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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 길 위의 풍경>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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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석봉1 2024. 9. 12.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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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플라카 지구, 로마의 포로 로마노, 이스탄불 골든 혼, 파리 라탱 지구, 빈의 제체시온, 부다페스트 언드라시 거리, 이르쿠츠크 데카브리스트의 집, 이런 곳에 가고 싶다.

 

다른 대륙에도 관심이 없지는 않았지만, 스무 살 무렵부터 내 마음을 설레게 만든 곳은 주로 유럽의 도시들이었다. 그곳 사람들이 훌륭한 사회를 만들어 좋은 삶을 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떻게 더 자유롭고 너그럽고 풍요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닥치는 대로 책을 읽다가 소설보다 더 극적인 역사의 사건들을 만났고, 그 주인공들이 살고 죽은 도시의 공간을 알게 되었다.

 

삶의 환희와 슬픔, 인간의 숭고함과 비천함, 열정의 아름다움과 욕망의 맹목성을 깨닫게 해주었던 사람과 사건의 이야기를 그곳에 가서 들어보고 싶다. 그렇지만 기회가 없었다. 1980년대 이전 대한민국의 이십 대 남자는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나라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삼십 대에는 제법 긴 시간 독일에 살았지만, 어린 딸이 있는 유학생 부부에게는 여행할 만한 시간과 돈이 없었다. 정치를 직업으로 삼았던 10년 동안은 여행 가방을 꾸릴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러다가 글 쓰는 일로 돌아온 후, 뜻밖에 유럽 도시 기행 집필 제안을 받았다. 원래부터 여행을 좋아했던 아내 한경혜 씨는 이 프로젝트를 위해 사진을 배웠다. ‘우리는 몇 해 전부터 수첩과 카메라를 들고 유럽의 도시들을 탐사하고 있다.

 

함께 자료를 살폈고, 가고 싶은 도시를 가려 뽑았으며, 일정과 경로를 꼼꼼하게 설계했고, 알맞은 숙소와 교통편을 알아보았다. 이 책에서 우리는 나와 한경혜 씨 두 사람을 가리킨다. 한경혜 씨가 본문에 자신이 따로 나오는 것을 원치 않아서 그렇게 했다. -중략-

 

유시민의 도시 기행 1(생각의 길, 2019) 서문에서 인용함.

 

유시민(1959~현재) 작가와 손석희(1956~현재) 전 사장은 2024년 한국을 움직이는 인기인 쌍두마차에 올랐다. 3위는 이국종 국군대전병원장이고, 그다음이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방송인 유재석, 정신건강 의학과 의사 오은경, 한동훈 대표, 손흥민 선수, 이재용 회장, 이재명 대표 순이다. -시사저널 2024년 조사발표.

 

유시민은 부인 한경혜 여사와 함께 여행을 하면서 사전에 수첩과 카메라를 준비하고, 일정을 꼼꼼히 설계하며, 가고 싶은 도시를 함께 탐색하고, 숙소와 교통편을 함께 검색하였고, 그러면서 부인 자신이 따로 나서기를 원치 않아서 그냥 우리라고 표현했다는데,

 

나도 비슷하다. 나도 유시민 작가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여행을 좋아하는 동갑내기 부인 박영순 여사와 함께 인터넷을 배우고 핸드폰을 들고, 올렛길을 걸으면서 동고동락하였다. 그녀도 남 앞에 나서기는 물론이고, 사진에 오르는 것조차 싫어하는 성격이라 그냥 우리로만 표현코자 한다.

 

각설하고 올레길을 걸어보자.

 

고즈넉한 길을 무상으로 걸어 두 개의 다리 밑을 지나 세 번째 다리에 이르니 올레길은 다리 위를 건너란다. 다리 위의 풍경과 공기가 하도 맑고 좋아서 한 가슴 들어 마시고 이어지는 밭담 길에 들어서니 아직도 따지 않은 노란 감귤 몇 개가 나무 위에 매달려 있고, 나무 아래 밭에도 널려있다.

 

! 어제 그리도 잠 못 들게 하던 그 바람이 여기 귤나무에도 심통을 부렸단 말인가! 떨어진 귤이 하도 아까워 몇 개를 주워 맛을 보았다. 맛있다. 감귤 맛 그대로다.

 

주운 감귤을 감사히 삼키면서 한적한 들길을 걷고, , 산길을 돌아서니 멀리 아파트 단지가 보이고 그 앞 넓은 운동장에는 유니폼을 입은 어린 선수들이 공을 차고 있었다. 아마도 수일 후에 있을 시합에 대비하는 듯하다.

 

올레길은 중산간 지대에서 마을로 이어지고, 도심은 이곳으로 팽창하고 있는 모습이다. 오늘이 토요일인데도 인부들이 운동장 주변을 보수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무슨 봄맞이 행사에 대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운동장 앞으로는 물 없는 하천이 지네처럼 길게 늘어져서 배도 고프고 목도 마른 형상이다.

 

하천을 따라 조금 걸으니 길은 푸른 강물이 고요한 강둑길로 이어진다. 강둑엔 오래된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숲 아래 막돌 비석 하나가 우리를 반긴다. 이름도 예쁜 월대(月臺), 달을 보는 높은 자리이리라.

 

월대 앞에 앉아보니 월대가 왜 월대인지 알겠다. 깊은 강물이 눈앞에 놓였다. 보름달이 휘영청 밝은 밤이면 아마도 저 맑은 강물에 보름달 하나가 잠길 것이다.

 

아시다시피 제주도는 많은 하천들이 있지만 대부분이 물이 없는 건천이다. 비가 오면 물이 차서 잠시 흐르다가 그치면 금세 마른다. 하천 바닥이 현무암이고 그 아래에 공간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 제주에서 이곳 <외도 천>은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다니 놀랍다. 밑에서 용천수가 솟아 흐르기 때문이다.

 

그런 용천수가 사시사철 넘치는 이곳 월대 앞에, 달님의 정자 하나쯤은 필요하지 않았겠는가, 모름지기 강은 물이 차야 강이라는 사실을 여기서 깨우치니 올레길은 깨달음의 길이기도 하다. 월대는 여름밤 마을 사람들이 부채 하나 들고 이야기꽃을 피우기에 참 좋은 장소 같다. 강둑을 내려가서 두 손에 물을 담았다. 하도 맑아 눈도 씻었다. 물이 참 차갑다.

 

우리도 옛사람들처럼 마른 숲을 걷다가 고목 아래 앉아 간식으로 준비한 초콜릿 하나씩을 먹으며 대낮에 달을 기다려보았다. 그러고는 숲속의 운동기구에서 허리를 좀 풀고 강둑을 따라 걸으니 월대 옆으로 흐르던 강물은 이제 바다와 합수한다. 강물과 바닷물이 어우러지는 모습은 경이롭다. 어떻게? 30)-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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