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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 길 위의 풍경>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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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석봉1 2024. 11. 6.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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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300백만의 거대 도시 로마는 이탈리아 통일의 산물이었다. 성벽을 둘러쳤던 고대 로마는 현재 도시 면적의 5%도 되지 않았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는 동안 이탈리아 인구는 남에서 북으로, 동에서 서로 이동했고 수도 로마는 인구 이동의 직격탄을 맞았다.

 

정치와 행정의 중심이지만 관광업을 빼면 이렇다 할 산업이 없기에 전국에서 가장 지저분하고 빚이 많은 도시가 되고 말았다.

 

왕국 수립 이후 100년 동안 무려 25백만 명의 이탈리아 국민이 나라를 떠나고 말았다. 처음에는 대서양을 건너 미국과 남미, 호주 등 소위 신대륙으로 건너갔고, 신대륙의 이민 규제가 심해진 2차세계대전 이후에는 프랑스, 독일, 스위스를 비롯한 인접 국가로 퍼져나갔다.

 

세계 어느 도시에나 피자와 파스타를 파는 식당이 있고 할리우드 영화에 이탈리아계 갱단이 흔히 출몰한 데는 그런 사정이 있다.

 

신생국 이탈리아는 연합국에 가담한 덕에 제1차 세계대전을 그런대로 잘 겪어냈지만 제2차 세계대전 때는 현대 파시즘의 원조로 알려진 독재자 무솔리니가 히틀러와 손잡았다가 패전국이 되었다.

 

그러나 1946년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국으로 전환한 이후 지역 안보 체제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유럽연합의 전신 유럽공동체(EC)를 창립하는 데 기여됨으로써 유럽 통합의 주역이 되었다.

 

유시민의 유럽 도시 기행 1(, 도서 출판. 아름다운 사람들) 98~99쪽에서 인용.

 

*각설하고 올레길을 걸어보자.

 

만남의 올레길은 신례2리 바닷길과 카페 <유나>를 지나 검은 모래 해변의 <공천포>도 지나고 시골 냄새 물씬 풍기는 밥집 <공새미>도 지나니, 보기 드문 개천 하나, 얼마나 비가 내렸던지 다리 아래로 물이 철철 넘친다.

 

다리를 건너 <불광선원>을 돌아 <보타사>도 지나니 <망장포구>가 청명하다. 그 옛날 제주산 말()을 중국으로, 중국으로 실어 날랐다는데 지금은 고요할 뿐, 말이 없다.

 

이어지는 숲길은 잠시 불편하던 다리를 주물러준다. 숲길은 그만큼 포근한 길이다. 포구를 지나니 서귀포 섬의 삼총사 <범섬><문섬>은 보이지 않고 <섶섬>만이 가까이 다가온다.

 

남쪽으로 난 바다 절벽이 절경이라는 예촌망(봉수대가 있어 일명 망오름)을 돌아, 내려서서 신작로를 조금 걸으니 <효돈천> 다리에 다다른다.

 

<효돈천><강정천>과 함께 한라산 정상에서 산남(山南)으로 흐르는 두 갈래 큰 물줄기다. 제주도 하천은 평소에 물이 흐르지 않는 무수천(無水川)인데 여기 <효돈천>은 상시 물이 흐른다. 그뿐만 아니라 밑에서 용천수가 솟구치니 그만큼 뿌리가 깊은 하천이리라.

 

다리를 건너니 바닥을 아스콘으로 깐 편안한 길이 이어진다. 바다에 이르니 깊고 푸른 소()가 두물머리를 이루고 있다. 여기가 바로 <쇠소깍> 유원지다. 쇠는 소()고 소()는 웅덩이고, 깍은 끝 지점이라, 소를 닮은 바닷가 끝, 웅덩이라는 말이다. 달리 용소라고도 한다.

 

기우제도 여기서 지낸다고 하니 그만큼 효험이 있다는 소(). 아래를 내려다보니 소문대로 이승의 풍경이 아니다. 과연 용이 사는 천상의 풍경이다. 특히 <쇠소깍>10대 명소로 장군바위, 큰바위얼굴, 독수리바위, 사자바위, 부엉이바위, 코끼리바위 등 기기묘묘(奇奇妙妙)한 바위들이 그렇다.

 

<쇠소깍> 일대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제주 생물권보전지역>이다. 난대와 온대식물이 더불어 사는 희귀한 지역이다. 풍광이 좋으니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올레 5코스와 6코스의 <시 종점>이기도 하다. 올레 출발 간세 부근에는 관광객으로 만원이다.

 

때마침 지루하던 비도 그치고 하늘도 쨍쨍하니 사람들도 활기가 넘친다. 유독 신혼부부나 예비부부로 보이는 쌍들이 많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처럼 오래된 부부들도 간혹 보인다. 그렇게 보니 이곳이 부부들의 순례길 같다.

 

유원지 정자에 빈자리 하나가 있어 우리도 그들 속으로 들어가 꽈리를 틀고 관광객을 바라보니, 강화도 시인 함민복(1962~ )이 생각난다. 그의 시 <부부>를 부여잡고 나도 그들 사이에서 어울리고 싶다.

 

-긴 상이 있다/ 한 아름에 잡히지 않아 같이 들어야 한다/ 좁은 문이 나타나면/ 한 사람은 등을 앞으로 하고 걸어야 한다/ 뒤로 걷는 사람은 앞으로 걷는 사람을 읽으며/ 걸음을 옮겨야 한다/ 잠시 허리를 펴거나 굽힐 때/ 서로 높이를 조절해야 한다/ 다 온 것 같다고/ 먼저 하고 상을 내려놓아서도 안 된다/ 걸음의 속도도 맞추어야 한다/ 한 발/ 또 한발-

 

결혼은 <한 아름에 들 수 없는 긴 상>이라는 사실을 아직 깨우치지 못한 소생이 부끄럽다. 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높은 정자에 앉아 몸을 식히고 배도 채우니, 마치 18홀을 돌고 클럽 하우스에서 시원한 백주 한 잔 마신 기분이다. 코스는 끝났지만, 아직도 한나절은 더 남았으니, 우리는 또 배낭을 챙겨 정자를 나서야 한다. -72)-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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