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카이사르는 사사로운 욕심으로 공직을 수행한 것은 아니었다. 세제 개혁을 단행해 국가 재정을 튼튼히 했고, 게르만족과 화친을 맺어 변방의 정세를 안정시켰으며, 집정관 임기를 마친 후에는 갈리아 총독으로 부임해 게르만족을 격파하고 라인강 서쪽 지역을 평정했다.
잉글랜드 원정에 실패하는 등 여러 전투에서 패하기도 했지만, 그는 7년 동안 프랑스와 독일을 포함한 서유럽 일대에 로마제국의 패권을 확립했다.
지나치게 큰 성공은 의심과 질시를 부르기 마련이다. 로마 원로원의 귀족들은 야심가 카이사르의 갈리아 총독 직위를 전격 박탈했고, 격분한 카이사르가 4개 군단을 이끌고 로마로 향하자, 루비콘강을 건너기 전에 군대를 해산하라고 요구했다.
루비콘강은 아드리아해로 흐르는 이탈리아반도 북동부의 작은 강인데, 로마법에 따르면 속주 총독은 군대를 이끌고 이 경계선을 넘을 수 없었다. 원로원이 갈리아 총독 자격을 유지한 채 집정관 출마를 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마저 거부했지만, 카이사르는 손을 쓸 방법이 없었다. 옛 동지 크라수스는 이미 전사했고 폼페이우스는 원로원 편을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카이사르는 결국 군단을 이끌고 루비콘강을 건너 로마를 점령한 다음, 선거에 출마해 집정관이 되었고, 원로원과 연합해 자신에 맞섰던 폼페이우스를 이집트까지 쫓아가서 죽였다. 남매간 권력투쟁을 벌이던 클레오파트라를 도왔다가 죽을 고비를 겪기도 했지만, 결국 북아프리카를 평정하고 돌아와 단독 집정관이 되었다.
유시민의 『유럽 도시 기행 1』 (주, 도서 출판. 아름다운 사람들) 120~121쪽에서 인용.
*각설하고 올레길을 걸어보자.
▲제주올레, 길 위의 풍경→8코스(월평~대평)
계절은 가을로 접어들었으나 날씨는 아직 여름이다. 어젯밤에는 모처럼 만난 지인들과 한라산 야간 등반을 하는 바람에 늦잠을 자서인지 몸이 무겁다. 여기서 야간 등반이란 한라산 소주를 밤늦도록 마셨다는 제주도식 농담이다.
오늘 어부인은 딸아이와 다른 일로 동행하지 못하고 나 혼자 숙소를 나섰다. 혼자 걷기는 처음이라 어색하다. 어제 무리를 해서인지 몸까지 무거우니 발걸음도 무디다.
8코스 시작점인 월평마을 <송이슈퍼>에 도착하니 올레꾼 세 사람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신혼으로 보이는 남녀 한 팀과 중년의 여자 한 사람이었다.
오늘의 길을 어디까지 같이 걸을지는 모르지만, 일단 시작 지점에 동행할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초행길을 가는 나로서는 여간 마음 든든한 일이 아니다. 특히 처음으로 혼자서 올레를 걷게 된 나로서는 큰 위안이었다.
길옆에 서 있는 <대한민국 해안누리길>이라는 안내표시판을 읽고 있는 그들에게로 다가서서 인사를 나누었다.
“8코스가 굉장히 인기가 많은 모양이죠?”
안내판을 읽고 있는 그들을 보면서 운을 떼니, 그들도 반가운 모양이다. <해안누리길>, 해양수산부와 한국해양재단이 선정한 걷기 좋은 <해안 길>이라는 설명이다. 지금까지 올레길을 걸었지만 <해안누리길>은 처음이다. 그만큼 8코스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올레길이라는 생각으로 걸어 나갔다.
올레 리본을 따라 마을을 벗어나니 바로 어리어리한 기와 건축물이 앞을 가로막는다. 3층짜리 사찰이다. 사찰의 외관을 보니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절이지만, 마당은 넓고, 넓은 마당의 좌우를 지키고 있는 범종루(梵鍾樓)와 법고루(法鼓樓)는 보통 사찰이 아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약천사>라는 표지석이 길고 크다. 본디 이곳은 <도약천>이라는 약수가 철철 넘치던 곳, 한라산이 우러러보이고 서귀포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으로 대포리의 유명 절터로 알려진 곳이었다.
그런 유서 깊은 터에 해인사와 통도사에서 수행한 제주 출신 스님이 1981년부터 터를 잡아서 1996년에 완성한 동양 최대의 법당이라고 자랑이 대단하였다.
사문을 들어서니 법당 마당을 지붕 삼아 길게 늘어진 2층 요사(寮舍) 통문 위로 <극락 도량 약천사>, 현판이 일주문을 대신하고 있는데, 요사 위의 마당에는 관광객들로 만원이다.
특히나 중국 관광객들의 조잘대는 소리가 절간이기를 거부하는 가운데 인파가 줄지어 선 우물가로 가서, 약수로 소문이 났다는 그 우물의 물 한 바가지 퍼서 마시니 어제 먹은 술이 확 깨는 기분이었다. 그런 기분으로 법당 안으로 들어섰다.
중앙에 높이 정좌한 부처의 손을 보니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싼 비로자나불이었다. 저 영주 부석사에서 본 그 부처님이다. 그러면 법당은 대웅전이 아니라 대적광전이리라, 나는 비로자나불 앞 불전함에 지전 한 장을 넣고 3배를 올렸다.
그다음 천천히 법당 안을 둘러보니 초등학생쯤으로 보이는 아이들 수십 명이 스님의 말씀에 귀를 쫑긋 세우고 앉아 있는 모습이 평온하게 들어온다. 아마도 <템플스테이> 중인가? 아니면 단체로 참례한 어린이들에게 스님이 설교하는가? 아무튼 좋은 풍경이다.
어릴 때의 경험이 얼마나 소중한지 저들은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언제나 어디서나 아이들을 보는 일은 흐뭇한 일이다. -85)-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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