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노트>
*80년대부터 산행을 했다. 산이라는 의미와 산행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때였다. 산이 나를 이끄는 길, 그 길이 자연으로 가는 길이었다.
작은 감동들이 쌓여 어찌할 수 없이 사진을 찍던 날, 나는 작은 카메라였다. 발자국 소리를 내며 여기저기 다녔다. 렌즈를 통해 산을 찍다가 아, 하고 소리를 내기도 했다. 하늘을 만나고 멀리 있는 공간을 바라보거나, 발밑의 세계, 작은 꽃들을 바라본다는 건, 배움이었다.
최근 15년간 카메라 장비를 메고 전국을 다녔다. 고생과 위험이 뒤따를수록 더 새로워졌다. 새로움을 느끼는 작업, 산 꽃과 들꽃들이 건네는 세밀한 신호를 포착하려고 애썼다.
접사렌즈에 숨은 그 무엇, 신비로울수록 더 궁금해지는 세계, 그들의 야생은 우리에게 어떤 길을 안내하는 걸까.
산 꽃 들꽃의 야생은 여리면서도 강하다. 생태 환경이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눈 속에서도 봄을 알리는 꽃이 핀다. 바위틈에서도 꽃이 피어나고 습한 곳에서도 핀다. 가뭄에 고사해도 다음 해에 다시 피어난다. 극심한 환경에도 적응하는 이 모든 꽃들…이들을 만나는 게 공부였다.
자연을 배우게 하는 게 산행의 의미가 아닐까, 피어나고 싶은 떨림으로 가득 찬 우리 모습이, 어쩌면 산일지도 모른다.
2018년 08. 김복섭
**김복섭 사진작가는 경남 국제사진 페스티벌 조직위원회 기획위원(Curator)이요, GROP 경남 사진 학술연구원 회원이며, IPA 국제사진가협회 회원이다. 그는 농협에서 정년퇴임하고 사진작가로의 길을 걷고 있다. 그의 앞날에 영광 있기를 기원한다.
***각설하고 오늘도 우리는 걷는다.
▲길은 수원리 사무소를 지나 차도를 건너서 본격적인 들길로 들어선다. 들은 넓다. 들길 초입에 선 비닐하우스 몇 동, 바람이 하우스 안을 휑하니 지나간다. 찧어진 하우스 안에는 거미줄이 바람에 흔들거리고 있다. 황량하다.
처음 설치할 때는 정부의 보조금도 받고 자부담도 많이 들었을 터인데, 이렇게 방치되고 있으니, 사연이야 있겠으나 안타까운 마음이다. 이런 현상들은 비단 제주뿐만 아니다. 전국적으로 막대한 국고를 투자한 기업농들이 성공하지 못하고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는 미국이나 중국처럼 광활한 토지도 없다. 그러다 보니 영농규모도 소농(小農)이기 때문에, 기업농보다는 <가족 복합농(複合農)>이 더 경제적이라는 생각을 또 하게 된다. 말 그대로 가족이 함께하는 농사(축산. 원예. 채소. 과수. 등)를 짓는다는 뜻의 가족농이다.
부질없는 생각을 떨치고 또 길을 걷는다. 넓은 들을 지그재그로 이어 가던 밭길은 일주도로를 건너 대림안길 입구에서 마을 속으로 들어선다. 마음 초입에 정원이 깨끗한 집 한 채. 노란 잔디에 검은 디딤돌이 조화를 이룬 집에 대문은 없었다. 대신 정주석에 정낭 세 개가 가로 걸려있었다. 반가운 제주의 풍경이다.
주인은 장기 출타 중이겠지만 들어가서 물 한 잔 얻어 마시고 싶은 집이다. 제주도의 가정집은 원래 대문이 없는 대신, 대문간 양쪽에 위아래로 구멍 세 개를 뚫은 작은 돌기둥(정주석)을 세워서 거기에 나무막대기(정낭)를 끼어 집주인의 현상을 알린다.
정낭 하나면 주인이 잠깐 외출한 것이고, 둘이면 저녁때쯤 돌아오겠고, 셋이면 장기 출타 표시라고 한다. 이 얼마나 이웃과 방문객을 배려하는 풍습인가,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풍습은 더욱 발전적으로 이어 갔으면 한다.
이제 올레길은 마을과 들길을 지나 다시 마을 속의 <성로동 농산물집하장>을 지난다. 농산물집하장은 농산물을 수집하여 백화점이나 공장을 비롯한 대랑 수요처에 공급하는 곳이다. 농산물 유통의 동맥이다. 창고 같은 농산물집하장에는 채소류를 상자에 담는 작업이 한창이다. 애써 키운 채소가 제값을 받았으면 좋겠다.
길은 다시 <그루터기>라는 작은 쉼터도 지나고 <귀덕 농로>라는 밭길을 돌고 돌아 작은 다리 두 개도 지나서 선운정사(禪雲精舍)란 큰 절에 이른다. 어제는 대문도 없는 작은 절을 보았는데 오늘은 큰 절이다. 절에는 대단한 불사를 준비 하는 양 분주하다. 주차장에는 차들이 즐비하고 절 안에는 신도들이 분주히 거니는 모습이 보인다.
절이 이쯤 되어야 스님들이 살맛이 나지 않겠는가. 절 안이 바쁜 것 같아서 들어가서 절도 못하고 돌아섰다. 모처럼 성황을 이루는 절을 만나니 그동안 만난 초라한 절들이 안쓰러워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도(道)가 넘치면 도가 아니듯이, 절 뒤편으로 또 큰 규모의 건물 두어 채를 더 짓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지만 어쩌랴, 부처님이 하시는 일이니, 우리는 절 앞에서 왼쪽으로 꺾어 조그만 고갯마루 공터에 앉아 준비해 간 김밥 한 줄을 안주 삼아 막걸리 한 통을 비우고 몸도 풀었다. 어허 좋다.
그곳 고갯마루에서 내려다본 마을이 들판만큼이나 넓고 깨끗하여 지나가는 이에게 마을 이름을 물어보니 <납읍리>라고 알려준다.
올레는 버드나무가 많은 연못이 있었다는 <버들못 농로>라는 길을 돌아 중산간서로를 조금 올라가니 떨어진 동백꽃이 한길 바닥을 붉게 물들인 마을 길로 들어선다. 떨어진 동백은 언제나 핏빛이었다. 처절하기까지 하다.
길은 납읍초등학교 앞 삼거리에서 멈추고 오른쪽을 가리킨다. 가리키는 쪽을 올려다보니 큼지막한 숲이 <울울창창(鬱鬱蒼蒼)>하다.
마을 사람들이 사랑하는 <금산공원>, 1만 3천여 평의 난대림 지역에는 후박나무, 생달나무, 종가시나무를 비롯한 회귀 식물 200여 종이 서식하고 있다는 천연기념물 375호로 지정된 공원이라고 입구 안내판이 설명하고 있다.
공원 속으로 들어가서 공원을 한 바퀴 돌아보니 숲은 깊고 고요한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 바람 소리, 그 바람 소리를 따라 눈을 돌리니 사당 한 채가 눈길을 끈다. 마을제를 지낸다는 <포제단>이다.
제주의 마을제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고 한다. 제의 주관을 남성이 하느냐, 여성이 하느냐에 따라 남성이 주관하면 유교식 <포제>요, 여성이 주관하면 무속 식 <당굿>이라고 한다. 그러니 이곳 <포제단>은 남성의 공간인 셈이다. 어허 제(祭)까지 남녀 구별이라…… 이것만은 제주답지 못하다.
공원을 돌아 나와서 운동장이 넓은 납읍초등학교로 들어섰다. 푸른 인조 잔디가 도시학교 부럽지 않다. 넓고 깨끗한 운동장 못지않게 단층의 교사도 산뜻하다. 방치한 비닐하우스를 제외하면, 기분 좋은 길이다.-55)-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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