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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 길 위의 풍경>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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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석봉1 2024. 9. 2.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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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한 북촌포구를 돌아서니 시간은 정오를 지나고 있었다. 마침 허름한 식당(언제나 나는 허름한 것을 좋아한다)이 보여, 들어가니 바닷물이 창문턱까지 찰랑거리는 운치 있는 집이다.

 

중년의 남자는 생선회를 치고 여자는 밑반찬을 내고 있었다. <북촌 자연산 횟집>이란 상호의 부부횟집이다. 우리는 큰맘 먹고 이 식당에서 제일 비싼 자연산이라는 참돔 한 마리를 주문했다.

 

-우리 가계는 모두가 자연산으로 요리를 해요. 맛있게 드세요.

 

밑반찬을 내놓으며 서울 말씨의 부인이 한 말이다.

 

-이게 다 찌게다시라요?

 

차려진 상을 본 손님 부인의 입이 벌어지면서 한 말이다. 해삼. 멍게. 문어. 소라. 군수. 미역. . 고구마전. 파래. 거기다가 어리굴젓까지 무려 열 가지나 되었다. 나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걸 다 먹었다가는 정작 주문한 참돔은 남길 것 같은 예감이다.

 

그때 마침 한 여자에 두 남자 한 팀이 식당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그들은 모두 우리보다는 조금 어린 중년으로 보였다. 그들도 상에 차려진 밑반찬에 감동했는지, 젓가락보다는 핸드폰이 상 위를 설치고 있었다. 차려진 상을 정신없이 찍어댔다.

 

우리는 먹기에 바빠 사진으로 남기지 못했다. 많이 먹으려면 천천히 먹어야 했었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던 모양이다. 정작 참돔회가 나올 때는 배가 포만 상태 이후였다.

 

그런데 마지막 서비스로 나온 <지리탕>의 그 얼큰한 맛이란, ! 화룡점정(畵龍點睛)! 끝내 주었다. 아무리 배가 부르기로서니 어찌 남기겠는가. 우리의 점심 식사는 두 시간 동안 이어졌고, 그날 부부는 생애 최고의 담백하고 배부른 식사를 하고 또 길을 나섰다.

 

포구를 벗어나니 숲길로 이어진다. 숲 사이로 간간이 콜라비와 마늘밭이 푸르다. 다소 한적하고 음산한 길을 걷는데, 길 안쪽에 아가리를 크게 벌린 동굴, 원시인이 살았다는 <북촌 동굴>이다. 간이 작은 나는 굴속엔 들어가지는 못하고 아가리만 살피고 나오는데도 몸이 차갑다. 계속 가는 길은 더욱 음산하다.

 

긴장된 마음으로 숲속을 걸으니 다행히(?) 작은 교회 한 채, 이어 큰 운동장 하나가 길을 막는다. 길 위는 항상 다양한 삶이 있다. 교회는 사람 사는 곳이니 그렇다 치고, 이 산속에 웬 운동장, 동복리 마을축구장이라는 표시가 보인다. 아마 이곳 사람들은 축구를 좋아하는 모양이다. 아니 육지 사람들이 동계 훈련장으로 사용하는지 모르겠다.

 

운동장을 벗어나서 말 두 필이 한가히 풀을 뜯는 목장을 지나니 올레 간세가 우리를 반긴다. <벌려진 동산>이란 안내판이 간세에 붙어있다. 두 마을로 갈라지는 곳, 또는 넓은 바위가 번개에 당해 벌어진 곳, 간세의 설명이다. 갈라진 곳이건 벌려진 곳이건 올레 간세는 길손을 안정시킨다.

 

아무튼 참 한적한 길이 길게도 이어진다. 우거진 숲을 벗어나서 산길과 들길을 걸으니<김녕리 해녀 정보화 마을>이 나온다. 마을 입구에 선 두 그루의 팽나무가 마을을 지키고 있었다. 오래된 마을 수호신임이 역력하다. 역시 수호신은 언제나 신비감을 준다. 보통 마을 수호신은 두 그루로 짝을 이룬다.

 

수호신을 뒤로하고 밭담 길을 한참 걷고 도로를 건너니 <백련사> 돌담길로 이어진다. 언 듯 보아 일주문도 사천왕도 없는 작은 암자 하나 서 있다.

 

<백련사>란 이름은 전국에 여럿이고 절의 규모도 대단한 것이 일반적이라, 그 대표적으로 강진 백련사, 강화 백련사, 무주 백련사 등등, 그러나 여기 백련사는 백련사답지 않았다.

 

백련(白蓮)은 흰 연꽃이니 백련사라는 절이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연꽃은 진흙의 꽃이라 낮고 거룩한 꽃이리라, 알고 보니 이곳 <백련사>도 뼈대 있는 절이다.

 

고려 시대에 이곳에 <흥법사>란 절이 있었고 물이 좋아 찾는 사람이 많았다고 전한다. 또한 근대 제주불교 중흥에 앞장선 승려이자 제주 의병 항쟁의 주역 김석윤(1876~1949)이 주지로 있던 절이라 하니, 작은 고추가 더 맵다는 사실이 생각난다.

 

작아서 마음에 드는 절, <백련사> 절 문에서 절하고 절 돌담을 돌아 해변으로 나서니 조그만 포구가 우리를 기다린다. 포구 빈자리에 선 올레 간세가 조용한 포구를 의미 있게 만든다. <김녕서(西) 포구>, 19코스 종점이다.

 

종점에 도착하니 붉은 노을이 서산 밑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두 번째 여행 첫날 오늘은 참 많은 역사의 현장을 걸었다. 조천만세동산에서 출발하여 신흥리 모래사장의 방사탑 2기와 만났고, 올레길에서 가장 번화가라는 함덕리 해수욕장을 거쳐서, 북촌포구와 4.3의 흔적에 가슴이 저리고, 북촌 동굴을 떨면서 지나, 벌려진 동산을 어렵사리 걷고,

 

김녕 농로 길을 또 무심으로 걷고, 총길이 19.2 Km, 오늘의 일과를 마치니 저만치 버스 한 대가 꽁무니를 내빼고 있다. 버스는 떠나고 길손만 남았다. 배차 시간을 확인하니 30분이라, 좀 더 걸을까,……, 하다가 마침 다가오는 택시가 있어 몸을 실었다. -22)-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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