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때문에 곤혹(困惑)스러운 상황을 당한 본인이고 보면 ‘술’이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읽은 사람들을 위하여 올레
길 풍경을 읽기 전에 ‘술’에 대하여 몇 가지 알아보자.
*술에 관한 이야기라면 누구나 할 말이 많을 것이다. 그만큼 술과 와 관련해서는 사연도 많고, 알고 있는 것도 많다는 이야기다. 음주량도 저마다 만만치 않다.
술에 대한 통계도 여러 가지다. 2006년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 사람당 맥주 80병과 소주 72병을 마셨다. 여기에 양주와 와인 등을 합하면 적지 않은 양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 전체 인구 중에 6.8%가 알코올 장애를 겪고 있으며, 음주로 인한 질병 때문에 소비되는 사회·경제적 비용이 2조 7.917억 원이나 된다. 또한 직장인의 결근 이유 중에 44.3%가 술 때문이라고 한다.
술이 지나치면 독이다. 술로 스트레스를 푼다지만, 따지고 보면 만병의 근원 중 하나가 과음이다. 과음은 육체적 질병뿐만 아니라 정신까지도 피폐하게 만든다. 과음은 또 행복한 가정을 파괴 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래저래 지나친 음주는 금물이다.
하지만 적당히 마시면 술도 약이 된다고 한다. 실제로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 사람보다 하루에 석 잔 이내로 마시는 사람이 장수한다는 연구 보고가 있다. 심장병과 소화불량, 심지어는 당료에도 효과가 있다고 하니 무조건 금주할 일만은 아닌 것 같다.
다만 한 가지 지켜야 할 것은 술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적당히 마셔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몸과 마음을 망가뜨리니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술도 아는 것이 힘이다.
『술, 알고 마시면 장수한다.』 <현, 한국소설가협회 회장, 이상문(1947~현재) 저, 2007년 김&정 출판사 간행>, 서문에서 인용함.
**각설하고 오늘도 우리는 올레길을 걷는다.
▲오후의 <고내 포구>는 조용하였다. 15코스를 마친 우리는 무인카페와 <우주물> 앞의 올레 간세를 뒤로하고 16코스를 계속 걸어 나갔다. <우주물>이란 바닷가의 용천수를 말하는데 ‘언덕 사이 물 우’에 ‘물놀이 칠 주’ 즉 언덕 사이로 나오는 물에서 물놀이를 친다는 뜻도 있다고 표시판이 설명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하루에 한 코스씩만 걸었는데 오늘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시간과 체력이 허용하는 대로 걸을 예정이다. 그것이 올레를 걷는 또 다른 묘미가 아닐까 해서다.
해안 길을 걸어 오르니 검은 노을을 받은 작은 공원 하나가 의연한데, 공원엔 비석들이 가득하다. 가운데 높은 비석 하나, 그 양쪽으로 작은 장군 석상이 둘인데, 왼쪽 석상 옆은 <새별오름>, 오른쪽 석상 옆은 <항파두리>라는 방향 표석이 두 장군을 호위하고 있는 듯하다. 합이 다섯의 검은 돌들은 지는 노을을 받아 더욱 검붉다.
제주의 비석거리는 수없이 보았지만, 이런 기이한 광경은 처음이다. 기이하지만 균형 있고 매력적이다. 그들의 매력에 이끌려 다가가니 가운데 표석에는 <애월읍경(涯月邑境)은 항몽멸호(抗蒙滅胡)의 땅>이라는 세로로 새긴 한자가 선명하다.
애월읍은 몽골에 항거하고 목호들을 멸한 위대한 지역임을 기념하는 공원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런데 두 장군상은 누구신가?
오른쪽은 <항파두리>에 성을 쌓고 항거하다가 붉은오름에서 전사한 삼별초 김통정(?~1273) 장군이요, 왼쪽은 새별오름에서 말몰이꾼<목호>들을 토벌한 고려국 최영(1316~1388) 장군이 아닌가, 아, 저 푸른 파도가 내려 보이는 이곳에서 그분들을 동시에 만나다니, 절묘한 위치에 절묘한 만남이다.
항몽멸호, 생각하면, 그들은 서로 같으면서 다른 사람들이다. 몽골군을 상대로 싸운 것은 같으나, 최영은 승리의 장수고 통정은 패장이니 그것이 다르다. 통정이 여몽(麗蒙) 연합군에게 밀려 숨을 마치는 날이 탐라가 원의 식민지가 된 그날이고, 최영이 반발하는 몽골의 <목호>들을 몰아낸 날이 탐라가 조선에 완전히 귀속된 그날이다.
시차는 백년이 흐른다. 삼별초가 패배한 후 1천4백 명의 몽골군이 제주에 주둔했다는데, 최영 장군이 2만 5천의 군사를 이끌고 3천 명의<목호>를 소탕했다니, 백년 사이에 <목호>의 수가 배가 늘었다. 그것은 변방 섬사람 제주인의 운명이리라.
그래서 제주의 역사는 반역이다. 조정에서 보면 삼별초는 반란군이고, <목호>는 점령군이지만 제주에서 보면 반반이다. 삼별초에도 <탐라인>들이 합류하였을 것이고, <목호>들도 <탐라인>들의 피가 섞였을 것이다. 변방의 비극이다. 비극도 전염된다. 언덕 위의 두 장군상이 나의 목을 조른다. 트레킹의 목적이 풍경이니 여기까지만 생각하자.
우리는 검은 <해녀상>과 <재일 고내인 시혜 불망비>라는 뜻깊은 표석도 지나면서 다시 한번 제주인의 고향 사랑과 후손들의 선인(先人) 칭송 정신을 느낀다.
이어 공원 한쪽에 있는 포장마차에서 어묵 하나씩으로 입맛을 다시고, 출렁거리는 바닷가에 기암괴석(奇巖怪石)이 숲과 어우러진 모습과 오른쪽으로는 오색찬란한 집들이 잘 어울리는 길을 걸어 나갔다.
간간이 올레꾼들이 스친다. 전망 좋은 <남두 연대>에 서니 이국의 풍경이 떠오른다. 제주의 서북쪽 바닷가가 이렇게 감미롭다니 의외(意外)다. 견문이 부족한 나의 잘못이다.
해변을 바라보는 오른쪽은 관광단지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숙박업소들이 성업 중이고, 또 신축 현장도 많다. 머지않아 신엄리, 중엄리, 구엄리 일대가 제주 제일의 관광지가 될지도 모르겠다.
<바르게 살면 미래가 보인다>라는 공자님 같은 표석을 뒤로하고 길을 걸으니<해녀의 집>에 이른다. <해녀의 집>은 제주에 흔히 볼 수 있는 상호다. 구름 속의 해도 바다로 떨어질 시간이다. 이쯤에서 우리는 오늘 하룻밤 묶을 집을 찾기로 하였다. -57)-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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