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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 길 위의 풍경>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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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석봉1 2024. 11. 28.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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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발디가 통일 전쟁에 다시 뛰어든 1860년 무렵, 통일운동의 지도자는 사르데냐왕국의 에마누엘 2세와 수상 카밀로 카보우르였다. 그들은 프랑스와 제휴해 오스트리아를 꺾고 반도의 중부와 북부 이탈리아를 대부분 평정했지만 갈 길이 아직 험난했다.

 

사람 다리 모양인 이탈리아반도는 네 토막으로 나뉘어 있었다. 발끝의 시칠리아섬을 포함해 복사뼈까지 남부는 시칠리아왕국, 로마가 있는 정강이 가운데 토막은 교황령, 사르데냐섬을 포함해 알프스까지 무릎 앞쪽은 사르데냐왕국이었고, 무릎 뒤쪽의 베네치아 왕국은 여전히 오스트리아제국의 지배 아래 놓여 있었다.

 

가리발디는 그런 상황에서 혜성처럼 나타나 단숨에 민중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붉은 셔츠를 입은 전사 1천여 명을 이끌고 남부로 가서 수십 배 규모였던 시칠리아 군대를 무찌른 것이다. 그는 나폴리를 점령한 후 로마 방면으로 진군해 교황청의 용병부대를 제압했다.

 

그러고는 에마누엘 2세를 만나 남부와 시칠리아의 통치권을 아무 조건 없이 바친 다음 홀연히 농사를 짓던 시골로 돌아가 버렸다.*흥미진진합니다.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유시민의 유럽 도시 기행 1(, 도서 출판. 아름다운 사람들) 131쪽에서 인용.

 

*각설하고 올레길을 걸어보자.

 

이어 제주방어사령부의 전투사격장을 지나 감자밭과 마늘밭을 아우르는 들길을 걷고 걸어 바닷가에 다다르니 대정 하수처리장이 홀로 서 있다. 하수처리장은 올레꾼들을 위하여 화장실을 개방하였다. 여기서 올레길과 만난다. 홀로 선 건물을 걸어 나서니 대형 공사 칸막이에 페인트 그림과 함께 새겨진 시 한 구절이 또 마음을 흔든다.

 

그림에는 서쪽으로 지는 붉은 태양과 그 옆으로 높은 등대 하나, 그 왼쪽에 쓰인 시, 그림도 좋고 시도 좋다. 이 황량한 벌판 한복판에 누가 세웠을까 궁금하다. 분명한 것은 그림과 시가 보통이 아니다. 여기 소개하면,

 

<떠나가는 배>~ 양중해(1927~2007)

 

저 푸른 물결 외치는/ 거센 바다로 오 떠나가는 배/ 내 영원히 잊지 못할/ 님 실은 배는 야속하리// 날 바닷가에 홀 남겨두고 기어이 가고야 마느냐/ 아담한 꿈이 푸른 물에/ 애끓이 사라져 나 홀로/ 외로운 등대와 더불어/ 수심 뜬 바다를 지키련다// 터져 나오라 애 섦음/ 물결 위로 한 된 바다/ 아담한 꿈이 푸른 물에 애끓이 사라져 나 홀로/ 외로운 등대와 더불어/ 수심 뜬 바다를 지키련다.

 

6.25 전쟁 중인 1952년 박목월(1916~1978) 시인이 제자인 여대생과 사랑의 도피 여행을 끝내면서 <이별의 노래>(김성태 작곡)을 지을 즈음, 함께 문학 활동을 한 양중해 시인(당시 제주 제일중 국어 교사)이 피난민의 <이별의 아픔)과 박 시인의 애절한 사연을 옆에서 보면서 지은 시라고 전한다.

 

이 시는 외교관으로 더 유명한 변 훈(1926~2000) 선생이 곡을 붙여 지금도 널리 애창되는 가곡 <떠나가는 배>라고 하니 나도 언젠가 들은 기억이 가물거린다.

 

현곡 양중해 시인은 1959년 사상계로 등단하여, 이후 제주대 교수를 역임하였으며 제주의 마지막 선비라는 타이틀로 후학들의 존경을 받는 지식인이다. 지난해 11월 서귀포 안덕면에 있는 동백수목원 <카멜리아힐>에 시인의 기념관이 개관되기도 했었다.

 

그날 나는 그런 사연도 모른 채 시를 중얼거리며 스프링클러가 돌아가는 참 한가한 풍경의 마늘밭과 익어서 누런 콩밭 사이를, 또 해안과 아스팔트 위의 길 없는 길을 걸어 하모해수욕장 진입로로 들어섰다. 아스팔트를 걷다가 송림 속의 푹신한 모래밭 잔디 위를 걸으니, 허리가 한결 가볍다.

 

모래 위에 조형으로 세워둔 홍마(紅馬) 세 마리도 가볍게 뛰놀고 있고, 해수욕장을 조금 벗어나니 소공원 하나가 길손을 반긴다. 소공원에는 국제로타리클럽에서 세운 <초아(超我)의 봉사>라는 돌기둥 하나가 기단 위에 의연하다. 그런데 그 기단에 멋진 글귀가 있어 옮기지 않을 수 없다.

 

기단 위에는 <네 가지 표준>이고, 아래는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 하는데 있어서 1) 진실한가? 2) 모두에게 공평한가? 3) 선의와 우정을 더하게 하는가? 4) 모두에게 유익한가? *로타리언들이여! 이런 정신을 그대들은 실천하시겠지요.

 

한편 공원에는 허창현(1889~1974) 선생의 공덕비와 <해녀의 뱃노래> 비석이 나란히 서 있다. 대정읍 출신 허창현은 경성고보에 유학한 선지자로 당시 운진항 추진위원장을 맡아 고향 발전에 노력한 공덕과 그가 작사한 <해녀의 뱃노래>를 영원히 간직하기 위하여 후인들이 여기 기념비를 세운다고 비석에 새겨져 있다.

 

제주에는 이런 공덕비가 없는 마을이 없다. 제주인의 풍류요 포근한 인정이겠다. 보기도 좋고 풍경도 좋다. 이글이 <제주올레, 길 위의 풍경>이니 어찌 말하지 않겠는가. 비를 세운 날은 20141216일이었다. 힘겨운 물질로 지친 해녀들에게 활력소가 되었을 해녀의 노래를 음미하며 나는 모슬포항으로 들어섰다.

 

항 입구에 들어서니 흰 비석이 또 길손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방어 축제 희생자 추모비>, 비석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나는 스마트폰으로 기억 창고에 저장한다. 추모비는 언제나 애절하다. 200611, 6<최남단 방어 축제> 행사에 사고를 당한 다섯 사람의 주민들을 기억하자는 비석이다. 201411월에 세웠다고 기록하고 있다.

 

모슬포항은 넓고 깊었다. 코스 종점을 찾는 데도 꽤 많은 시간을 허비하였다. <올레 표시가 없는 길은 길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밀려온다. 온몸은 땀으로 흥건히 젖었다. 올레 종점은 <홍마트> 앞에 있었고 올레 안내소는 잠겨있었다. 사람이 부족하니 흔히 있는 일이다.

 

길 없는 길을 걷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하루지만, 올렛길 중에서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곳이 총 12곳인데, 그중에서 2곳이나 이 코스에 있다니, 10코스가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는 사실은 빈말은 아니리라.

 

따라서 오늘 눈으로 새긴 풍경의 경험은 오래 기억될 것이다. -93)-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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