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이 달콤하게 하는 것은 피곤함이 있기 때문이고, 배부름이 세상에 부러울 게 없게 하는 것은 배고픔이 있기 때문이요, 건강을 소망하는 것은 병이 있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이번 여행에서는 제주 역사의 현장 중에서 항일운동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이 분야에 문외한(門外漢)이던 나에게는 좋은 공부가 되었다. 제주의 항일운동은 유림. 의병. 해녀의 세 갈래로 구분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조천 만세운동>과 <법정사 항일운동>, <해녀 항일운동>이 그것이다. 이를 제주 3대 항일운동이라 하는데, 이에 대하여 <제주 항일운동기념관>에서는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조천 만세운동>
1919년 3월 21일부터 24일까지, 1차는 미밋 동산(만세동산)에서, 2~4차는 조천장터에서 군중들을 동원 항일 만세 시위를 하여, 제주인들에게 민족의식을 일깨우고 이후 제주지역에 벌어지는 항일운동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법정사 항일운동>
1918년 법정사라는 절의 스님들을 중심으로 선도교(仙道敎)의 교도와 지역주민 등 400여 명이 10월 6~7일 중문 주재소(駐在所)를 습격, 방화 전소시키는 등, 삼일운동 이전 최대 규모의 단일 투쟁으로 일제의 경제침탈에 대한 제주도민의 항일 투쟁이며 국권 회복 운동입니다.
<해녀 항일운동>
1931~1932년에 걸쳐 구좌. 성산. 우도의 해녀들을 중심으로 그녀들의 생존권을 침해하는 일제와 해녀 조합에 항거한 투쟁으로 여성 집단 최대 규모의 어민 투쟁이며 공동체적으로 대처하는 1930년대 최대의 항일운동으로 238회에 걸쳐 연인원 1만 7천여 명이 일제 식민지 약탈 정책에 저항한 항일운동입니다.*
이들 중에서 나는 <법정사 항일운동>에 특별히 주목하고자 한다. 이 운동은 삼일 만세운동보다 5개월 먼저 일어났고 그 규모도 상당했다. 그래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시작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서귀포시 도순동 법정사에서 주지 김연일(1871~?)과 승려, 지역주민 등 4백여 명이 일시에 궐기한 대규모 항일운동으로 1910년대 종교계가 주도한 운동 중 전국 최대 규모의 항일운동이라는 사실에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 사건으로 수많은 사람이 일제로부터 고초를 당했고 설 흔한 분이 실형을 선고받았으며 다섯의 애국지사가 옥사하였다고 기록(記錄)하고 있다. 이 좁은 변방의 제주에서 말이다.
정부는 그동안 <법정사 항일운동> 관련 실형을 받은 애국지사에게 건국훈장을 추서하였고, 1995년부터 매년 기념식을 하고 있다니 늦었지만 감사하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요즘 윤 정부의 뉴라이트 관련 인사의 기용을 둘러싼 말썽을 상기하면 좋을 것이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나는 제주인의 삶과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 제주시의 중심부를 걸으면서는 변화된 제주의 모습을, 관덕정을 비롯한 제주읍성 주변에서는 사라져 버린 옛 사적의 아쉬움을,
조천리의 만세동산에서는 제주 기미년 만세운동의 뿌리를, 세화리에서는 제주 해녀들의 집단 항일 투쟁의 숨결을 느꼈다. 그리고 제주 항일기념관에서는 교과서에서 배우지 못한 여러 항일투쟁사를 접할 수 있었고, <너븐숭이 4.3 성지>에서는 민족의 비극을 느꼈다.
이번 여행은 올레길이 단순한 제주의 풍광만을 보는 길이 아니라 탐라에서부터 4.3사건까지 제주인의 삶과 역사를 함께 느끼는 길이라는 걸 체험한 여행이었다.
올레 두 번째 여행은 5박 6일 동안에 올레길 17, 18, 19, 20코스 등 네 코스를 걸었다. 지난번에는 서귀포 쪽을 걸었으나 이번에는 제주시 쪽을 택했다. 앞으로 더 많은 제주 여행을 예감하면서 여행기를 쓴다. -19)-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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