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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 길 위의 풍경>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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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석봉1 2024. 9. 15.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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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어느 도시에 장기 체류하거나 같은 도시를 여러 번 여행하는 한국인은 그리 많지 않다. 보통은 오래 벼른 끝에 어

렵게 장만한 돈으로 유럽 여행을 떠나며, 그러하기에 한꺼번에 되도록 많은 도시를 방문하려고 한다.

 

여행사들이 거의 날마다 가방을 풀었다 묶었다 하면서 엄청난 거리를 이동하는 패키지여행 상품을 제공하는 이유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사람이 혼자 또는 몇몇이 서 자유롭게 다니는 쪽을 택하고 있다.

 

나는 다양한 스타일의 유럽 여행자들을 생각하면서 이 책을 썼다. 사정이 허락하지 않아 책으로라도 유럽의 도시를 만나고 싶어 하는 독자를 위해서 사진은 정보보다 도시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것을 골랐다.

 

나는 평범한 한국인이 하는 방식으로 유럽 도시를 여행했고, 그런 여행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꾸몄다. 한 도시에 머무르는 기간은 45일을 기본으로 했으며, 항공편과 숙소만 미리 잡고 나머지는 모두 현지에서 결정했다,

 

매진 가능성이 있는 오페라나 실내악 공연은 시간 여유를 두고 인터넷으로 예약했다. 식당은 발품을 팔고 눈과 코로 답사해 그때그때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았고, 확신이 들지 않을 때는 인터넷에서 방문 후기를 찾아보았다.

 

시내에서는 자동차를 빌리거나 택시를 타지 않고 지하철, 노면전차, 버스를 이용했다. 사진을 찍어야 해서 주로 걸어 다녔는데, 영어가 짧아 때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가이드를 쓰지는 않았다. 다만 차 안이 다소 불안한 이스탄불에서는 여행사가 추천해 준 현지 가이드의 도움을 받았다.

 

도시는 대형서점과 비슷하다. 무작정 들어가도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할 수는 있다. 하지만 책이 너무 많아서 여기저기 둘러보다 보면 시간이 걸리고 몸도 힘들며, 적당한 책을 찾지 못할 위험도 있다.

 

유시민의 도시 기행 1,(생각의 길, 2019) 서문에서 인용

 

안으로 들어가니 대웅보전(大雄寶殿)이라, ? <대웅전>이라 하지 않고 <대웅보전>인지는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나 대웅보전이 대웅전보다는 고급스럽다.

 

대웅전은 석가모니 부처님과 좌우 협시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라 하고, 대웅보전은 고급스럽게(?) 석가모니 부처님과 약사여래 부처님과 아미타불 부처님 세 분을 모신 절이라 하는데, 이의를 달 필요는 없겠다.

 

절을 나오니 대형 관광차 한 대가 짐을 풀어놓는다. 풀어놓은 중생들이 어디로 가나하고 눈으로 따라가니 모두 봉()으로 기어오른다. 기왕 예까지 왔으니, 절에 시주나 좀 하고 갔으면 좋으련만, ……

 

저 관광객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 나에게 하는 말이렷다. 나무(南無)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아미타불(阿彌陀佛)!

 

떠오르는 비행기 꽁무니를 뒤로하고 길을 걷는다. 길은 푸른 보리밭길, 길손은 반백이니 어울리지 않는가, 밭담 길을 지나 사수동()을 걸으며 <새마을사업기념비><범죄없는마을> 표석을 지난다. 표석들을 보니 여기도 모범적인 마을이겠다.

 

악기를 없애준다는 아담한 방사탑(防邪塔) 2기를 만져보면서 걸어, <어영소> 공원에 이르러 멈추었다. <어영>은 마을 이름이고 <>는 아마도 웅덩이 소()가 아닐까? 한다.

 

공원에는 어린이와 연인들로, 방파제에는 낚시꾼들로 가득하다. 공원전망대 밑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전망대에 올라 바다를 보면서 우리도 쉬었다. 망망대해(茫茫大海)의 전망이 대단하다. 그래서 관광객이 많은 모양이다.

 

다 좋은데, 콘크리트 길에 취약한 어부인이 힘들어한다. 왜 그녀는 콘크리트 길에 취약한가? 따져 보니 발바닥이 나보다 얇았다. 문제는 그것뿐이었나? 아무렴 어떤가.

 

<어영소>를 지난 길은 길게 이어진다. 옛날에 바닷물을 가두어 소금을 만들었다는 <소금 빌레>와 항상 찬 물이 난다는 <따그네 샘물> 그리고 카페가 하도 많아서 거리가 형성되었다는 <카페거리>를 지나 용담 포구에 이르니 올레꾼을 포함한 관광객은 더욱 늘었다.

 

하늘의 비행기들은 이제 머리를 내리쳐 박기만 한다. <도두봉>에서는 치솟기만 하더니, 올레가 착륙을 시작하는 공항의 동쪽 끝에 다다른 모양이다. 제주공항 활주로(滑走路)는 동서로 뻗어있다.

 

길은 용두암 가는 길로 이어진다. 길 아래 바닷가에는 연탄난로를 피워놓고 소라며 멍게며 귤 따위의 해산물을 파는 사람들과 이를 먹는 관광객들로 만원이고, 길 위는 온통 울긋불긋하다. 마치 인산인해를 이룬 가을 지리산의 정상과 같다.

 

용두암(龍頭巖) 전망대에 올라서니 아직도 승천하지 못한 그()가 바람 속에 외롭다. 그를 자세히 보니 옛날의 그가 아니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때가 언제였던가. 아마도 신혼 초였으니 40년도 넘었다. 그땐 나도 까만 머리 청년이었는데 이제 반백이니, 그도 이제 늙은이가 되었으리라,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 -33)-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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