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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 길 위의 풍경>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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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석봉1 2024. 12. 1.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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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 건축물과 에마누엘 2세 기념관을 빼면 로마는 이탈리아의 다른 유명한 도시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역사 인물과 도시의 이름을 붙인 광장, 중세기 귀족의 저택이었다가 공공기관이나 박물관이 된 팔라초(Palazzo, 정무를 보는 관청이나 귀족의 대규모 주택 형식을 가리키는 보통명사),

 

로마 신화의 캐릭터와 이야기를 모티브로 사용한 분수, 오래된 교회와 예배당, 테베레강의 다리. 유명 예술가들이 출입했다는 카페와 레스토랑, 영화에 나온 거리와 계단이 도시 전체에 널려 있었다. 우리는 발길 닿는 대로 걸으면서 거리의 풍경을 즐겼다.

 

에마누엘 2세 기념관 앞 베네치아 광장은 특별한 것이 없었다. 통일을 기념하려고 만든 이 타원형 광장은 차량이 줄을 잇는 대형 로터리가 되어 있었다. 기념관을 나와 왼편으로 돌자,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캄피돌리오 광장으로 이어졌다.

 

미켈란젤로(1475~1564)1534년 로마에 와서 바티칸 교황청의 성베드로대성당의 돔과 캄피돌리오 광장을 설계했다. 낮고 완만한 계단을 올라 광장에 들어서자, 한가운데 황제의 기마상이 주변의 풍경을 압도하고 있었다. 2세기에 만든 진품은 박물관에 있고 광장에 있는 건 복제품이다.

 

유시민의 유럽 도시 기행 1(, 도서 출판. 아름다운 사람들) 133쪽에서 인용.

 

*각설하고 올레길을 걸어보자.

 

포구 광장엔 가파도를 알리는 간판과 안내문들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한다.

 

*친환경 명품 섬 가파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키 작은 섬 가파도/ 가장 먼저 봄소식을 전해주는 청보리의 섬/ 탄소 zero / 색깔 있고 디자인이 있는 섬.

 

이런 안내문들이 섬을 대변해 주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왜 가파(加波)인가? 파도가 밀려와서 가파인가, 밀려간다고 가파인가? 섬 모양이 가오리처럼 생겼다고 가파인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포구 광장으로 다가가니 큰 입간판에 가득 찬 글귀들이 눈으로 들어온다.

 

글머리에 가파도가(加波島歌)라는 제목이 붙어있다. 이 작은 섬에 노래까지 있다니 부럽다. 부러운 건 또 있다. 송존현 선생이 작사, 작곡했다는 가파도 노래는 4행짜리 절이 다섯이다. 통상 노래 가사는 3절이나 4절 아니던가, 그런데 5절이라 작가의 애정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다.

 

그래서 색다르고 부럽다. 가사만 읽어도 동서남북으로 운율이 척척 맞아 흥겹다. 여기 1절만 소개한다.

 

*남쪽 하늘 태평양은 이 섬의 앞뜰/ 물 건너 한라산은 이 섬의 후원/ 해 돋는 동천에는 금물결이요/ 달 가는 서천에도 은물결이라.

 

재미있는 가파도가를 음미하고 길을 걷는다. 길은 섬의 오른쪽으로 돈다. 포구 광장 가장자리에 자리 잡은 상동마을 <할망당>의 돌담을 더듬고 마을 길을 잠시 걷고 해변으로 다시 나왔다. 마을 색깔과 바다의 빛깔, 그리고 하늘의 맑음과 길을 걷는 사람들의 맵시가 언젠가 꿈에서 만난 그 풍경이다. 모름지기 신선이 사는 곳이다. 조화롭다.

 

해변을 걷는데, 바다 위의 바위 위에 바위 색깔만큼이나 희색인 새 한 마리가 태평양을 향해 졸고 있고, 그 위 하늘 높이에는 매 한 마리가 큰 원을 그리며 돌고 있는 모습이 나를 긴장시킨다.

 

귀추(歸趨)가 궁금하여 발자국을 죽이고 지켜보니 바위에 붙은 새는 움직임이 없다. 한참 하늘을 돌던 매는 눈이 멀었는지, 바위에 붙어있는 새를 바위로 보였는지, 멀리 솟구쳐 날아간다. 그제야 바위의 새도 날개를 편다. 새의 위장술이 매를 앞섰다. 살아가는 지혜다.

 

길은 낮은 섬을 둥글게 감싸고 돌고 있다. 앞서 걷는 남녀 칠팔 명의 이야기 소리가 들린다. “여기는 누구 밭이었고, 저기는 또 누구 집이었고서로 손짓 발 짓 하면서 걸어가는 모습이 아마도 섬의 출향(出鄕) 인사들인 모양이다.

 

모처럼 시간 내어 그리운 고향을 찾은 것이리라. 부디 즐거운 고향길 되시길 빌면서,……, 그들을 앞질러 길을 걸으니 <일몰전망대>라는 작은 표시판이 일몰의 모습과 함께 길을 안내한다.

 

섬 전체가 전망대 일진데 친절하게도 여기 전망대까지 세웠으니 후한 섬마을 인심이 묻어난다. 길은 입도(入島) 초기, 주인을 따라온 고양이가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어 돌이 되었다는 <고냉이 돌>(사실은 고양이 같지는 않지만)도 지나고, 도랑이 끝나 바다로 흐르는 <냇골챙이> 정자에 이른다.

 

골챙이는 길 양쪽에 하수구처럼 조그맣게 패인 도랑을 뜻하는 제주어로 이런 도랑물이 바다로 흘러가 닿은 곳을 <냇골챙이>라 한다. -95)-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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