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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 길 위의 풍경>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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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석봉1 2024. 10. 12.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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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0일 저녁 8(한국시간), <노벨문학상>을 한국의 한강 작가에게 주기로 발표함, 그래서 온 나라가 환호와 흥분으로 들떠있다. 그래서 그녀의 책, 일부를 소개한다. 한강(1970~현재) 소설가의 연작소설(聯作小說) 채식주의자도입부다.

 

-초판 1쇄 발행(20071030), 초판 44쇄 발행(20161220) 발행처, 창비.-

 

*아내가 채식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그녀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끌리지도 않았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키, 길지도 짧지도 않은 단발머리, 각질이 일어난 노르스름한 피부, 외꺼풀 눈에 약간 뛰어나온 광대뼈,

 

개성 있어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는 듯한 무채색의 옷차림, 가장 단순한 디자인의 검은 구두를 신고 그녀는 내가 기다리는 테이블로 다가왔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힘 있지도, 가냘프지도 않은 걸음걸이로.

 

내가 그녀와 결혼한 것은, 그녀에게 특별한 매력이 없는 것과 같이, 특별한 단점도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신선함이나 재치, 세련된 면을 찾아볼 수 없는 그녀의 무난한 성격이 나에게는 편했다. 굳이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박식한 척할 필요가 없었고,

 

약속 시간에 늦을까 봐 허둥대지 않아도 되었으며, 패션 카탈로그에 나오는 남자들과 스스로를 비교해 위축될 까닭도 없었다.

 

이십 대 중반부터 나오기 시작한 아랫배, 노력해도 근육이 붙지 않는 가느다란 다리와 팔뚝, 남모를 열등감의 원인이었던 작은 성기까지, 그녀에게는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으흐흐 섬세함이란! -이하 생략

 

**각설하고 올레길을 걸어보자.

 

우리는 그네 의자에 앉아 망중한을 즐기다가 돌담 속에 잔디길, 201111886m를 복원하여 올레길 13코스에 편입한 <잣 길>이라는 포근한 길로 들어섰다.

 

돌담 안의 길은 온통 초록인데, 초록은 동색이라지만 색깔로만 따진다면 초록이라고 다 초록은 아니더라, 보리밭은 연록이고, 마늘밭은 파랗고, 감귤밭은 진초록이더라. 으하하

 

초록의 길은 낙천리 마을을 비켜 돌아 <흥법사>에 다다른다. 절이라기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일주문도 없는 달랑 집 한 채뿐인 절이다.

 

그런 <흥법사>를 지난 길은 마늘밭과 보리밭과 그리고 작은 산길도 걷고, 귤나무 묘목밭도 지나고, 또 노란 유채꽃 길도 지나서 길은 뒷동산 아리랑길에 이른다. 올레 간세에는 아리랑 고개처럼 구불구불 올라간다고 아리랑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적고 있다.

 

이제 오늘의 마지막을 장식할 저지오름 초입에 다다른다. 오르막길을 숨차게 걷는데 언제 우리 뒤를 따라왔는지 젊은 부부가 우리를 스치고 지나 우리 앞을 걷는다. 아무래도 세월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오름을 오르는 길가의 묘지 봉우리엔 할미꽃이 붉게 피를 토한다. 오름 입구 화장실을 지나 주민체육공원에서 봉우리마다 점점이 맑은 공동묘지를 바라보며 준비한 간식을 먹는다. 먹기 전에 나는 막걸리 통의 막걸리를 조금 비워 묘지 위에 뿌렸다.

 

저지오름(楮旨岳, ()는 닥나무 저()), 혹은 닥나무가 많았다고 하여 닥모르 오름, 해발 239m, 2007년 가장 아름다운 숲길, 생명의 숲길로 선정된 오름, 날씨가 흐리다는 핑계로 정상에는 오르지 않고 오름의 허리를 한 바퀴 돌고 내려왔다. 사실은 오늘 저녁 비행기가 예약되어 마음이 좀은 급했었다.

 

오름을 내려서니 바로 마을로 이어진다. 마을 속으로 걸어 차도에 이르니 농협지점, 치안센터, 보건진료소 등의 공공시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저지리>는 중산간의 생활중심지쯤 되는 것 같다. 저지마을회관, 여기가 올레길 13코스의 종점이고 14코스와 14~1코스의 출발지다.

 

여기서 남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장쩌민과 후진타오가 다녀가고 중국 교과서에도 소개된 명소라는 <생각하는 정원>이 있다는데, 아쉽지만 우리는 다음 기회에 찾기로 하고 패스한다. 언젠가 14코스를 걷게 될 때 이곳에서 하룻밤 머무를 기회가 있을 것인가?

 

제주 올레, 13코스, 다 걷고 보니 진기록도 많고 감동도 많았던 길이다. 남편과의 절의를 지킨 절부암, 다섯 평짜리 나그네교회, 한 평짜리 효의 중심 제주 모모, 감동 덩어리 무료 카페, 일주문도 없는 절, 작고 변변치 않았지만, 모두가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현장이 아니던가!

 

제주 올레가 아니면 어디서 이런 명물들을 만날 수 있으리오, 걷기를 마치고 우리는 공항으로 향했으나 그날 비행기는 날지 못했다. 뜻밖의 천재지변이 있었다. -53.-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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