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지지 않는 눈길을 돌려 그 마을로 향했다. 마을에 들어서니 멀리서 본대로 티끌 하나 없는 청결함, 그 까만 돌담 위에 푸른 담쟁이덩굴 들, 가정마다 정갈한 한두 그루의 사철나무 들,
거기에 <길손이여 쉬어가시라>라고 적은 배려의 나무 의자, 넉넉한 마을회관, 대대로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마을 분위기, 스위스 융프라우 가는 길에서 만난 그 어느 마을인들 이보다 나을쏘냐.
특히, 마을회관 울타리에 선 옛사람들의 공덕비 들(비석거리)이 제주의 문화를 대변하고 있다. 듬직한 회관은 마을 공동소유이고 그 재산을 세우는데 앞장선 선각자들이 있었고, 그 선각자들의 공덕을 기리는 후손들의 뜻이 여기 비석에 새겨져 있으니, 얼마나 보기 좋은 모습인가.
육지에는 없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게다가 회관 앞뜰에는 엄마와 아이들이 걷기 연습을 하는지 기는 듯 구르고 있는 모습은 얼마나 평화스러운가, 아, 살아보고 싶은 마을, 오조리(吳照里), 그 이름도 빛나고 예쁘다.
오조(吳照)는 성산 앞바다 일출봉에 오른 해가 가장 먼저 와 닿은 곳. 그래서 오조리라는 이름이 되었다고 하니, 그런 오조를 생각하면서 일출봉을 바라보고 길을 걸었다.
얼마를 걸어 <고성리>로 들어서니 여기는 다르다. 고요가 아니라 생동이고 활력이다. 성당이 있고, 주유소가 있고, 식당이 있고, 통신점도 있고 큼직한 건물들도 있다. 성산읍 소재지인 모양이다.
그런데 올레 리본이 보이지 않는다. 길을 잃은 것이다. 첫 경험이다. 길을 걸으면서 길을 잃으면 오던 길을 되돌아가 길을 찾으라 했다. 그것은 올레길 초입에 세워둔 안내문의 유의 사항 여 듦 중에 세 번째 문항에 있다.
한참을 뒤돌아 걸어도 파랑. 주황색의 두 갈래 리본은 보이지 않는다. 이럴 땐 만나는 사람에게 묻는 게 상책이다. 저기 한 사람이 온다. 내가 그를 부른다.
-삼춘! 올레길을 걷는데 리본이 안 보여요.
*제주에서 ‘삼춘’은 약방에 감초 같은 호칭이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아무 때나 어디서나 부르는 호칭이다. 그러니 <약방의 감초>라고 할 수밖에, 이 정도는 알아야 올레를 걸을 수 있다.
-아, 올레길요? 길을 잘못 들어오셨군요. 저기로 쭉 가요. 쭉 가면, 5일 시장이 나오고 더 가면 사거리가 나오는데 ……, 거기서 오른쪽으로 가세요. 여기는 원래 올레길이 아니고 저쪽인데, 그래도 안심하고 가세요.
손가락으로 동쪽 바다를 가리키면서 설명해 주는 중년의 아저씨, 친절도 하시다. 오조리 마을을 벗어나서 바로 왼쪽으로 꺾어 해안 길을 갔어야 하는데 우리는 직진으로 난 아스팔트를 걸었으니 편한 길이 잘못된 길이었다. 한참을 잘못 걸었다. 오조리에 취해서 길을 잃었다.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걸었다.
그 ‘삼춘’ 말대로 큰길을 걸어가니 오른쪽에 시장건물이 서 있다. 주차장도 넓다. 오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늘이 고성리 5일 장이 서는 날이다. 고성 5일 장은 4일과 9일이었다. 시장(市場)은 언제나 정겨운 법, 반가운 마음으로 장마당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10)-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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