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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 143

서평

by 웅석봉1 2025. 5. 1.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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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손가락을 구부리면 왜 약손가락도 구부러질까?

 

뇌가 새끼손가락을 움직여라는 명령을 내리면 그 명령이 신경을 거쳐 손가락을 움직이는 근육에 전달된다. 그런데 새끼손가락과 넷째 손가락은 척골(尺骨) 신경(神經)’의 지배를 받는다. 이 신경이 마비(痲痹)될 경우 두 손가락이 한꺼번에 접혀 있는 갈퀴손(claw hand) 증상이 나타난다.

 

엄지손가락을 제외한 네 개의 손가락을 움직이는 근육(筋肉)이 전부 이어져 있어 완전히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없다. 새끼손가락과 약손가락은 신경(神經)뿐 아니라 근육도 붙어 있어 하나를 구부리면 같이 구부러진다. 그러나 피아니스트처럼 연습(演習)을 반복하면 새끼손가락과 약손가락을 따로 움직일 수 있다.

 

엄지손가락에는 네 개의 힘줄이 있어 다양한 방향(方向)으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그래서 다른 네 손가락과 마주 보는 위치까지 움직여 물건을 잡는 등 복잡한 동작(動作)을 수행할 수 있다. 이는 사람의 손가락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特徵)이다.

 

과학 잡학사전 통조림 <인체 편>(지식을 쌓으려면 통째로 조목조목!) <엮은이 키즈나출판 편집부, 옮긴이 서수지, 감수 이경훈, 하라다 도모유키(原田知辛) (사람과 나무 사이, 2023)>, 125쪽에서 인용.

 

각설하고 난중일기를 읽어보자.

 

1111(을유/1222)

 

동짓날이라 11월임에도 새벽에 망궐례(望闕禮)를 행했다. 군사들에게 팥죽을 끓여 먹였다. 우수사 우후(虞候)와 정담수(鄭聃壽)가 와서 보고하고 돌아갔다.

 

1112(병술/1223)

 

맑다. 일찍이 대청으로 나아가 순천 색리(色吏) 정승서(鄭承緖)와 남원에서 민폐를 끼친 역졸에게 벌을 주었다. 첨지 신호(申浩, 1539~1597)와 이별의 술잔을 나누었다. 한편, 견내량에서 경계선을 넘어서 고기잡이를 한 어부 24명을 잡아서 곤장(棍杖)을 쳤다.

 

1113(정해/1224)

 

맑다. 바람이 잔잔해지니 날씨도 따뜻하다. 첨지 신호(申浩, 1539~1597)와 아들 회(, 장남), 이희남(李喜男), 김숙현(金叔賢)이 함께 본영으로 갔다.

 

종 한경(漢京)이에게도 명하여 은진(恩津)의 김정휘(金廷輝) 집으로 가도록 하고 장계도 보냈다. 권율(權慄, 1537~1599) 원수가 방어사(防禦使) 김응서(金應瑞)의 군관에게 항복한 왜놈 14명을 데리고 오게 했다.

 

저녁에 윤련(尹連)이 자기 누이동생의 편지를 가지고 왔다. 그 편지에는 망언이 많아서 우스웠다. 버리려 해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곧 부모 잃은 아이 셋이 끝내 의지하여 돌아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밤의 달빛이 낮과도 같으니 잠을 이룰 수가 없어 뒤척이다가 밤을 새웠다.

 

) 김정휘(金廷輝)는 논산 부풍촌(두마면 석계리)에 거주했는데, 조익(趙翊)에게 군자금을 지원하였다.

 

1114(무자/1225)

 

맑다. 아침에 우병사 김응서(金應瑞)가 투항해 온 왜놈 7명을 자기 군관을 시켜 데리고 왔다. 곧바로 남해 현으로 보냈다. 이함(李瑊)이 남해에서 왔다.

 

) 김응서(金應瑞, 1564~1624)는 명나라 제독 이여송(李如松)과 함께 평양성 탈환에 공을 세우고, 권율(權慄, 1537~1599)과 함께 남원의 토적(土賊)들을 토벌했다. 1594년 경상우병사로 있을 때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와 강화하려 한 죄로 벌을 받았다.

 

1115(기축/1226)

 

맑고 따뜻하기가 봄날 같다. 음양의 조화가 질서를 잃었으니 재난이라 할 만하다. 오늘은 아버지 제삿날이라 나가지 않고 방안에 홀로 앉아 있으니, 슬픈 심정이 어찌 말로 다 하겠는가. 저물녘에 탐후선(探候船)이 들어왔다.

 

순천 교생(校生, 향교 유생)이 교서 등본을 가지고 왔다. 아들 울(, 둘째)의 편지에 어머니께서 평안하시다고 하니 다행이다. 상주(尙州)의 사촌누이와 그 아들 윤엽(尹瞱)이 보낸 편지가 본영에 도착했다. 그것을 읽어보니 흐르는 눈물을 막을 수가 없었다. 영의정의 편지가 왔다.

 

1) 이순신의 아버지는 이정(李貞, 1511~1583)으로 이백록(李百綠)의 아들이다. 이순신이 함경도 건원보(乾元堡) 권관(權官)으로 근무 중일 때 사망했다. 부인은 초계 변씨 변수림(卞守琳)의 딸로 41녀를 두었다. (회신. 요신. 순신. 우신. 사위 변기) 이순신은 감정이 풍부하고 인정이 넘쳐 눈물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느낀다.

 

2) 윤엽(尹瞱,1546~1604)은 윤극신(尹克新)의 아들이고 윤돈(尹暾)의 형이다. 고산 찰방을 지냈다.

 

1116(경인/1227)

 

맑으나 바람이 제법 쌀쌀하다. 아침을 먹은 후에 대청(大廳)에 앉아 있으니 우수사 우후(虞候)와 여도 만호, 회령포(會寧浦) 만호와 사도 첨사, 녹도 만호와 금갑도(金甲島) 만호, 영등포 만호와 어란진 만호 정담수(鄭聃壽) 등이 와서 만나보고 돌아갔다. 저녁에는 날씨가 매우 따뜻하였다. -143-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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