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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 길 위의 풍경>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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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석봉1 2024. 10. 5.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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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제11이상문학상은 이문열 작가의 단편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선정하였다. 그래서 이문열 작가에 대하여 알아보자.

 

*이문열(李文烈, 본명은 李㤠 1948~현재)은 서울 종로구 청운동에서 아버지 이원철(李元喆 1915~?)과 어머니 조남현(曺南鉉 1917~1995) 사이에 32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일본 유학을 갔다가 신()사상에 경도(傾倒)되어 공산주의자가 되었다. 광복 직후 남조선노동당에 입당하고 6.25 전쟁이 발발하자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책임자를 맡았다가 인천 상륙 작전 이후 퇴각하던 조선인민군을 따라 월북하였다.

 

그의 어머니는 남편을 위해 삐라를 뿌리는 등 함께 활동하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1950년 아버지는 월북하고 어머니는 5개월여 징역(懲役)을 살고 석방되었다.

 

이문열은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 고향인 경북 영천군 금호면(, 영천시 금호동)에 잠시 머물다가 이듬해인 1951년 조상 대대로 세거해오던 경북 영양군 석보면 원리로 이사한다. 당시 유년기를 보냈던 곳은 2013년에 경상북도 문화재로 지정되어 영양 석간고택(英陽 石澗古宅)으로 남아있다.

 

연좌제가 있던 시절이라 이사를 자주 다니는 바람에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 , 대학도 모두 중퇴했으며 정규교육을 이수한 기간은 8년여에 불과하였다. 70년 대학을 중퇴하고 사법시험을 준비했으나 3번 연속 낙방하고 1973년 결혼과 동시에 입대했다.

 

1977매일신문신춘 문예에 단편 나자레를 아십니까가 입선된 후 1979년 동아일보 신춘 문예에 중편 소설 <새하곡(塞下曲)>이 당선되어 등단한다. 이후 중편 사람의 아들오늘의 작가상을 받으면서 주목받은 작가가 되었다.

 

그는 1960년대에 김승옥, 1970년에 황석영이 있었다면, 1980년대에는 이문열이었다고 할 정도로 한 시대를 대표하는 유명 작가다. 그는 또 극우 논객으로서의 행보 역시 여러 측면에서 주목받고 있다. 이문열의 작품과 수상 등은 너무나 잘 알려지고 유명해서 생략한다.

 

**이문열 작가는 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윤석열 후보 지지를 선언했었다. 모 언론사 기자와의 대담에서 윤석열 후보가 대학생 시절 모의재판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사형 선고를 내렸다는 소문을 듣고 그때부터 그 이름을 기억한다고 말했다.

 

또한,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에서 국정원 직원 둘씩이나 구속한 검사를 본 적이 없다고도 했고, 조국(曺國) 일가를 그렇게 엄격하게 수사한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 적이 없고, 검찰총장직을 박차고 나올 때도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음백과,위키백과, 나무위키등 참조,

 

***아하 으응! 그렇구나, 자유 대한민국에서 이문열의 사상이야 그렇다 치고, 이문열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글재주 꾼이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1991년에 쓴 촌철살인(寸鐵殺人)으로 가득 찬사색, 思索, (도서 출판 살림)이라는 수필집은 요즘도 가끔 펼쳐보는 책이다. 각설하고 올레 이야기나 해보자.

 

우리는 긴장을 풀고 길을 걸었다. 길 위의 장로교회 건물 하나가 한가롭고, <제주 M 리조트>라는 납작한 건물도 여유롭다. 리조트를 지나면 길은 곧장 고근산 자락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200m 지나니 작은 산허리를 관통한 큰 도로가 놓여있다. 도로를 건너서니 산기슭에 주택 두 채, 뒷산과 조화를 이룬다. 오른쪽 집 난간에 붙은 간판, <엉또올레 흑돼지 숯불구이> 한번 가서 흑돼지 고기에 소주 한잔 걸치고 싶은 아득한 집이다. 이제 곧 그 유명한 엉또폭포가 가까이 왔구나, 알아차릴 수 있는 상호다.

 

<엉또올레> 집 옆에 서 있는 간세가 가리키는 다리를 건너니 넓은 감귤밭 사이로 길은 이어진다. 꽤 넓은 새파란 감귤밭들이다. 길가의 밭담 안을 들여다보니 감귤나무 가지들을 많이 잘라 놓았다. 왜 말짱한 나무들을 잘랐을까?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수확량 조절을 위한 감귤농협의 긴급 조치의 일환이었다.

 

잘린 부위의 속살이 황금색인 나무가 마치 잘 익은 감귤 같다. 참 색다르고 예쁘기까지 하다. 나무 속살이 예쁜 저 나무에 달린 감귤 맛은 또 얼마나 달까 궁금하다.

 

궁금한 것도 많은 차에 이어지는 감귤밭은 지나는데 집안에서 ’‘하는 금속성 소리가 들렸다. 조금 걸으니 또 !’ 한다. 감귤 농사짓는 농부가 집안에서 골프 연습 스윙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필드에 나가든 아니든 간에 농부도 골프 연습을 할 수 있는 여유로운 세상이 좋은 세상이리라, 마침 제주에는 골프장이 얼마나 많은가. 사시사철 골프를 즐길 수 있는 곳이 제주 아닌가! 골프 천국이 따로 없다. 열심히 일하다가 굳어진 몸을 풀고 시간 나면 필드에 나가는 농부의 모습, 생각만 해도 즐겁다. 오호라!

 

감귤 평원을 지나 길은 연동 하우스가 즐비한 오른쪽으로 접어든다. 길 좌우로 감귤나무가 지천인 길, 가끔은 붉은 동백꽃이 가슴 저리도록 검붉게 떨어진 길, 그런 길을 지나니 시멘트 다리 하나가 물 없는 개천 위에 놓여있다. 다리 옆에 세워진 큰 간판이 멀리서도 보인다. <엉또폭포>!

 

모 방송국 <12> 프로를 여기서 촬영해 기념으로 세웠다는 장승을 지나 폭포 속으로 다가가니 절벽이 눈을 가린다. 절벽 아래 깊은 소가 폭포의 영광을 대변하듯 신령스럽다. 폭포는 아무 때나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단다. 적어도 비가 70mm 이상 내려야 제모습을 볼 수 있다고 전한다. 그래서 물 없는 폭포가 되었다. 물 없는 폭포 옆에 작은 정자 하나가 있어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정자 안에 걸려있는 간판이 예사롭지 않다. 석가정(夕佳亭), 도연명의 시 <음주 기오(基五)><산기일석가(山氣日夕佳)>에서 차용(借用)하였다고 적어 두고 있다. 산빛은 해 질 녘이 더 아름답다고 했는데, 어디서 많이 들은 이야기가 떠오른다. 작고하신 유명 정치인 JP가 평소에 하신 말씀과 일맥상통한 말이리라.

 

오늘 나는 여기서 해지는 모습을 볼 수 없으니 안타깝다. 언젠가 맑은 술 한 병 품고 다시 와서 석양에 비친 폭포수를 바라보면 도연명을 기리고 싶어진다. 정자를 지은 이의 정성을 생각하면서,

 

물 없는 폭포를 일람하고 내려오는데, 폭포 아래쪽의 입간판 하나가 내 눈이 꽂힌다. 글이 새겨진 나무판자는 허름하나 그 속의 문장은 세르반테스 적 명문이다. 그 명문을 소개하지 않으면 올레 기행문이 아니기에 여기 전문을 옮긴다.

 

*세계 4대 폭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세계 3대 폭포인 나이아가라폭포(북미), 이과수폭포(남미), 빅토리아폭포(아프리카)에 이어 세계 4대 폭포에 들어가는 엉또폭포에 오셨습니다. 높이기 나이아가라에 맞먹는 50m이고, 물 안 내리는 폭포로는 세계적으로 거의 유일하여 세계 4대 폭포가 되었습니다. 웅장한 절벽과 천연난대림이 빚어내는 풍광도 손색이 없으며 천천히 둘러보시고서 울창한 상록수림의 피톤치드를 마음껏 담아 가십시오- 무인카페 엉또 산장-

 

얼마나 낭만적이고 풍자적인가! 올라갈 때 보았으면 더욱 좋았을 것을,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를 창작했듯이 제주 올레가 아니면 어디서 이런 명문을 만날까. 하긴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내려올 때 보았네라고 고은 시인이 노래했다고 하지 않았나. 역시 오를 때는 허겁지겁이요, 내려올 때는 천천히가 산행의 기본이리라.

 

지는 햇빛을 받으며 자욱한 물안개 사이로 반짝이는 무지개 속의 엉 또! ‘은 입구라는 뜻이요, ‘즉 입구라는 뜻이란다. 그 모습을 언젠가 보게 되리라, 70mm 이상 비가 내린 어느날 오후쯤엔.

 

폭포를 내려와 다리를 건넌 길은 고근산 허리를 감아 돌아 드디어 해발 396m의 정상인데, 정상 아래에서 나무 계단을 두어 번 쉬고 기어올라 전망대에 서니 가슴이 확 트인다. 날씨가 흐려 <지귀도>에서 <마라도>까지의 서귀포 경관과 장엄한 한라산 꼭대기를 보지 못하는 것이 아쉽기는 해도, 마음으로 그려보는 풍경은 가히 절경이었다.

 

정상에 올라 회상하니 오래전 현직 시절, 일주일간의 서귀포 출장 중에 여기를 오른 기억이 이제야 떠오른다. 그때 안내한 현지 동료가 여기서 서귀포를 보지 않고서 서귀포를 보았다고 말하는 것은 남산을 오르지 않고 서울 구경을 다 했다는 말과 같다는 말이 새삼스럽다. 그날은 어찌나 날씨가 맑았던지 꿈결처럼 다가온다. -49)-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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