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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 길 위의 풍경>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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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석봉1 2024. 11. 2.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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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최악의 도시

 

피렌체, 베네치아, 밀라노, 나폴리를 비롯해 이탈리아에는 사람의 마음을 끄는 도시가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로마를 온전히 대신할 만한 도시는 없다.

 

로마는 무엇이 특별한가? 우선 예술적 기술적 수준이 높고 규모가 큰 고대 유적이 유럽의 어떤 도시도 따라오지 못할 만큼 많다. 둘째, 세상에 하나뿐인 바티칸 교황청 덕분에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걸출한 건축물과 예술품을 품고 있다. 셋째, 19세기 후반 출현한 이탈리아 국가 수립의 역사를 들여다볼 기회를 제공한다.

 

서구 문명은 도시국가 아테네에서 빅뱅을 일으켰고 로마제국에서 가속 팽창을 했다. 로마는 서구 문명의 가속 팽창 흔적을 지닌 도시답게, 고대부터 현대까지 문명의 발전 양상을 압축해 보여준다. 단 한 번 여행으로 로마의 모든 것을 보겠다는 욕심은 처음부터 갖지 않았다.

 

며칠 동안 부지런히 발품을 팔았지만, 도시의 윤곽을 어렴풋이나마 가늠해 보면서 반드시 가보고 싶었던 공간 몇 군데를 밟아본 게 고작이었다. 그렇지만 로마도 하나의 도시일 뿐이다. 로마에 가서 이탈리아를 보았다고 생각한다면 아주 큰 착각이다.

 

이탈리아는 엄청난 다양성을 지닌 나라여서 어떤 도시도 혼자서는 이탈리아를 대표하지 못한다. 알프스에서 지중해 한가운데로 장화처럼 뻗어 나온 이탈리아반도는 면적의 75%가 비탈진 산과 언덕이다.

 

한반도의 백두대간처럼 이탈리아반도에는 아펜니노산맥이라는 등뼈가 있으며, 한반도의 1.5배인 30만 제곱킬로미터의 국토에 6천만 명이 산다.

 

유시민의 유럽 도시 기행 1(, 도서 출판. 아름다운 사람들) 93~94쪽에서 인용.

 

*각설하고 올레길을 걸어보자.

 

끝없는 바다로 날아갈 듯이 포효하는 호랑이 바위 <호두암>, 입 만대면 젖이 저절로 흐를 것 같은 <유두암>, 무시로 달려드는 강풍에 죽은 듯이 붙어있는 <우묵사스레피>군락들,

 

숲속 공간 형상이 한반도를 꼭 닮은 <한반도 길>, 비만 그치면 무지개가 아롱거린다는 <황고지 못>, <놀멍쉬엉> 가라는 예쁜 정자까지, 그 정자에 앉아 세찬 빗줄기를 말아서 젓가락질하여도 어울리는 풍경들이다.

 

그뿐인가, 이름 모를 예쁜 풀과 나무들이 지천으로 펼쳐진 숲길 속의, 위장병에 좋다는 <갯상추>, 중풍에 특효약이라는 <갯기름나물>, 피부병에 효험이 있다는 <예덕나뭇잎>은 빗줄기로 말아 만든 국수의 고명으로 제격이 아닌가, ~ 속이 쓰리도록 짜릿하다. ~하하!

 

찌릿한 길은 일주문과 사천왕이 나란히 서 있는 다소 생소한 절, <선광사>로 이어진다. <선광사>는 제주도 유형문화재 21호인 목판 본류 <불경 전적> 59(164)을 보존한 사찰이다. 거기에는 경전, 조사 어록, 의례 다수가 포함되어 있어 서지학, 언어학, 국문학 연구에 중요한 자료라 하니 부디 잘 보존되기를 기도드리면서 사문을 나섰다.

 

길은 옛 마을회관을 지나고 <풍경 카페>도 지나서, 촛불시위 때 초를 담은 모양의 망보는 나무 한 그루를 지나, 또 포근한 숲길과 타닥타닥 바닷길로 이어지다가, 보기만 해도 목에 침이 넘어갈 정도로 먹음직한 해산물을 전시한 <위미 바닷가 올레집>이라는 숲속의 음식점을 지나 마을과 해변을 오간다.

 

바닷가 길섶 길이 지루하다 싶으면 숲길이 나오고 숲길에 빠질라치면 마을 길이 나오니 감질나도록 좋다. 으하하.

 

이어지는 마을 길옆으로 높은 동백나무 방풍림은 성벽을 연상케 한다. 안이 보이지 않는 철옹성이다. 이름하여 <버둑할망 돔박 숲> 지금은 떨어지고 푸른 잎만 무성하지만, 꽃이 한창 피었을 때는 온 하늘까지 붉게 물들이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이런 풍경이 있기에는 심은 사연이 왜 없겠는가, 가난한 삶이 남긴 유산이라 더욱 값지고 멋지다. 백년도 전에 어느 가난한 할망 하나가 이곳에 정착하여 손발에 피가 흐르도록 개간하여 농사를 짓는데,……,

 

해마다 해풍이 몰아쳐서 작물을 망치는지라, 해풍을 막을 요량으로 한라산 깊은 곳에서 동백 수백 그루를 캐다 심었다. 그것이 오늘날 제주를 상징하는 나무가 되었다니 자랑스러운 일이다. 최초로 심은 그 나무가 이곳 위미리에 564그루가 살아 있다고 전한다. 일설에는 동백 씨앗을 따서 심었다고도 하는데 그건 중요하지 않다.

 

그 동백이 바람의 피해를 막고 동백기름도 주어 생활이 넉넉해졌다고 전한다. 가녀린 여자가 심은 동백이 오늘날 제주도 지방 기념물(39, 1982년 지정)이 되었으니 영광스러운 나무가 아니던가. 나무 심기나 교육은 백년대계(百年大計)라는 말이 실감 난다.

 

때마침 떨어지는 동백 이파리 하나 위로, 김춘수(1922~2004) 시인의 <>이 펼쳐진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는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누가 이 시를 존재이니 본질이니 하는가, 누가 이 시인을 실험시()의 대부라 하는가! 잘은 모르지만, 꽃은 꽃이요 나무는 나무요 사람은 사람이요 또 사랑은 사랑이 아니겠는가,

 

손가락만 한 나뭇가지 하나가 이렇게 자라서 제대로 된 나무 구실을 하는데, 우리 인간은 과연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스스로에게 하는 질문이다. -70)-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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