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은 무슨 일을 할까?
심장(心臟)은 온몸에 혈액(血液)을 공급하는 펌프 역할을 한다. 운동을 하다 보면 심장 소리가 유독(惟獨) 크게 느껴질 때가 있다. 심장은 큰 장기(臟器)처럼 느껴지지만, 실제 크기는 주먹만 하다. 한 번에 내보내는 혈액량은 성인 기준 60~130밀리리터다. 심장은 특수한 근육(筋肉) 덩어리라서 우리가 자는 동안에도 쉬지 않고 계속 움직인다.
심장에는 동맥(動脈)과 정맥(靜脈)이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자칫하면 안에서 혈액이 역류하지 않을까, 걱정될 수도 있지만, 심장은 네 개의 방으로 나뉘어 순서대로 수축(收縮)하며 혈액을 내보낸다. 두 개의 출구에는 밸브가 있어 혈액의 역류(逆流)를 방지한다.
심장의 벽을 이루는 두꺼운 근육(심근, 心筋)이 규칙적인 ‘수축’과 ‘이완(弛緩)’을 반복한다(박동, 搏動). 심근은 스스로 팽창(膨脹)할 수 없어 혈액이 돌아온 압력(壓力)으로 팽창한다. 운동할 때 심장 박동수(搏動數)가 증가해 내보내는 혈액량(血液量)이 늘어난다. 사실, 인간의 심장은 ‘하트’보다 ‘달걀’ 모양에 가깝다.
『과학 잡학사전 통조림 <인체 편>』 <엮은이 키즈나출판 편집부, 옮긴이 서수지, 감수 이경훈, 하라다 도모유키(原田知辛) (사람과 나무 사이, 2023)>, 39쪽에서 인용.
*각설하고 올레길을 걸어보자.
▲당시 식량이 부족하여 주민들이 인분(人糞)을 먹어가며 성(城)을 쌓았다고 하니, 왜구(倭寇)들의 노략질이 얼마나 심했기에, 이런 악조건하에서도 성을 쌓았을까,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다. 아시다시피 제주에는 읍성이 셋이다. <제주 읍성>, <대정 읍성>, <정의 읍성>이 그곳들이다.
그런데 <제주 읍성>과 <대정 읍성>은 바닷가에 자리를 잡고 있지만, <정의 읍성>은 내륙지대에 있다. 처음부터 <정의 읍성>이 내륙(內陸)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일출봉이 내려다보이는 고성(古城)리에 있었던 것을 세종 5년(1423년)에 오늘의 성읍리로 옮겼다.
이전 사유가 왜구의 잦은 우도 침범(侵犯)을 피하기 위함이었다고 하니,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우도(牛島)의 침범을 피하려면 우도로 들어가야 하거늘, 오히려 산으로 올라가니 비겁해도 한참 비겁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에 비하면 <별방진성>을 축조한 목사 <장림(張琳)>은 나라를 지킬 의지가 높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때의 성이 제주도기념물(記念物) 제24호로 남아있다. 처음에는 길이가 1,008m, 높이가 4m가 넘었다는데, 많이 훼손(毁損)되어 지금은 처음의 반에도 못 미친다.
그래도 그때의 흔적(痕迹)이나마 볼 수 있어, 다행이다. 당시 왜구가 해적(海賊)이라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도 일본인이란 점이다. 가까운 이웃 민족끼리 사이좋게 지내지 못하는 악연(惡緣)이 지금까지 진행형(進行形)이니 아쉬울 뿐이다.
길은 <별방진성> 안으로 돌아 서문동 마을을 지나서 밭길로 들어서니 십(十)여 명의 부녀자(婦女子)들이 무를 거두어들이기에 한창이다. <제주 무>의 생산(生産) 현장이다. 도로변에 승합차(乘合車)가 주차되어 있고 차 안에는 음식을 준비하는 것이, 인력 시장(市場)에서 노동자들을 모아 작업하는 모습이다. 제주 농민(農民)들이 있기에 육지의 도시인들이 겨울에도 싱싱한 무를 먹을 수 있는 것이리라.
밭을 떠난 길은 이제 해안 길로 길게 이어진다. 해안도로(海岸道路)에 들어선 길은 바로 작은 음식점 하나를 만난다. <석다원(石茶園)>이란 간판 아래 붙어있는 플래카드 하나가 시선(視線)을 사로잡는다.
<김대중 대통령 방문 맛집, 드신 메뉴-해물손칼국수>라는 오래된 플래카드다. 작고하신 대통령이 살아 계실 때인 2006년 8월 24일, 점심나절에 예고 없이 방문하여 해녀 여주인이 끓인 칼국수 한 그릇을 맛있게 드셨다니, 퇴임(退任)한 대통령(大統領)의 서민적(庶民的) 행보(行步)가 긴 여운(餘韻)을 남긴다.
<석다원> 안으로 들어서니 대통령과 여주인(女主人)이 함께 찍은 사진(寫眞)이 크게 걸려있고, 다녀간 사람들의 사연(事緣)을 적은 쪽지들이 벽과 천장(天障)에 수없이 붙어있다. 그 명성을 느낄 수 있었다. 대통령이 오신 날 여주인은 잠시 낮잠을 자고 있었다 한다.
낮잠 중에 꾼 용(龍)꿈이 현실이 되었다니 얼마나 황공(黃功)했을까, 오늘 <석다원(石茶園)>에는 그 당사자는 잠시 자리를 비웠고 그녀의 따님이 세 팀의 가족(家族)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141)-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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