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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 길 위의 풍경>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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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석봉1 2024. 8. 19.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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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 길 위의 풍경 -2코스(광치기~온평 올레)

 

새벽부터 내리는 부슬비를 벗 삼아 숙소를 나섰다. 겨울의 제주는 눈도 많고 바람도 많은 곳이다. 하루에도 수십 번, 비가 (눈이) 오다가도 금 새 햇살이 반짝인다고 하는데, 오늘의 제주 날씨도 소문처럼 변화무쌍한 것 같다.

 

어제는 그래도 나았었는데, 이렇게 바람 불고 비 오는 날이면 어디가 좋을까? 초보자는 불안하다. 하지만 어디든 결정해야 한다. 아무래도 서쪽보다는 동쪽이 더 따뜻할 것 같다.

 

실제로도 동쪽보다 서쪽이 바람이 많다고 한다. 특히 모슬포 바람은 매섭기로 유명하다는 소문이다. 동쪽을 생각하니 성산 일출봉이 생각난다. 제주에 올 때마다 찾는 곳이기도 하다.

 

일출봉에 먼저 인사라도 하는 게 마음 편할 것 같아서 오늘은 2코스를 걷기로 했다. 남원읍에서 <일주 버스>를 타고 <광치기 해변>으로 달렸다. <광치기 해변>은 넓은 바위의 해변이란 뜻의 제주어라 한다.

 

<광치기 해변>은 제주 4·3사건의 아픔이 있는 곳이다. 4·3사건은 올레길을 걸으면서 자주 접하는 우리의 아픈 현대사인 것을……, 오늘도 해변 바위에는 푸른 이끼들이 아픔의 역사를 대변하고 있었다. 푸름은 아픔이기도 하였다.

 

버스에서 내려 코스 시작점인 <광치기 해변>에 서니 근엄한 일출봉이 바다를 가로막고 우뚝 서 있다. 분화구의 지름 약 600m, 높이 182m에 불과한 성산 일출봉(城山 日出峰) 오랜만에 대하니 감회가 새롭다.

 

산 같지도 않은 것이, 그렇다고 언덕 같지도 않은 것이, 깨어진 메주가 녹아내린 듯한, 사람의 능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신기한 모습으로 다시 한번 나를 당긴다. 언제 보아도 경외감이 든다. 저런 일출봉을 왜 올레길에 넣지 않았는지 아쉽고 궁금하다.

 

멀리서 바라만 보라는 것인지, 아니면 일출봉이니 새벽에 별도로 오르라는 것인지, 언젠가 올레 지킴이를 만나면 물어볼 일이다. 아니, 물어보고 알아보고 자시고 할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가을 단풍과 미인은 가까이서 보지 말라고 했듯이. 단풍과 미인은 시각이지 촉각이 아니듯이, ~, 정말 그런가.

 

동쪽 바다에 우뚝 선 일출봉에 합장하고 길을 걷는다. 초입부터 가는 길은 바다 위를 걷는 기분이다. 좌우가 모두 출렁이는 푸른 물결이다. 바다 가운데 세운 길이다. 내수면 방죽길 초입에 작은 포구 하나가 길손의 마음을 더욱 녹인다. <오조 포구>.

 

<오조 포구>에서 이어지는 길은 올레꾼이 아니더라도 호기심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좋아할 부담 없는 길이다. 궂은 날씨에도 잠깐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걸으니, 세상이 솜털같이 가볍다. 가벼워진 마음 앞에 작은 봉우리 하나가 길을 내어준다.

 

식산봉이란다. 왜 식산(食山)인지 알만하다. 작으나 풍족한 오목함이 농부의 꽁보리밥 봉우리를 닮았다. 그 옛날 이곳 성산포구에는 왜구들이 하도 자주 침략하여 이 봉우리를 군량미를 쌓아둔 노적가리로 위장하여 이 땅을 지켰다고 하니, 식산은 바로 밥의 산이요 요새(要塞)의 산이다.

 

지금이야 통할 리 없겠지만 그때로서는 굿~아이디어였다. 천년의 숲속을 올라 전망대에 서니 저 멀리 우도가 이웃 마을처럼 펼쳐지고, 성산 갑문이 수문장처럼 호수를 지켜주고, 일출봉이 형님처럼 든든하게 외풍을 막아주고 있으니 이 얼마나 훌륭한 요새인가.

 

이래서 식산봉은 밥과 요새이자 오름의 전형이다. 한편, 제주는 <오름>의 천국이구나 하는 생각이 올레길을 걸으면서 강하게 다가왔다. 앞으로 걸으면서 또 얼마나 많은 <오름>에 가슴을 녹일까 모를 일이다. 그뿐이 아니다. 아래로 보이는 시야가 절경이다.

 

갈대가 흰 울타리가 되어, 그 안에서 물 위로 검은 병아리들이 졸고 있는 철새 양식장(?)이 매력적이고, 오렌지색과 파란색의 지붕 사이로 까만 돌로 만든 담장이 꼬불꼬불 기어다니는 마을이, 많은 올레꾼의 발길을 멈추게 하기에 충분하다. 해발 50m도 안 되는 낮은 오름이지만 보여주는 것은 높았다. 9)-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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