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천은 예부터 물이 많고 평야가 넓으며, 토지가 비옥하고 풍수해가 없어 농사가 잘되는 고장인 연유로 인심이 후덕하여
생거진천(生居鎭川)이요, 용인은 산자수명하고 산세가 순후하여 사대부가(家)의 유명한 산소가 많다 하여 사거용인(死居龍仁)으로 불리었다.
또한 이와 관련한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진천과 용인에 사는 동명이인(同名異人) ‘추천석’에 관한 것이다. 진천에 사는 ‘추천석’은 마음씨가 착하고 농사만 짓는 사람인데, 저승사자가 실수로 용인의 ‘추천석’이 아닌 진천의 ‘추천석’을 데려와 다시 돌려보냈다.
그러나 이미 장사를 지낸 이후이기 때문에 용인의 ‘추천석’을 잡아들이고 그 시체에 진천의 ‘추천석’의 영혼을 넣어 환생시켰다는 것이다. 그래서 살아서는 진천에 살고, 죽어서는 다시 환생하여 용인에 살았다고 하여 생거진천(生居鎭川) 사거용인(死居龍仁)이라 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진천 농다리 현장에 있는 <진천군의 안내판>의 설명임.
**각설하고 오늘도 올레길을 걸어보자.
▲학교를 빠져나와 마을 길을 걸으니 마을역사가 상당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우선 마을 공동 화장실을 비롯한 <효도 시험 마을>과 <선비마을>이라는 표지석에, 마을 노래비까지 세워져 있고, 또 공동식수장인 <공동정호>라는 옛 우물터도 비범하고, 큼지막한 도로와 고목의 가로수들이 마을의 역사를 말하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둘레에는 보건진료소, 새마을금고, 그리고 현대식 연립주택들이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어 옛것과 새로움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육지로 치면 조그마한 면 소재지쯤은 됨직하다. 그러니 제주의 리장(里長)은 육지의 면장(面長)과 버금간다고 할 수 있겠다.
한 번쯤 살아보고 싶은 마을을 빠져나와 차도를 건너 왼쪽 오솔길로 들어서니 <백일홍 길>이다. 여름이면 백 일 동안 꽃이 붉게 핀다는 <백일홍 길>에는 정작 있어야 할 배롱나무는 보이지 않으니 왜 <백일홍 길>이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이어지는 과오름 둘레길과 도새기(돼지) 숲길은 발이 편한 길이다. 강조하면, 마을 길은 눈이 즐겁고 숲길은 발이 즐겁다. 이곳 주변에 돼지를 도로에까지 풀어 길렀다고 하여 도새기 길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날 돼지는 보지 못했다.
원시림이 가득한 숲길을 빠져나와 포장길과 들길을 걸으니 고래 등처럼 긴 고내봉이 다가온다. 고내봉은 망오름을 주봉으로 서쪽의 방애오름, 남동쪽의 진오름, 남서쪽의 너분오름, 남쪽의 상뒷오름 등 다섯 오름이 주위를 둘러싼 오름 군(群)이다. 고내봉 입구에서 하가리의 갈림길까지가 2.5 Km라고 올레 표시판에 적혀있다.
산 입구의 소나무 숲길에 들어서니 일주문 대신 종각(鐘閣)이 우뚝 선 사찰 하나, <보광사 범종각>이라는 현판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산속에서 절을 보는 일이야 흔한 일이지만 이렇게 종각이 절 입구에 높이 버티고 서 있는 절은 본 적이 있었던가, 아, 기억에 없다.
그럼, 이 절은 어느 종파에 속한 절(寺)일까? 혹시 제주가 고향인 일붕 서경보 선사가 창설한 일붕선교종 사찰이 아닐까? 생각하며 산을 올랐다.
여기서 잠깐, 우리나라 불교 종파를 보면, 우리가 흔히 접하는 조계종, 태고종, 천태종. 진각종. 정토종을 비롯하여 무려 36개나 된다고 하니, 불교 갈래가 이렇게 많음은 나도 미처 몰랐었다.
일붕선교종도 1988년 <대한불교 협의회>에 등록된 종파임은 물론이다. 특히 제주에 일붕선교종 사찰이 많은 것은 일붕 선사의 영향이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다. 일붕 서경보는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71개의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기네스북에 등록되어 있으며, 그 외에도 수많은 업적을 남기고 1996년 6월에 입적하신 분이다.
여행에서 돌아와 일붕선교종 홈페이지에서 확인하니 소속 사찰 명부에 보광사는 없었다. 일설에는 보광사가 조계종 말사라는 의견도 있어 조계종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였으나 거기에도 등록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조계종 23교구 본사인 한라산 관음사에 전화로 확인하니 <사고 사찰>이라는 설명이었다. 어떤 사연인지 모르지만 서로 다툼이 있어 족보가 없어졌다면, 부처님께 부끄러운 일이다. 중생들이여, 싸우지 말지어다.
올레길은 보광사 입구에서 절을 끼고 오른쪽으로 산을 오른다. 산속의 소나무 숲길은 울창하고 편안하고 시원하다. 고내봉 정상에는 전망대가 높게 서 있는데, 여기서 보는 한라산과 애월항 풍경이 절경이라는데 오늘은 구름 탓에 잘 보이지 않는다.
내려오는 길섶의 하르방 당(堂)은 표석이 없었다면 알아볼 수 없을 것이다. 당이라 생각하니 갑자기 신령스러워진다. 두 손을 모으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아직도 나약한 존재일 뿐이기 때문이다.
고내봉 둘레길을 따라 내려온 길에는 일제강점기인 소화(昭和) 시절 하가리 주민들이 세운 동지천(冬至泉)과 그 표석이 돌기둥으로 서 있는데, 한겨울에도 샘물이 마르지 않는다고 지어진 이름이란다.
포장길은 고내 교차로로 이어진다. 교차로에서 일주도로를 건너니 마을 입구 대로변에 산뜻한 집 한 채, 아담한 커피점이 길손을 반긴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들러서 맛보고 갈 만한 위치의 집이라는 생각이다.
길은 15코스 종점을 향하여 마을 사이의 밭담 속으로 이어진다. 두 사람이 피할 수도 없는 <배염골>이라는 아주 좁은 풀밭 길을 걸으니 뱀이 다리를 기는 듯이 스멀거린다. 아직 뱀들이 제집에서 나올 시기가 아닌 듯 보이지는 않았다.
길은 마침내 바다향이 물씬 풍기는 고내 포구에 다다른다. 포구는 바람도 멎은 듯 포근하였다. 올레 종점 간세를 찍고 하늘을 보니 아직도 하루해가 남았다. 풍경도 좋고 길도 좋아서 우리는 16코스를 더 걸어 나갔다. 적당한 숙소를 만날 때까지, 오늘은 올레길 위에서 하룻밤을 지낼 예정이다. -56)-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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