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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 길 위의 풍경>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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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석봉1 2024. 10. 8.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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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도 제22이상문학상에는 은희경 작가의 단편 소설 아내의 상자가 선정되었다. 그럼, 수상작 선정 이유서를 읽어보자

 

*1998년도 제22, 이상문학상의 대상 수상작으로 은희경 씨의 소설 아내의 상자를 선정한다. 은희경 씨는 특히 소재와 주제의 신선함과 절묘한 표현 기법, 완벽한 작품 구성력을 과시하며, 단시일 내에 문단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로서의 위치를 굳힌 작가다.

 

이번에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아내의 상자는 일상의 삶 속에서 소멸되어 가는 인간의 존재 의식을 세련된 감각과 간결한 언어로 깊이 있게 추구하고 있으며, 단편 소설의 완결성과 그 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이 작품은 새로운 세기를 눈앞에 두고 있는 한국 소설 문단에서 여성 소설이 이룩한 문학적 성취를 대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또한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과 능숙한 구성력 그리고 인간을 꿰뚫어 보는 신선한 시선에 의해서 시적 은유(隱喩)와는 또 다른 소설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이 작품이 한국 소설의 지평을 한 차원 높이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여 이상문학상의 영예를 드린다. 작가에게 축하를 보내며, 아내의 상자에서 볼 수 있는 소설적 성과가 오래 기억될 수 있기를 바란다.

 

19981. 이상문학상 선고위원회. 이어령· 이재선· 최인호· 오정희· 권영민. 이상문학상 작품집3쪽에서.

 

**각설하고 올레길을 걸어보자.

 

제주 올레, 길 위의 풍경-13코스(용수~저지 올레)

 

오늘은 제주의 서쪽, 13코스를 걷기로 했다. 서쪽은 처음이다. 출발점인 용수포구에 들어서니 포구는 옹골차고 아늑한데 바람은 한없이 거칠다. 이미 강풍경보가 내려진 터라 각오는 했었지만, 눈을 뜨기가 어려울 정도다. 침침한 눈으로 포구를 바라보니, 저 멀리 제주의 최서단 차귀도가 물 위에서 어른거린다.

 

꽃잎은 떨어져 봄은 오는데 포구는 아직도 쌀쌀하다. 아마도 바람 때문이리라. 포구 오른쪽, 검은 십자가가 하늘에 걸려있는 하얀 건물, <김대건 신부 제주 포착기념성당>은 이국적이고 궁금하나, 아쉽지만 다음번 12코스를 걸을 때 끝머리에서 만나기로 하고,

 

포구의 출발점을 나서니 바로 <절부암(節婦岩)>이란 제주기념물 9, 넓은 바위가 눈길을 끈다. 바위가 제주기념물이 된 내력이 고전적이다.

 

풍랑을 만나 실종된 어부 강사철의 아내 고 씨는 남편과의 절개를 지키기 위하여 소복을 입고 나무에 목을 매고 말았는데, 남편의 시신이 그 나무 아래 바위 밑에서 떠올랐다. 이를 신통히 여긴 판관 신재우(愼載佑)가 조정에 품신(稟申)하여 절부암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 후 매년 3월에 제사 지내며 이를 기리고 있다고 한다.

 

사건이 일어난 해는 고종 4, 1867년이었으니 그리 오래된 이야기는 아니다. 얼마나 남편이 그리웠으면 남편 따라 아내도 하늘나라도 올라갔을까……애절한 사연이다.

 

올레 13코스는 일본 시코쿠 오헨로 길과 우정을 맺는 길이라고 안내하고 있으니, 그 속 깊은 사연은 모르겠지만, 많은 일본 관광객이 이 길을 걸을 것이라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다. 그런 올레길은 바로 마을로 접어들고 들을 건너서 일주서로 교차로에 다다른다.

 

건너기 전, 교차로 옆의 <뿌리 게스트하우스>라는 오뚝한 건물이 외로워 보인다. 이것도 바람 때문인가, 교차로에는 노란색의 큰 플래카드 하나가 점령군처럼 걸려있는데, 읽어보니 인적이 드문 이유를 알겠다.

 

<구제역 유입 차단을 위해 올레길 13코스를 일시적으로 출입 통제합니다. 통제 구간, 용수저수지에서 특전사 숲길, 2015. 1. 16부터 구제역 상황 종식 시까지>

 

! 난감하다. 예전에 우리는 출입이 통제된 줄도 모르고 9코스를 걸으면서 고생했던 기억이 새롭게 상기되었기 때문이다.

 

포기할까? 잠깐 고민하면서 교차로 신호를 기다리는 중에, 마침 우리를 따라잡은 부부 올레꾼을 만났다. 우리보다 한 참은 젊은 그들은 옷차림이나 배낭에서부터 전문가다운 면모가 풍긴다.

 

-저기 플래카드에 출입 통제라고 씌어있는데요?

 

-~, 우리도 보았는데요, 우리는 1코스부터 순서대로 걷고 있어서 그런 거 무시하고 착착 걷습니다.

 

젊으니 좋다. 우리도 젊다. 따라 걷는다. 교차로를 건너 들길로 들어서니 바로 교회 하나가 길 위에 놓여있다. 놓여있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초미니 교회다. 이름하여 <순례자들의 영혼의 쉼터>, 제 역할을 다하는 작은 것, 언제 어디서 보아도 믿음직스러운데, 대여섯 평 남짓한 교회가 주는 신선함은 종교에도 멋이 있음을 알린다.

 

주님을 사랑하고 싶은 충동을 뿌리치고 용수저수지로 나아가는 길목에서 또 하나의 멋을 만났다. 한 평 남짓한 작은 원통이 네 개, 빨강, 노랑, 초록, 파랑의 색깔만큼이나 예쁜 <애기 별궁>이란 애칭, <세상 효의 중심 터>라는 간판, 무료 숙박소<제주 모모>의 모습은 또 다른 교회요, 멋이다.

 

사연이 있는 <제주 모모>IMF 때 실직한 어느 중년의 사내가 효도 한번 못한 채 여기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잊지 못해 만들었다는 아지트다. 무료 숙박의 조건으로는 자기 어머니께 편지를 쓰는 것이라니, 길 위의 스승이 따로 없다.

 

농사짓고 양봉 치는 모모의 주인공 오윤하 씨는 만나지 못했지만, 한 수 배운 멋이다. 멋있는 <제주 모모>를 바라보며 나도 어머니 생각에 잠시 먼 하늘을 바라보다가 작지만 멋있는 <모모>를 떠났다. -51)-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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