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스위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북부 지방과 로마를 포함한 중부 지방, 3면을 지중해가 둘러싸고 있는 남부 지방, 사르데냐와 시칠리아를 비롯한 섬들은 기후와 지형, 역사, 산업, 언어,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서로 다르다. 국민 대다수가 가톨릭 신도이며 이탈리아 말을 한다는 것 말고는 무슨 공통점이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치안이 불안하고 쓰레기가 굴러다니는 최악의 도시라는 로마의 오명은 이미 오래되었다. 눈 뜬 사람 코 베듯 지갑과 물건을 털어 간다는 소매치기와 집시의 풍문도 무성해서 우리는 잔뜩 긴장한 채 로마에 입성했다.
로마는 주택난과 교통난, 환경오염 등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지 알면서도 시 정부는 만성적인 부채에 시달리고 있어서 뾰족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한다. 그렇지만 로마 시민들이나 공무원들이 특별히 무능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국가 수립 이후 짧은 기간에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든 탓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된 것뿐이다.
로마 시민들이 잠시 희망을 가졌던 적이 있었다. 신생 정당 ‘오성 운동(Movimento 5 Stelle) 후보였던 삼십 대 변호사 비르지니아 라지가 쓰레기 수거 문제 해결과 대중교통 개선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워 로마 최초의 여성 시장이 되었을 때였다.
오성 운동은 유명한 배우의 SNS를 출발점으로 삼아 2009년 탄생한 모바일 기반 정당이었는데, 라지 시장은 목숨을 걸었다는 말이 돌 정도로 열심히 쓰레기를 수거하고 거리를 청소했다.
그러나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청소 노동자들의 파업과 대형 쓰레기 처리장의 화재 사건, 도로 땅 꺼짐 현상 등 악재가 연이어 터지면서 로마의 도시환경은 얼마 지나지 않아 예전 상태로 돌아가 버렸다.
유시민의 『유럽 도시 기행 1』 (주, 도서 출판. 아름다운 사람들) 94쪽~95쪽에서 인용.
*각설하고 올레길을 걸어보자.
▲동백꽃 붉게 핀 풍경을 그리며 마을로 들어서니 정자 하나가 우리를 기다린다. 정자 아래는 올레 간세가 다정하고, 정자 옆의 작은 개울은 물 없는 도랑이다. 도랑은 작고 길다는 세천(細川)이고, 세천(細川)이 있다고 여길 세천동(細川洞)이라고 한다. 세천(細川)의 정자에 올라 배낭을 풀고 목도 축이니 비도 그친다. 비가 그치니 바람도 따라 멎었다.
목을 축인 우리는 세천(細川) 포구를 뒤로하고 해변을 걸었다. 저 멀리 바다에 떠 있는 게 섬인지 배인지 짐짓 구별키 어렵다. 마침 지나가는 청년에게 물으니 <지귀도>가 아닐까요? 한다. 자세히 보니 배보다는 덩치가 크다.
예전에 9코스를 걸으면서 본 가파도가 생각난다. 생긴 것이 비슷하다. 실같이 바다에 누운 섬, 원래 오름은 봉우리인데 봉우리 없는 저 섬도 오름이라 부르는지 궁금하다.
<지귀도>, 예전에는 고기가 많이 잡혀 위미리와 신례리 사람들이 서로 차지하려고 다투기도 하고, 성어기에는 해녀들이 보름이고 한 달이고 섬에 들어가서 물질도 했다는데, 이제는 다툴 일도 물질할 일도 없다니 세월이 약이다. 지금은 모 종교재단에서 사들여 교단의 재산으로 등재하였다고 한다.
한적한 해변으로 이어지는 올레길은 위미항에 다다른다. 항 입구가 <앞개 포구>요, 포구 들머리가 <조배머들코지>다. 그만큼 위미항은 고품격이다. <조배머들코지>에는 구실잣밤나무가 군락을 이루었다는데, 지금은 나무는 없고 기기묘묘한 바위들만 걸쳐있다. 그래도 옛 사연은 많아서 표지석에는 잔 글들이 가득하다. 글만큼은 아니라도 관광객들은 제법 거닐고 있었다.
소문대로 위미항은 산남(한라산 남쪽을 제주에서는 그렇게 통칭한다) 최대의 천연 포구답다. 일제강점기에는 여기서 오사카까지 정기 여객선이 내왕하였다 하나 옛 영광은 찾을 길은 없고 그 위용만은 여전하다. 포구에서 작은 언덕으로 올라선 길은 마을로 들어선다. 말이 마을이지 위미리 중심상가 지역이다. 마침 농협 마트가 있어 오늘 저녁과 내일 아침 먹거리를 챙기고,
다시 해변으로 내려가 마을회관을 돌아서니 어둠이 다가온다. 비는 그쳤는데 바람이 심통을 부리는 저녁이다. 해변의 모퉁이를 돌아서니 마침 전망 좋은 자리에 <게스트하우스> 하나가 우리를 유혹한다.
주인장의 안내로 2층 방에 들어서니 풍경이 기가 차다. <바다에 누워>라는 이름답게 바다가 온몸으로 몰려온다. 우리는 거기서 하룻밤을 유하면서 살아있는 바다의 소리를 들었다.
아침이 되어 길을 나서는데 가랑비가 뿌리고 있다. 연이틀을 내렸으면 오늘은 그칠 만도 하건만 오락 가락이다. 길은 해변을 끼고 2층짜리 카페 <서연의 집> 앞길을 걷는다. 영화 <건축학 개론>의 촬영 현장이 여기 어디쯤이란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 영화를 보지는 못한 우리는 <서연의 집>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다.
해변을 조금 걸으니 검은 돌담에 사진들이 줄지어 붙어있는 초가집 하나가 바다를 바라다본다. <마음빛그리미>라는 사진 전문 갤러리 겸 카페라는 간판이 고요하다. <술이 그리우면 언제든지 오시라>는 문간의 안내문이 이런 외진 해변의 갤러리 모습만큼이나 정겹다. 대문이 잠긴 이른 시간이라 우리는 갤러리 내부를 일람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길은 주택가 언덕의 무인카페 <한잔합서>를 지나는데 아직은 한 잔 생각이 없으니 애석하다. 애석한 마음을 지우면서 숲길을 잠시 걷는데 다행히 비는 멎었다. 멎는 비를 생각하며 작은 다리 위의 제주어를 한국어로 번역한 문구 하나를 본다. <무사 경 조들암시니>는 <왜 그렇게 걱정하고 있니>라니, 걱정을 버리자, 참고하자.
비가 멎었으니, 비옷도 벗고 걷는다. 걸으면서 길섶을 보니 굳게 닫힌 대문 옆으로 물구나무선 <꼭두> (전통 나무 조각상), 망보는 <꼭두> 등등 여러 모양의 <꼭두>들이 웃는다.
<꼭두>는 망자의 시자(侍者)들인데 여기가 어딘가, 대문의 간판을 보니 <꼭두 문화연구소>다. 사라져가는 문화유산을 지키고 연구하겠다니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올레는 이처럼 다양하다. -71)-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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