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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 길 위의 풍경>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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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석봉1 2024. 9. 6.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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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흘만 일찍 태어났어도 조선의 사람이었을 것을, 그 나흘이 늦어 나라 잃은 백성으로 억울하게 태어난 사람이 있었다. 억울한 것으로 따지자면 망국의 그날에 세상 빛을 본 사람에 견주면 좀 나을까. 그렇다 한들 결과는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조선 땅에서 조선인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국적의 표식이 몸 어디에도 새겨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잃어버린 나라라고 해서 그 땅에서 태어난 사람이 조선인이 아닌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그게 그렇지가 않았다. 잃어버린다는 것은 돌이킬 수 없이 분하고 서럽고 아픈 일이기 때문이었다.

 

더위조차 맥을 못 추던 829, 근정전에 일장기가 내걸렸고 강토는 의병들의 핏자국을 다 씻어내지도 못했거늘, 청천벽력의 소식이 망국의 백성들로 하여금 땅을 치며 목 놓아 울 게 만들었다. 삼천리 무궁화꽃들도 슬픔에 못 이겨, 지고 말 일이었다. 1910829일은 경술국치일이다.

 

병합을 막아보겠다고 저 먼 이국땅의 헤이그에서 이준은 구국에의 정열을 불태우다 숨을 거두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인근 오클랜드역에서는 유학생이었던 두 청년, 장인환과 전명운이 우리 정부의 외교 고문으로 일본의 이익을 충실히 대변해 온 인물인 스티븐슨을 죽였다. 안중근은 하얼빈에서 우리 한민족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응징했다 하여 사형을 당했다.*

 

1회 제주 4.3 평화 문화상 수상작인 구소은 (1964~현재, 부산 출신)의 장편소설 검은 모래(은행나무, 2013)의 첫 문장이다. 각설하고, 올레길을 걸어보자.

 

그런 원당봉을 벗어나니 또 해변이 펼쳐진다. 밀려오는 파도는 흰데, 파도를 품은 모래는 검다. 처음 만나는 경이로운 광경이다. 바로 삼양리의 <검은 모래 해변>이다.

 

검은 모래 해변은 이곳 말고도 더 있다. 그곳은 바로 섬 속의 섬인 우도의 동쪽에 자리한 조일리에 아름다운 마을을 끼고 검은 모래 해안이 있다. 이곳 마을이 바로 소설 검은 모래의 모태다. 이 소설을 서두에 소개하는 표면상의 이유가 여기 있다.

 

검은 모래는 관절염. 피부염은 물론이고 심지어 불임 치료에도 탁월하다는 이런바 만병통치 해수욕장으로 소문이 나 있었다. 여름에 모래찜질 여행객이 넘친다고 하니 건강을 챙기는 현대인으로서는 당연한 일이리라.

 

검은 모래 해변을 지나 포구에서 좌측 마을 속으로 한참을 걸으니, 바다로 돌출된 언덕에 <별도 연대>란 작은 석성에 이른다. 연대(煙臺)는 연기를 피워 올려 긴급한 소식을 전하는 통신수단이었다. 연대에 올라서니 전망이 시원하다.

 

왜구들이 얼마나 무상으로 노략질하였으면 이런 돌탑을 쌓았을까 생각하니, 왜 일본은 우리를 그렇게 못살게 굴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웃끼리 오순도순 잘 지내야 하거늘, 당시 제주인들의 고달픈 상황이 내 삶의 아픔으로 다가온다.

 

여기서 잠깐 조선조 제주의 지역 방어체계를 소개하면, 제주. 정의. 대정읍 세 곳에 읍성과, 그 아래에 아홉 개의 진()에 진성을, 또 그 아래 스물다섯 곳에 봉수대(熢燧臺)와 서른여덟 곳에 연대(煙臺)를 쌓아서, 이들을 서로 거미줄처럼 이어 왜놈들의 침입이나 기타 비상시에 대비하였다.

 

봉수는 산과 산을, 연대는 바다와 바닷가를 연결하여 적의 침략을 알리는 장소로 이용하였다.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봉화로 통신하였다니 이 얼마나 치밀한가. 여기 <별도 연대>도 당연히 서른여덟 개의 연대의 하나다. 25)-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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