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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 길 위의 풍경>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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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석봉1 2024. 8. 18.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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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 다리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흐르는 강물이 유달리 맑고 푸르다. 제주의 강은 거의 물이 없다. 비가 그치면 바로 강바닥이 말라 버린다. 그래서 대부분이 무수천(無水川)이다.

 

그런데 여기는 그 귀한 물까지 흐르고 중문관광단지가 인접해 있어 예로부터 살기 좋기로 이름난 이곳을, 국가가 독차지하겠다고 하니 문제가 생긴 것이리라. 다리를 경계로 딴 세상이 펼쳐진다. 저 공사 펜스만 아니면, 저 푸른 <바당>을 끼고 구럼비 위를 걸을 수 있을 것을……,

 

우리는 공사장 현장 정문을 가로질러 걸어가면서는 더욱 아쉬웠다. <. 군 복합형 관광미항 제주 해군기지>라 하고, <해안 노출암 일부를 자연 상태로 보전하여 주변을 수변공원으로 조성한다>고 국가가 말하니,

 

국민 된 자로서는 두고 보자는 말밖엔 할 말이 없다. 보존과 개발은 필요한 양 날개다. 개발하더라도 주민들이 환영하는 평화적인 길은 없는 것인가.……, 안타깝고 아쉽다.

 

도로 주변부와 공사장 펜스에 걸려, 이젠 걸레가 되어 나부끼는 애절한 글귀들을 뒤로하고 걸었다. 유유(悠悠)히 걸어야 할 길을 이렇게 뒤틀리게 걸어가니 다리가 한 짐이다. 우리는 왜 환경에까지 이념을 걸쳐서 생각해야 하는가? 고민하면서 걸었다.

 

강정마을 사람들도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는 국민일 터, ()을 취하고 백성()을 버리는 것이 과연 국가가 할 일인가! 공자는 논어에서 말했다. (논어 제12편 안연(顔淵) 7)

 

()과 병()과 신()은 민심을 얻는 방법인데, 만약에 이 세 가지 중에서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그것이 무엇인고? 바로 병()이요, 또 남은 두 가지 중에서 하나를 더 버려야 한다면 그것은 또 무엇인고? ()이라고 말했다.

 

결국 신()은 끝까지 버릴 수 없다(民無信不立)는 말이 아닌가. ()이란 무엇인가. 바로 백성 아니던가. 공자가 살았던 그 살벌한 춘추시대에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지금이야 두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시인 신경림(1936~2024, 충북 충주 출신)은 구럼비(60cm 길이 1.2km의 거대한 용암)가 사라지는 것을 안타까운 심정으로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강정마을을 위로했다.

 

<강정의 아이들에게>

 

세계 여러 곳을 다녀봤는데/ 이보다 아름다운 곳을 본 적이 없다/ 얘들아/ 너희들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어머니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여겨도 된다/……/ 저 바다를 보아라/ 구럼비 해안에 돌 찔레가 보이느냐/ 너희들의 어머니시다/ 범섬 너머,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느냐/ 너희들의 아버지시다.

 

공사가 진행 중인 강정항을 지나 무거운 다리를 끌고 다소 지루한 아스팔트 위를 걷고 또 작은 언덕을 넘으니 조각배 두서너 척을 숨겨둔 아주 작은 포구가 우리 앞을 막았다. 달을 품는다는 <월평포구>.

 

! 세상에나, 이런 작고 맑고 푸른 포구가 있었다니, 뛰어들어 얼굴을 담가보고 싶었지만, 평소 준법정신이 강하면서 간이 작은 나는, 전경 두 사람이 어른거려 포기하였다.

 

대신 어부인과 귤 하나씩을 까먹으며 목을 쭉 빼고 내려다보았다. 더 쉬었다 가라는 <월평포구>를 뒤로하고 또 하나의 작고 예쁜 언덕을 넘었다.

 

마을 신을 제사 지낸다는 굿당, 그곳의 산책로에 들어서니 보이지 않는 해가 서산 기슭에 다다랐는지 사위가 흐렸다. 날은 저물고 인적은 끊어졌는데 마을 신당이라니 좀 뻐근한 게 으스스하다. 어부인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따라서 나도 빨라졌다.

 

너무 신령스러워 혼자서 걷기에는 아까운 길, 제주에는 이런 마을 신당이 수백이 넘는다고 하니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태산이다. 신당과 가까워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정신없이 걷고 나니 마을이 나오고 이어 올레 7코스 끝인 <송이슈퍼>가 전등을 환히 밝히고 우리를 반긴다. 한숨 한 번 쉬고, ……, 반갑다. <송이>~!

 

이로써 첫날의 올레는 완성되었다. 기대 이상으로 많은 풍경을 보고 걸었다. 어둠의 그림자가 거리를 덮기 시작하는 제주의 겨울은 포근하였다.

 

저녁은 서귀포 중앙로터리 부근의 <양푼이 동태탕>이라는 식당에서 동태탕 한 사발과 생막걸리 한잔으로 몸을 녹이고, 거리로 나오니 제법 굵은 빗방울이 옷을 적신다. -8)-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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