자/ 2월 11일)
맑다. 일찍 대청으로 나가 고을과 포구에 공문을 발송했다.
1월 4일(정축/2월 12일)
맑다. 우수사 우후(虞候) 이정충(李廷忠)과 거제 현령 안위(安衛), 금갑도(金甲島) 만호 이정표(李廷彪)와 소비포 권관 이영남(李英男), 여도 만호 김인영(金仁英) 등이 왔다.
1월 5일(무인/2월 13일)
맑다. 공문을 작성했다. 조카 봉(菶)과 아들 울(蔚)이 들어와서 어머니께서 평안하시다고 하니 매우 기쁘다. 하지만, 밤새도록 온갖 걱정들이 떠올라 잠을 이루지 못했다.
*2024년 7월 8일, 『난중일기 완역본』(노승석 옮김, 도서출판 여해)를 세종시에서 구매하여 본 글의 참고 도서로 활용함.
주) 난중일기는 이순신 장군이 친필로 쓴 초고본(1539~1598)이 국보 제76호로 지정되어 있으나 초고본의 을미년 일기는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을미년 일기는 충무공 사후 약 2백 년 뒤(1795년) 정조의 어명으로 간행된 목판본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의 기록으로만 전해져 왔다.
현충사가 소장하고 있는 《충무공 유사》는 《이충무공전서》보다 1백 년 정도 앞선 시기에 기록된 것으로 난중일기 내용을 뽑아 쓴 일기초(日記秒)‘ 23~60쪽에 모두 325일 치의 일기가 수록되어 있으며 이 가운데 을미년을 중심으로 한 32일 치가 초고본이나 《이충무공전서》에는 없는 내용이다.
새로 확인된 일기에는 너무 사적이거나 민감한 부분이 있어서 후세에 전하기가 부적절하다고 여겨 《이충무공전서》에서 의도적으로 삭제한 걸로 분석된다.
의도적으로 삭제한 것으로 의심되는 부분은 사회의 부정과 비리, 조정 체제에 대한 비판적 내용, 원균에 대한 원망과 직속상관인 권율의 부당한 처사에 대하여 언급한 내용, 그리고 자신의 처절한 심경을 토로한 글귀 등이다.
이 책의 을미년 일기는 《이충무공전서》의 내용 위에, 새로 발견된 《충무공 유사》의 일기초 부분을 보완하여 편집하였다. 『고산 고정일 역해』 173쪽에서-145-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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