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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 길 위의 풍경>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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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석봉1 2024. 11. 1.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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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도 제33, 이상문학상 수상작 김연수의 <산책하는 것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의 마지막 부분을 읽는다.

 

*두 사람은 출구를 빠져나와 고궁 앞 광장을 가로질렀다. 아직 해가 지려면 멀었고, 하늘은 한낮과 다름없이 환하고도 파랬다. 혼자서 걷기 시작할 때,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곳에서부터 걷기 시작한다.

 

저처럼 한낮과 다름없이 환하고도 파란 하늘에서, 혹은 스핀이 걸린 빗방울이 떨어지는 골목에서, 분당보다도 더 멀리, 아마도 우주 저편에서부터, 그렇게 저마다 다른 곳에서 혼자서 걷기 시작해 사람들은 결국 함께 걷는 법을 익혀나간다. 그들의 산책은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동물들과 함께하는 산책과 같았다. 앞으로도, 영원히.

 

주차장을 빠져나온 그들의 눈앞으로 버스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4차선 도로를 봉쇄한 경찰들이 보였다. 어디선가 함성이 요란했다. 두 사람은 눈앞에 펼쳐진 장면을 바라봤다.

 

검은색 진압복을 입고 열을 맞춰 앉아 있는 경찰들과, 그보다 뒤쪽에서 무전기를 든 손으로 팔짱을 끼고 그들을 바라보는 지휘관들과, 그보다 더 뒤쪽에서 대기하고 있는 살수차와, 앞쪽에서 서로 뒤엉킨 채 버스와 담벼락 사이들 막고 선 또 다른 경찰들과, 그들은 검은색 투구에서 2미터 정도 지나가는 바람과, 어디선가 들려오는 함성과 또 다른 함성과……,

 

고통, 아아, 그 고통을, 지네와 베짱이와 수컷 사마귀와, 또 오랑우탄이나 코뿔소, 토끼, 어쩌면 매머드나 티라노사우루스 같은 것들을.

 

어때요? 괜찮아요? 조금 더 걸어볼까요?” Y 씨가 그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더 걸어보자는 말이지요? 그래요. 이 거리, 제가 좋아하는 거리니까.” 그리고 그녀와 꼭 붙어서 다니던 거리니까.

 

맞아요. 저도 좋아하는 거리예요

 

그렇게 걸어가는 그들을 향해 무전기를 든 경찰 하나가 두 팔로 X자를 만들어 보인 뒤, 오른손을 뻗어 길 뒤쪽을 가리켰다. Y 씨와 그는 경찰이 가리키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바라봤다. 또한 코끼리와 지네와 베짱이와 수컷 사마귀와 함께, 그것을. ().

 

**마지막 글 그것을그것이 무엇인고? ~ 어렵다, 어려워. 이해하기 힘들다.

 

***각설하고 우리는 오늘도 올레길을 걷는다.

 

봄비 쏟아지는 남원 포구(이곳이 비안동이라 비안 포구라고도 한다)는 음산하였다. 거리는 비바람이 윙윙거리는데, 올레꾼은 말없이 걷기만 한다.

 

그래도 포구엔 작은 구름다리가 있어 운치는 잃지 않았고 걷는 사람이 짝이라 외롭게 보이지도 않았으리라. 그것이 위안이다. 만약 이런 비에 나 혼자라면 일찌감치 길섶에 늘어선 식당으로 직행하여 소주나 마실 게 뻔하다. 으흐흐.

 

사실, 남원읍은 내 기준에서 보면 제주에서 가장 살만한 곳이다. 우선 한라산 남쪽이라 따뜻하고 바다 조망권이라 경치도 좋다. 그런가 하면 제주시나 서귀포처럼 번잡하지도 않고, 성산포나 한림같이 복닥거리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면() 지역처럼 한적하지도 않다. 적당히 붐비고 적당히 고요하다. 제주도 전체로 놓고 볼 때 남쪽의 중앙으로 대중교통도 나쁘지 않고, 볼거리 먹거리도 적당히 쌓여있다, 그래서인지 육지에서 온 젊은 이민자들이 가장 많은 곳이다. 실제로 나의 절친한 친구(입사 동기)도 부산에서 퇴직하고 이곳으로 이주하여 멋지게 살고 있다.

 

남원읍은 17개 행정동에 인구가 대략 18천여 명이다. 남자가 51%, 이는 제주도 전체와 비교하여 1% 포인트 많은 수준이다. 한편 남원읍은 생활권이 두 구역으로 나뉜다. 남원리와 위미리로, 두 지역이 인구도 비슷하다. 각각 44백여 명 정도다. 관내에 중학교가 두 개인데 동쪽은 남원 중학교 서쪽은 위미 중학교.

 

지역농협도 남원농협과 위미농협으로 독립되어 있다. 아마도 한 읍에 두 개의 지역농협이 있는 곳은 전국에서 유일무이할 것이다. 그만큼 남원읍은 생활권이 둘로 나뉘어 있다는 증거다. 그래서 더 매력적이다. 하나로 모여 있으면 여유가 덜하기 때문이다.

 

5코스는 이런 남원리와 위미리를 걷는 길이다. 길을 걷다가 여차하면 길에서 빠지기에도 편하다. 길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주택이고 점포다. 숨어들기에도 적당하다. 또 홀로 걸어도 으스스하거나 무시시 한 산길도 없다. 4코스와는 다르다. 그래서 걸어 보니 이 코스가 편하고 좋았다.

 

길은 시작점에서부터 해안도로를 걷는다. 왼쪽은 출렁거리는 바다요, 오른쪽은 영업 시설들이 즐비한 상가다. 그런 길을 조금 걸어들어가면 도롯가에 명언들을 새긴 막돌들이 촘촘히 박혀있다. 남원1리 주민 자치위원회에서 자치위원 한 사람이 돌 하나씩을 심었다.

 

하나하나 읽어보니, 가슴이 따뜻해진다. 애향심이 대단함을 느끼면서 길을 걷는데 비는 계속 쏟아지고 등산화는 속까지 물이 질척거렸다. 질척거리는 길을 오르니 길은 아예 물길이 되어 흐른다.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가 거세게 들리는가 했는데, 길은 바로 <큰 엉>으로 접어든다. 엉은 언덕이니, 밀려오는 바다를 집어삼킬 듯이 입을 크게 벌리고 서 있는 저 큰 바위 언덕이라 곧 <큰 엉>이리라.

 

그런 절경 위에 2km가 넘은 산책길이 펼쳐지니 금상첨화(錦上添花). 절벽 위의 숲속 길은 얼마나 호젓하며 길 아래 간간이 보이는 기암괴석(奇巖怪石)은 또 얼마나 살아 있는 모습인가! -69)-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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