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 길 위의 풍경-18코스(산지천~조천 올레)
두 번째 여행 둘째 날, 오늘은 18코스를 역방향으로 걷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지금까지 순방향으로만 걸었으니, 역방향으로 걸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고, 한편으로는 저녁에 제주시의 중심부에 있는 동문재래시장을 자세히 살펴보고 저녁과 내일 아침에 먹을 좋은 먹거리도 살 겸 해서다.
동문시장은 올레 17코스의 종점이자 18코스의 시발점인 산지천 마당과 인접해 있는 제주의 대표적인 전통 재래시장이다. 특히 다양한 농수산특산물과 먹거리가 집합하는 곳으로 제주의 인정(人情)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9시경 조천만세동산에 도착하니 날씨는 청명한데, 관광버스 몇 대가 주차되어 있고, 이 버스들을 타고 온, 한 무리의 올레꾼들이 여자 안내자의 설명을 듣는 중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조곤조곤한데 듣는 이들의 고개는 끄떡끄떡하고 눈은 초롱초롱하며 귀는 쫑긋쫑긋하니, 하, 조화롭다.
그들은 19코스를 걷겠지, 생각하고 우리는 그들을 뒤로하고 반대 방향인 18코스를 걷기 시작했다. 만세동산 담장을 벗어나자,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두 마리의 삽살개였다. 대문간에서 마구 짖어대는 모습이 사람이 그리웠던 모양이다.
목줄에 매여 있어 위협적이지는 않았지만, 특히나 개를 싫어하는 나로서는 부담스러워 도망치듯 걸었다.
개 두 마리를 시작으로 걷는 내내 개들과의 신경전이 이어질 줄은 몰랐었다. 아마 오늘이 개들의 존재감을 세우는 날인지, 아니면 이 코스에 유독 개들이 많은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멍멍거리는 소리를 뒤로하고 해변에 들어서니 망루 하나가 우뚝하다. 입구에 안내판을 보니 연북정(戀北亭)이다. 망루 둘레에 돌담이 높다. 연북정이라, 북쪽을 사모하는 곳이니 곧 임금을 그리워하는 곳이리라, 아니, 어디 임금뿐이겠는가!
조정을 떠나온 수많은 관리가 이곳에서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고, 부모 처자식을 생각했음은 인지상정이리라. 그러니 이곳을 오른 사람이 어디 관리들뿐이겠는가.
연북정은 선조 때의 건축물이니 역사가 깊다. 외로운 귀양지에서 오매불망 해배(解配)만 바라던 유배객들도 같이 올랐을 정자에 올라서 본다. 넘실대는 바다 너머 수평선이 아득하다.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다 여기로 오라/ 내 책상다리를 하고 꼿꼿이 허리를 펴고 앉아/ 가끔은 소맷자락 긴 손을 이마에 대고/ 하마 그대 오시는가 북녘 하늘 바다만 바라보나니//
오늘은 새벽부터 야윈 통통배 한 척 지나가노라/ 새벽 별 한두 점 떨어지면서 슬쩍슬쩍 내 어깨를 치고 가노라/ 오늘도 저 멀리 큰 섬이 가려 있어 안타까우나/ 기다리면 임께서 부르신다기에/ 기다리면 임께서 바다 위로 걸어오신다기에//
연북정 지붕 끝에 고요히 앉은/ 아침이슬이 되어 그대를 기다리나니/ 그대의 사랑도 일생에 한 번쯤은 아침 이슬처럼/ 아름다운 순간을 갖게 되기를/ 기다림 없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언젠가 이곳에 올라 불렀을 정호승(1950~현재) 시인의 시 <연북정>이다. 노래한 시인의 임은 어떤 임일까? 마음속으로 시인의 임을 생각해 보면서, 정자 난간을 잡으니, 오늘도 바람은 차갑고 보이는 곳은 망망 바다뿐, 나도 갑자기 옛사람들이 보고 싶고 살았던 도시들이 그리워진다. 내가 살았던 곳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그런 아련한 망루를 뒤로하고 조천 비석거리를 지나 마을 길로 들어섰다. 검은 돌담길로 이어지는 마을엔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개들만 대문을 지키며 낯선 길손을 맞기에 바쁘다. -23)-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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