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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 길 위의 풍경>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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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석봉1 2024. 8. 24.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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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마음에 막걸리 컵을 권하니 단숨에 마신다. 그도 우리가 걷는 것을 보고 길을 나섰는데 오름을 오르고 내려오면서 상당히 무서웠다고 한다. 바람 불고 비까지 뿌리는 어둑한 산길, 길손이 없으니, 누군들 으스스하지 않으리. 올레길에서 가끔 만나는 분위기다.

 

그를 먼저 보내고 우리는 천천히 걸었다. 이제 길은 산길이 아니라 들길이라 무서움은 없었다. 올레길은 <휴리조트>라는 숙박업소를 지나 모퉁이를 돌아서니 <혼인지(婚姻池)> 넓은 마당이 융단처럼 펼쳐진다.

 

태초에 탐라 땅의 주인인 <. . > 3 신인(神人)이 벽랑국(壁浪國) 세 공주를 만나 혼인한 장소가 이곳, 혼인지라고 한다. 이들 3 신인의 후손들이 오늘날 제주도 사람들이다. 제주 고씨, 제주 부씨, 제주 양씨, 이들은 지금도 같은 일족으로 생각하고 있다.

 

벽랑국(碧浪國)은 푸른 파도의 나라라는 상상의 국가라지만, 그때의 <신방 굴><혼인지> 연못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우리는 작고 초라한 신방 굴과 연못을 둘러보면서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지난 주말 결혼식을 올린 흔적이 혼인지의 안내 게시판에 붙어있다. 이곳에서 전통 혼례를 올린다니 반갑다. 전설이 현실로 이어지는 현장을 나는 오늘에야 처음으로 만났다.

 

제주에 매년 오다시피 했지만, 혼인지는 내 기억 속에 없는 곳이니, 나는 제주의 헛것만 본 사람이다. 34일이면 더는 볼 것이 없다는 말은 진정 허구였다는 말인가. 그렇다. 그것은 허구다. 제주의 구석구석을 다 보자면 1년도 모자랄 것이다.

 

전설의 현장을 뒤로하고 비옷을 벗고 입기를 반복하면서 무심으로 가다 보니, 길섶에 선 안내판이 바다를 가로막고 있다. 그 옆으로 얕은 돌담들 약간, 만약 안내판을 보지 못했다면 여기가 거기인지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고려군이 처음 쌓았고, 삼별초 군()이 보강하고, 조선이 재보강한 군사시설, 이제는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는 역사 유적, 이름하여 <환해장성(環海長城)>. 제주도기념물 제49~9, 해안선으로 이어지는 그 길이가 300여 리(120km),

 

일찍이 병자호란 때 <선전후화(先戰後和)>론을 끝까지 굽히지 않은 선비, 조선의 척화(斥和) 주의자 김상헌(1570-1652)이 탐라의 만리장성이라 했던 그 성()이 아닌가!

 

탐라 해변 4백 리 길을 7백 년 넘게 지켜온 성, 탐라 백성들의 피와 땀으로 한 돌 한 땀 쌓아 올린 그 혼의 성, 이 땅의 먹거리를 해풍으로부터 지켜온 그 성이, 지금은 이렇게 숨이 끊어진 채 흔적만 남아 있다니.

 

왜 우리는 개발만 좋아하는가? 유네스코가 지정한 수많은 세계유산을 차치하고라도 진나라의 만리장성은 중국을 먹여 살리고, 파리의 에펠탑은 프랑스를 넘어 세계인을 흥분시키고, 폼페이의 폐허도 이탈리아를 빛낸다는데, 역사를 허물고 여기 아스팔트 길을 내고 콘크리트를 쌓았다고 국민이 행복할까?!

 

아쉬움을 뒤로하고, 따뜻하고 들이 넓어 평평하다는 온평리로 들어섰다. 오늘도 제주의 많은 역사를 현장에서 체험하는 멋진 하루였다.

 

이어서 올레 종점인 <온평 포구(溫坪 浦口)>에 도착하니 온종일 갈팡질팡하던 날씨도 저 일출봉이 품었는지 고요하다. 걷기를 마치고 남원읍으로 돌아와 남원 포구의 포근하고 작은 식당에서 장어구이로 진한 저녁을 먹었다. 막사발 한 잔은 덤으로 넘기고. -12)-계속- 2024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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