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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 길 위의 풍경>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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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석봉1 2024. 10. 10.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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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제33, 이상문학상은 김연수 작가의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을 선정하였다.

 

*대상 수상작 선정 이유서

 

김연수 씨는 한국 소설 문단에서 독창적인 서사적 기법을 바탕으로 소설 미학의 새로운 경지를 열어가고 있는 작가다. 소설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은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본원적인 고통의 의미를 코끼리라는 상징을 통하여 텍스트 내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조명하고 있다.

 

이 작품이 구축하고 있는 서사 공간은 메타적 글쓰기의 방법에 의해 상호 텍스트적 중층성(中層性)을 확립하고 있다. 이러한 특징은 현실 세계를 전체적으로 반영한다는 삶의 실재성을 추구한다든지 하는 리얼리즘적 관점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대신에,

 

텍스트 내부의 세계를 새롭게 구조화하면서 텍스트 내적인 세계와 현실 세계 사이의 관련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요구한다. 이 작품이 지향하고 있는 메타적 속성이 서사의 세계에서 자기 탐닉적(耽溺的)인 요소에만 집중되지 않고, 오히려 서사적 자아와 현실 자체를 해체(解體)시켜 놓고 있다는 점에서 하나의 역설적 상황으로도 읽혀진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이상문학상 심사위원회는 이 작품이 궁극적으로 소설의 미적 자율성에 대한 작가의 신념을 형상화하는 데에 성공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여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의 영예를 드린다.

 

20091, 이상문학상 심사위원회. 김윤식. 윤후명. 권영민. 조성기. 최윤 *2009이상문학상 작품집5쪽에서 인용함.

 

**각설하고 올레길을 걸어보자.

 

이어지는 용수저수지는 철새도래지라 조류 인플루엔자(AI) 감염 위험으로 출입이 통제되고 있었다. 그래서 우회하여 걸었다. 저수지 끝자락에서 못 둑에 올라 저수지를 바라보니 제주도에도 이런 호수 같은 저수지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넓다.

 

저수지가 있으면 논도 있어야 제격인데 주위에 논은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벼농사를 지을 요량이었을 터인데 논은 어디에 숨었을까? 궁금하지만 물어볼 사람도 없으니 그냥 넘어가고 걷는다.

 

용수저수지를 지난 길은 밭길로 이어진다. 보리밭의 보리들이 바람에 쓰러지고 일어선다. 마치 김수영 시인의 <>처럼, 이어지는 푸른 마늘 밭길도 지나는데 어느 집안의 가족 묘원(墓園)이 눈을 즐겁게 한다. 산뜻하다. 작고 검은 비석들이 질서 있게 놓여있다. 현대적이고 이국적이다.

 

조상님들을 한 자리에 모시니 얼마나 경제적이고 편리하겠는가. 합동으로 참배하니 보기 좋고 후손들끼리 우애도 좋을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 사실 이런 산뜻하게 차린 <가족 묘원>은 제주 곳곳에 있었다. 좁은 땅덩어리에 큼직하게 단독으로 설치한 묘지들은 바람직스럽지 못해 보인다.

 

길은 한라산을 향하여 동쪽으로 이어지면서 낮은 구릉과 들을 지나는데, 이름들도 다양하다. 특전사 군인들이 만들었다는 특전사 길을 비롯하여 쪼른 숲길, 고목 숲길, 하동 숲길, 고망 숲길, 길마다 안내판이 말한다. 나도 기억 좀 해달라고!

 

, 기억난다. 뿌리 하우스 교차로에 걸려있는 플래카드 속의 길, 용수저수지에서 특전사 길까지의 구제역 예방을 위한 통제, 사연은 모르지만 걸어보니 장애물은 없었다.

 

그 길들 중에 특별히 길 하나를 또 기억하자. 이 길을 걸은 나그네라며 당연히 기억할 것이다. 활짝 핀 고사리가 길 위로 지천인 고사리 숲길, 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새()집 같은 작은 카페를 만난 그 길 말이다.

 

무료 숙소에 이어 이번에는 <무료 쉼 팡>이다. 물과 차가 있는 쉼 팡, 다가가니 <가스렌지>까지 준비한 아주 작은 집, 가스 불에 물을 끓여 커피 한 잔을 마시니 가슴은 뜨겁고 머리는 개운하다. 조수리 청년회의소의 정성이 가슴을 데웠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쉬운 일 같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조수리 청년회는 이외에도 매달 소년소녀가장을 돕고 있다니 길손들이 배워 가면 좋겠다. 감동에 감동을 더한, 이용객들의 메시지가 <쉼 팡>의 작은 벽을 가득 채우고 있음은 인지상정이다. 우리도 다음과 같은 메모지 한 장을 덧붙였다.

 

-바람이 심한 4월 초 한적한 숲에서 노천카페에서/ 따뜻한 커피 한 잔에/ 바람은 녹고 마음은 뜨겁다// 한 잔의 인심이 수많은 가슴을 데우는데/ 바람아 불어라 사람은 걷는다/ 또 하나의 교회여 조수리여 안녕! 조수리여 영원~하라! -육십 대 중반의 올레꾼 부부가-

 

<쉼 팡>에서 몸과 마음을 녹인 우리는 아홉굿마을이라는 낙천리(樂泉里)로 들어섰다. 우선 아홉 굿이란 말이 생소하다. 굿이란 육지의 굿이 아니다. 물구덩이란 뜻이란다. 물구덩이가 아홉 개라는 말은 이곳이 그만큼 물이 많다는 뜻이다.

 

지하로 흐르는 물줄기가 많으니, 물이 귀한 제주에서는 그만큼 복 받은 마을이다. 그래서 지명도 낙천리(樂泉里)가 되었을 것이다.

 

복 받은 마을은 그 복을 길손에게 돌려주려는 듯 마을 입구에 의자 공원을 만들었다. 공원에는 백여 명이 넘는 여러 모양의 의자들이 부는 바람에 흔들리는 듯, 살아있는 듯 놓여있다. 처음 보는 진기한 풍경이다. 왜 낙천리 사람들은 하필이면 의가 공원을 만들었을까? 참으로 궁금하다.

 

공원 안에는 조그마한 공연무대까지 차려져 있다. 연극이나 영화가 시작되면 관객도 있어야 하니 아예 의자로 관람석을 장치하고 그대로 연기나 상영만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편리함만으로 의자 공원을 만들지는 않았으리라.

 

수많은 의자를 보면서 삶이란 무엇일까? 삶은 의자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임자가 따로 있나 앉으면 주인이지……, 유행가 가사처럼 인생도 앉으면 되는,……, 것인 것을, 으흐흐, 52)-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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