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처작주(隨處作主)면 입처개진(立處皆眞)이고 경래회환부득(境來回換不得)이라, 종유종래습기(縱有從來習氣)하고 오무간업(五無間業)이라도 자위해탈대해(自爲解脫大海)이니라.
-해석하자면,
머무는 곳마다 주인이 되면, 서 있는 그곳이 모두 참이 되고, 어떠한 경계에도 잘못 이끌리지 않게 되나니, 가령 지난날 지은 나쁜 습기가 있어 무간지옥에 떨어지는 업을 지었더라도, 스스로에게는 해탈의 큰 바다가 되느니라.
임제(臨濟) 선사가 지은 임제록(臨濟錄)의 말이다.
임제(臨濟) 선사는 성은 형 邢 씨요, 이름은 의현이고, 호는 임제(臨濟), 중국 산동성(山東城) 소주 지방에서 출생하여 어려서부터 총명하였고 효행이 지극하였으며, 그의 스승은 황벽(黃檗) 선사다. 불행하게도 그의 유년 시절의 행보는 밝혀지지 않았고 866년에 입적하였음을 전하고 있다.
▲각설하고, 올레길을 걸어보자.
늦은 점심을 맛있게 먹고 길을 나서니 허물어진 돌담들이 즐비하다. 곤을동 4.3 마을 터다. 1949년 정월 초, 마을 전체를 불태우고 24명의 주민이 희생되었다는 현장이다. 곳곳에 이런 아픔의 현장들이 있는 곳이 제주도다.
그러니 제주에서 4.3이란 4자도 끄집어내기 어려운 사정이 여기에 있고, 그래서 오늘의 제주를 우리가 더 사랑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곤을동 마을 터를 돌아 산길로 오르니 바로 <별도봉>이다. 거센 겨울바람을 안고 걸으니, 몸도 휘청거리고 얼굴도 얼얼하다. 휘청거리는 올레는 <별도봉> 정상을 오르지 않고 북사면(北 斜面) 허리를 긴다.
기는 허리는 포근한데 보는 눈은 놀라움이다. 제주항 등대가 저만치 떠 있는데, 등대를 받치는 육지의 산은 높고 깊다. 신비스러운 풍경이다.
제주의 바닷가는 대부분이 남측은 절벽이고 북측은 완만한 포구인데, 이곳은 북측에서는 좀처럼 만날 수 없는 절벽에 주상절리(柱狀節理)이니 아찔하다. 그러니 신비스러운 풍경이다.
높이 솟은 바위와 검푸른 바다를 내려다보며 산허리를 굽어 도는 산책로를 따라가니 제주시민들의 쉼터 사라봉 초입에 이른다. 남녀노소들이 산책길을 걷는 모습이 평화스럽다.
<사라봉> 정상의 낙조가 제주 10경의 하나라는데 시간이 안 맞아 그 장관은 보지 못하고 내려선다. 등산로 길가에는 보기 좋을 만한 벚나무들이 가로수로 늘어서 있다. 봄이면 얼마나 많은 상춘객의 마음을 사로잡을까 생각하니 봄에 다시 오고 싶어진다.
내려오면서 지척에 있다는 의녀 김만덕(1739~1812)의 묘소(모충사)에 참배하지 못해 죄송하고 아쉬웠다. 다음을 기약하고 길을 걸었다.
산 아래 제주여객터미널 앞에서 좌측으로 돌아 <건입동(健入洞)>으로 들어서니 플래카드 한 장이 눈에 띈다. 12통장을 공개 모집한다는 내용이다. 할 사람이 없어서 공개 모집하지는 않을 테고, 아마도 너무 많아서 선별하려고 공모하지 않을까 한다.
한편, 매년 음력 2월이 되면 제주 곳곳에서는 영등굿이 벌어진다. 영등굿은 마을의 심방(무당)들이 바람의 여신인 영등할머니와 용왕, 산신령 등의 영등 신에게 풍작과 풍어를 기원하며 벌이는 굿이다.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은 제주시 건입동의 본향당에서 열리는 굿으로, 제주 섬의 영등굿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굿으로 2009년 9월30일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열린 제4차 세계 무형문화 유산 보호 정부간 위원회에서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 목록으로 등재되었다. 27)-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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