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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 길 위의 풍경>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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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석봉1 2024. 9. 11.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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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 길 위의 풍경~17코스(광령~산지천 올레)

 

송구스럽지만, 내 이야기 하나 하고 넘어가자. 나는 200812월 말에, 농협 중앙회에서 정년 퇴임하고 이후 우리나라 최대 비료회사인 남해화학의 비상임(사외) 이사로 2년을 봉직하고 잠깐 쉬다가, 20128월에 경기도 모 농협에 상임이사에 취임하였다.

 

상임이사는 이사회 구성원이고, 조합장 다음 자리다. 이 자리는 종전의 전무(專務)라는 직책이 수행했는데, 전무를 없애면서 신설한 제도다. 전무는 직원 신분이지만 상임이사는 임원 신분이라는 점이 다르고, 전무는 월급제고 상임이사는 연봉제라는 점도 다르다.

 

도입 배경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조합의 책임 경영 체제를 갖추자는 것이 큰 목적이었다. 참고로 상임이사의 선임은 인사 추천 위원회의 추천과 최고 의결기관인 대의원회의 의결이 필요하고, 임기는 2년이고 연임도 가능하였다.

 

그런데 나는 우연히 고전을 읽다가 그 책갈피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임기 중인 2013421일 자에 쓴 흔적을 최근에 발견하고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에서 여기 옮긴다.

 

내가 2년 단임으로 끝내려고 하는 것은, 다시 말해 연임의 유혹을 끊으려는 것은, 첫째는 그 인연이(그 기간이) 내 앞으로의 30년 인생에 방해가 될까 하는 두려움과 또 하나는 내가 연임에 연임을 거듭하면 또, 연임의 욕심이 생길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각설하고, 올레길을 걸어보자.

 

두 번째 여행 셋째 날, 어제 바람은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끝없이 덜컹거리는 바람 소리는 지친 몸을 더욱 힘들게 하였다.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잠을 청하면서 <바람이시여! 이제는 쉴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하고 애원도 해보았다.

 

그래서인지 새벽에 일어나니 바람이 반은 착해진 듯하였다. 집은 떠나오면서 어부인이 준비해 온 미역무침으로 국을 끓이고, 어젯밤에 산 회 중에서 숙성시킨 꼬들꼬들한 고등어회를 내고, 멸치와 맛김으로 아침을 먹으니 그 맛이 꿀맛이다.

 

길 위에서 먹을, 간식거리를 준비해서 숙소를 나섰다. 오늘도 어제처럼 저녁에 동문시장을 만나기 위하여 광령리행() 버스에 올랐다. 그곳은 17코스 시작점이다. 광령1리 정류소에 내리니 올레꾼이 삼삼오오 걷고 있었다. 마침 오늘이 토요일이라 꾼들이 많이 원정 나온 모양이다. 반갑고 고마웠다.

 

우리도 올레 간세를 확인하고 그들이 간 길을 따라 조금 걸으니 이내 무수천(無水川) 교차로에 다다른다. 교차로를 지나 광령교 끝에서 좌측으로 꺾어 드니 길은 바로 무수천 트멍(틈새) 길로 이어졌다.

 

무수천은 이름도 많다. 물이 없는 하천이라서 무수천(無水川)이요, 머리가 없다 하여 무수천(無首川)이요, 지류가 수없이 많다 하여 무수천(武數川)이라 하였고, 또 무수천에는 아름다운 8경이 숨어있다는데 어찌 그 좋은 곳을 다 보고 가리오, 대충대충 보고 다음을 기약하고 걸어 나갔다.

 

길 왼쪽으로는 좁고 깊은 긴 계곡이 이어지고 오른쪽은 교목이 우거진 숲이다. 낙엽이 깔린 길은 편안하고 고요하다. 세상의 묵은 때를 씻어주는 개천이 아니던가, 길에 들어서는 초입부터 이름에 어울리는 풍경이다. 과연 무수천(無愁川)이로다.

 

계곡 따라 길을 걸어서 내려가니 바람도 멎었는지 들리는 소리 하나 없다. 무수(無愁)가 무심(無心)으로 이어지는 길은 으슥할 정도로 고즈넉하다. -29)-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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