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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 길 위의 풍경>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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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석봉1 2024. 12. 2.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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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테온을 거쳐 트레비 분수와 스페인 계단을 만났다. 유럽 도시가 흔히 그렇듯 로마에도 분수가 많으며, 분수들은 거의 예외 없이 사람을 불러 모은다. 트레비 분수는 로마에서 제일 크고 관광객을 가장 많이 끌어모을 뿐만 아니라 돈이 마르지 않는 샘이기도 하다.

 

관광객들이 오뉴월 꽃밭의 꿀벌처럼 분수 주변에 모여 동전을 던져주는 덕에 가톨릭 자선단체는 해마다 20억 원이 넘는 돈을 얻는다. 동전을 던지기에 적당한 거리까지 다가서려면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 그림 앞에서 인증샷을 찍을 때만큼 애를 써야 한다.

 

여기서 한 가지, 젤라토를 든 채 분수에 접근하는 건 죄악이라고 말하고 싶다. 동전을 던지고 나서 옷에 묻은 젤라토를 닦아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두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우리말로 하면 이름이 삼거리 분수쯤 되는 트레비 분수는 1732년 교황청이 공모한 니콜라 살비의 작품이다. 분수 뒤의 궁전 파사드가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진짜 집이 아니고 분수를 돋보이게 만들려고 설치한 세트였다. 바다의 신, 해마, 조개, 반인 반어 트리톤의 조각상이 있는 트레비 분수는 바로크 양식이라고 한다.

 

바로크 양식은 어떤 것인가? 여러 자료를 검색한 끝에 내가 얻은 결론은 이렇다. ‘ 돈을 많이 들여 최대한 비싸고 화려하게 보이도록 무언가를 만들라. 그렇다면 그게 바로 바로크 양식이다. , 궁전, 인테리어, 가구 등 뭐든 상관없다.’ 건축으로 말하자면 바티칸의 성베드로대성당과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이 대표선수라고 할 수 있겠다.

 

) 1732년 당시 교황은 클레멘스 12세이고, 니콜라 살비(1697~1751)는 이탈리아의 조각가이며, 파사드는 프랑스어로 건물의 정면이다.

 

유시민의 유럽 도시 기행 1(, 도서 출판. 아름다운 사람들) 134~136쪽에서 인용.

 

*각설하고 올레길을 걸어보자.

 

우리는 정자에 올라 준비한 간식으로 목을 축이고, <한국 남부발전소>라 적힌 풍차 두 기가 졸고 있는 섬 내륙의 낮은 오르막을 올랐다. 섬의 최고 높이가 20.5m이니, 오르막이랄 것까지는 없지만 그래도 오르니 온 섬이 시원하다. 사통팔달이다. 봄이 오는 4월이면 섬의 칠 할이 보리로 푸르다는 이곳, 지금은 텅 빈 땅이다.

 

실제로 올해 411일부터 한 달 동안 제7회 청보리 축제가 성공적으로 열렸다고 한다. 빈 땅이라도 가파도는 허허롭지 않았다.

 

내가 본 가파도(可波島)는 파도에 파도를 더하는 풍경을 관망하는 섬이다. 섬에서 섬을 보는 섬, 좁은 곳에서 넓은 곳을 보는 섬, 그래서 가파도는 휴식의 섬이고 안식의 섬이다. 그래서 가파도는 사람이 그리운 섬이고 낮잠 자기 좋은 섬이다.

 

지금은 바람이 대지를 식히지만, 봄이 오면 섬은 살결같이 부드럽고 새잎같이 빛나는 초록이 대지를 덮고 그런 대지가 바람을 잠재울 것이다. 그때도 가파도는 넘실거리지만 촐랑거리지는 않을 것이다.

 

좁은 섬의 배를 갈라 하()에서 상()으로 걸으니 얕은 돌담 속 풀밭 위에 길게 누운 건물 하나가 우리를 반긴다. 건물 앞으로 종려나무들이 늘어선 느낌이 남국의 시골 학교 같다.

 

이곳은 섬의 유일한 학교, 가파초등학교다. 학교는 언제 보아도 스승이다. 교문 옆 작은 공원에는 학교를 설립한 분의 동상 하나와 공덕비 몇 기()와 제주를 상징하는 돌하르방이 선지자를 기리고 있다.

 

이곳 가파도 출신으로 경성고보를 졸업하고, 1921(신유년)<신유의벽(辛酉義壁)>을 설립하여 신교육 운동을 전개한 분이 바로 동상의 주인공이다. 그는 광주학생운동을 비롯한 항일운동과 협동조합 운동에 앞장섰고, 해방 후에는 국회의원으로 활동하신 회을(悔乙) 김성숙(1896~1979) 선생이다.

 

선생의 열정으로 가파도에는 역대로 문맹자가 없었다니 공덕비가 문제일까 싶다. 공원 한편에는 김용길 (1948~ )시인의 <가파초등학교를 위하여>라는 시비가 세워져 있다. 시인은 2010년 교직에서 정년퇴임 후 지금도 현역을 활동하는, 시집 여섯 권에 시력 50년의 원로 시인이다.

 

지난해 2월에는 고향 서귀포 <칠십리공원>에 그의 시비가 건립되기도 했다. 그의 시 중에서 마라도를 노래한 시 한 수를 소개한다. 마라도 사람들을 대변한 역발상이 핵심이다. 혹 누가 마라(가파)도 가거든 잊지 말 일이다. 가파도는 마라도와 형제의 섬이다. 시 전문을 읊어보자.

 

<마라도에 가거든>

마라도에 가거든/ 섬의 끝이라 말하지 말라/ 한반도의 마침표에 섰다고/ 말하지 말라// 마라 섬에는/ 부처님도 북으로 향해 앉고/ 예배당의 문도 북으로 통해있다// 남쪽으로 가서/ 북쪽으로 출발하는 섬/ 국토의 시작 출발의 땅// 어느 누구도 마라도에 가거든/ 최남단 섬이라 말하지 말라. -96)-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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