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 위의 길은 숲이 우거진 계곡으로 들어간다. 소나무가 많다는 한밭 <소낭길>을 타고 해변으로 내려선다. 내려선 해변은 고요하고 편안하다. 낮은 곳은 언제나 편안한 법이긴 하다만, 저 바다 위에 떠 있는 형제섬은 길손을 따라 흐르는데, 하늘은 흐리고 바람은 잦아들지 않는다.
길은 다시 <볼레낭길>을 타고 산허리로 기어오른다. 상당히 가파르고 험하다. <볼레낭>은 경상도 말로 <뻘똥>이라는 작고 붉은 열매를 말한다. 콩알만 하다. 먹으면 새콤달콤하다.
산자락을 끼고 오르니 어느새 이름도 예쁜 <월라봉> 중턱, 길도 험하고 나무들도 생뚱맞다. 온 산이 불에 타다 남은 듯 울긋불긋하다. 가까이 가서 보니 소나무만 뻘겋다. 혹시, 재선충! 그렇다. 약도 소용없다는 소나무 에이즈다.
산을 오를수록 베어진 잔해가 무질서하다. 육지에서야 가끔 보는 현상이라지만, 청정지역 제주에까지 전염되었단 말인가!
<소나무재선충>, 말만 들었지, 실제를 보니 소름이 돋는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하는데, 사태가 심각하다. 게다가 길바닥엔 우마(牛馬)의 배설물이 비에 젖어 질퍽거리니, 이 어찌 천하의 제주 올레라 할 수 있겠는가! 무언가 잘못되지 않고서야.……
여행에서 돌아와 언론 보도를 살펴보니, 제주도에서만 <소나무재선충> 피해 복구비로 400억이 넘은 예산을 썼다고 한다. 그러고도 현실이 이러하니 앞으로 얼마나 더 예산을 쏟아부어야 할지 기가 찰 노릇이다.
어찌저찌하여 요리 기고 조리 기어서 그 길 없는 길을 헤쳐 나오니, 이번에는 시커먼 아가리의 땅굴이 연속으로 일곱 개, <안덕 월라봉 일제 동굴 진지>라는 안내판을 읽으니, 안 본 것만 못하다. 2차 대전 막바지에 일본군이 판 대공포 진지란다.
전쟁 말기에 그들은 왜 이곳에 동굴을 팠을까? 전쟁이 끝날 때까지 숨어 살기 위함이었을까? 그리고 실제 이 진지는 누구의 몸으로 팠을까? 풍경 길에, 역사를 너무 깊게 들어갈 여유는 없지만 조금만 알아보고 넘어가자.
제주도에 이런 일제 동굴이 수도 없이 많다. 확인된 것 만 80여 곳에서 7백 개가 넘는다고 한다. 전쟁이 말기로 접어들자, 일본군은 정예부대 7만 명을 이곳 제주에 주둔시킨다. 미국과의 최후의 일전을 여기서 하자는 속셈이었다. 흑흑흑
왜? 이 아름다운 제주일까? 일본 본토에서 하지, 제주는 식민지 아닌가, 식민지 국민이 사람이었겠는가. 그러나 다행이 미국은 일본 본토를 향해 최후의 일격(원폭 투하)을 가한다. 그래서 제주는 살아남았다고 생각한다. 동굴 진지는 식민지의 아픈 역사다.
아픈 역사를 뒤로하고 길을 걷는다. 잠시 걷는 사이에 우당탕 소리와 함께 내 몸은 허공을 날았다. 물기 묻은 <나무 데크>가 오죽 미끄러운가, 뒤따라오던 어부인도 깜짝 놀란다. 다행히 운동 신경이 출중한(?) 나는 바로 일어설 수 있었지만, 으하하.
나무와 부딪힌 엉덩이는 한동안 얼얼하였다. 이런 험한 길에 정신 줄을 놓았으니, 이것도 식민지의 아픈 역사와 연관이 있었으리라.
정신을 가다듬고 <월라봉> 내리막길을 조심해서 내려오는데, 길섶에 <볼레랑> 나무 한 그루, 철 지난 이 겨울에 웬 빨간 열매들, 한 줌 따서 부부가 나누어 맛을 봤다. 떫고도 달았다.
입맛을 다시면서 걷는데 오른쪽의 깊은 계곡과 높은 절벽, 우거진 천연 숲이 오른쪽 가슴을 짓누른다. 아픔이 아니라 두려움이다.
인가도 없고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곳, 대낮인데도 온몸으로 파고드는 오싹함, 또 진눈깨비까지 내리고 날은 어둠침침하고, 얼핏 <4.3 사건>의 원혼들이, 머리를 스치는데,
퓨드득! 퓨드득! 소리와 동시에 으악! 으악! 길섶에서 새 두 마리 튀어 오르자, 올레꾼 두 사람이 내지른 함성이다. 간 떨어지는 줄 알았다. 새는 꿩이었다. -14)-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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