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제주 올레, 길 위의 풍경> 73

기행문

by 웅석봉1 2024. 11. 7. 12:22

본문

무너진 황궁 테라스에서 2천 년 전 황제의 시선으로 도시를 살폈다. 동쪽에는 거대한 콜로세오와 개선문 2개가 있었고, 남쪽으로 큰길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팔라티노보다 더 긴 타원형 대전차 경기장 터가 보였다.

 

언덕의 동편 비탈 아래서 북쪽으로 완만한 오르막을 이루는 저지대에는 부서지고 퇴락한 고대 건축물이 즐비했다. ‘포로로마노라고 하는 이 구역은 에마누엘 2세 기념관이 높이 솟은 카피톨리노 언덕에서 끝났다.

 

곳곳에 키 큰 소나무들이 둥글게 뭉쳐진 초록색 가지와 잎을 모자처럼 얹고 있었다. 로마는 사람만 잘생긴 게 아니다. 소나무도 멀쑥하게 잘 났다.

 

황궁 테라스에서 본 주변 공간은 정치, 군사, 종교, 오락, 미디어 복합단지였다. 고대 로마의 뇌수와 심장이었던 이곳은 제국의 힘과 황제의 권력이 얼마나 켰으며, 당시 로마 시민들을 사로잡았던 욕망과 감정이 무엇이었는지 말해주었다.

 

유시민의 유럽 도시 기행 1(, 도서 출판. 아름다운 사람들) 103쪽에서 인용.

 

*각설하고 오늘도 올레길을 걸어보자.

 

제주올레, 길 위의 풍경6코스(쇠소깍~외돌개 올레)

 

6코스는 올레 완주자들이 강력하게 추천하는 코스답게 출발점부터 사람들로 화려하다. <쇠소깍>에서 <소금막>으로 이어지는 해변은 검고 빛났다. 검은 모래가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모습이 장관이다. 그 옛날 여기가 소금을 굽던 <소금막>이었다지만,

 

오늘은 그 검은 해변 위에 점점이 사람들이다. 벗들은 삼삼오오 재잘재잘 노닥거리고, 연인들은 어깨를 붙이고 도란도란 아이스크림을 빨고, 부부들은 손을 맞잡고 얼굴을 마주하면서 걷고 있다. 관광지다운 눈부신 풍경에 우리는 끼이지 않고 걸었다. 아니 끼이지 못했다.

 

포구를 벗어나니 기암괴석(奇巖怪石)이 오밀조밀한 해변으로 이어진다. 바다 철새들이 쉬어간다는 <생이돌>, 형제처럼 나란히 서 있는 <게우지코지>, <게우지>는 전복 내장을 닮았다 하여 생긴 이름이라니 전복 내장이 어떤가를 상상해 보시라. 해변의 검은 돌들이 얼마나 오돌토돌한지 짐작이 갈 것이다.

 

<게우지>가 바라다보이는 언덕 위에 포장마차 하나가 성업 중이다. 부부가 파는데 아이스크림과 호떡만 있고 막걸리나 소주는 없었다. 이 좋은 풍광에서 술이 없다니 그것이 흠이다. 하긴 곰곰이 생각하면 흠이 아니다.

 

이 좋은 풍광에 이미 취하고 있는데 게다가 술까지 판다면 얼마나 더 취할까! 취하면 사고로 이어질까 염려된다. 그래서 술은 팔지 않았다고 하면 모두가 수긍할 것이다.

 

해변을 벗어난 길은 또 변화를 준다. 조그만 오름 하나에 오른다. 나무 계단을 박은 오름 길은 가파르다. 정상에 오르면 얼마나 전망이 좋을까, 기대가 큰데 순간 구름이 모이고 비를 뿌린다.

 

바닷길에는 없었는데…… 비는 바다에 약하고 산에는 강한가 보다. 비는 내려도 오름은 올라야 제맛이다. 이름하여 <제지기오름>, 혹은 <절지기오름>, ()지기가 살았다 하여 <절지기오름>이라 한다는데 절은 보이지 않으니 글쎄다. 오름 정상은 사방이 비구름에 쌓여 시야가 어둡다.

 

청명한 날씨라면 한라산 정상이 쳐다보이고 천연기념물 18호 파초일엽의 자생지로 유명한 섶섬이 오누이처럼 보인다는데 그 실루엣만 아련히 그려진다. 아쉽다. 그래도 좋다. 눈으로 보지 못한 것을 마음으로 느끼면서 산을 내려선다.

 

서귀포 앞바다에는 섬이 다섯이 있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차례로 지귀도, 섶섬, 문섬, 새섬, 범섬이 그들인데, 지귀도는 고래 등 모양으로 바다에 누워있어 산의 맛이 없고, 새섬은 서귀포항과 연륙교(새연교)로 이어져서 이미 섬의 특성을 상실하였고, 그래서 남은 세 봉우리를 서귀포 3 형제섬이라고들 한다는 것은 양념이다.

 

오름을 내려오면 바로 <보목포구>가 펼쳐진다. 포구 언저리의 멋진 펜션, 음식점들이 눈길을 끈다. 여기 어디쯤 유명한 코미디언의 별장도 있다는데 고인이 된 그이의 별장은 지금은 카페로 성업 중이라는 소식은 여행 후에 알았다.

 

이름이 투 윅스 (two weeks~이주일)라 하니, 잠시 생각을 요()하는 작명이다. 고인이 출연한 금연 광고가 내 뇌리를 스친다. 폐암 환자의 금연 광고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다만 달리 보면 참 잘 어울리는 광고라는 생각이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고발하는 광고니 아이러니하다. -73)-계속-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