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올레, 길 위의 풍경 -7코스(외돌개~월평 올레)
아침에 일어나니 날씨는 잔뜩 흐렸지만, 몸은 한없이 개운하다. 제주 중산간의 상큼한 날씨 탓이리라. 올레 첫날인데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1코스부터? 아니야, 1코스의 알오름이 얼마나 경탄스럽길래,……오죽하면 천하의 여행가 한비야(1958년생, 본명은 인순, 월드비전 세계 시민학교 교장) 씨가 <천하 제1경>이라고 감탄사를 연발했을까! 기대된다.
그런 알오름을 늘 가슴에 품고 올레를 걷고 싶어서 1코스는 천천히 걷기로 하였다. 그럼, 어디서부터 걸을까? 그때 제주올레 서 이사장의 글이 머리를 스친다. 제주에서 가장 아끼는 공간, 그곳을 걷노라면 눈물이 나는 곳, 부산 태종대 정도가 겨우 견줄만한 곳, 그곳으로 가고 싶었다.
그곳은 다름 아닌 7코스의 외돌개다. 고교 시절 산골 촌놈이 부산으로 유학해서 맞은 첫 소풍 길에서 태종대 자살바위에 올라 얼마나 놀랐던지, 세상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그곳에서 제주올레와의 첫 대화를 시작하고 싶었다. 그곳으로 가자는 나의 제안에 어부인도 대찬성(?)이다.
-외돌개로 갑시다!
남원읍에서 오는 택시에 몸을 실었다. 외돌개로 가자는 말에 기사는 가타부타 한마디 대꾸도 없다. 언 듯 보기에도 몹시 과묵한 스타일인지라 나도 말을 걸지 않았다.
외돌개! 바다로 나간 지아비의 무사 귀환을 기다리다 신이 된 망부석, 몽골군을 영원히 몰아낸 장군바위. 외롭게 홀로 우뚝 서 있는 돌기둥이라 하여 외돌개라는 서귀포 관광 일번지, 그 별명 많은 외돌개는 <7코스> 초입에 있었다.
그리하여 제주올레길 완주 대장정을 <7코스>부터 시작하였다. 외돌개는 초창기 올레 2코스 종점이었단다. 외돌개 입구에는 큼지막한 주차장이 있고 상점들도 몇 있다. 과연 서귀포 관광 일번지답게 입구부터 대단하다.
외돌개 주차장 앞 도로변에 있는 코스 시작점인 올레 간세(게으름뱅이를 뜻하는 제주 방언, 간세 다리에서 따온 올레 마스코트)와 처음으로 인사를 나누고 길을 내려서니 조그만 매점 하나가 올레꾼들을 줄 세우고 있다.
카페<솔빛바다>, 작지만 정갈하다. 음료수와 간식 그리고 올레 수첩(패스 포드)과 올레 안내 책자를 파는 곳이다.
우리도 줄을 서서 안내 책자와 간식거리 하나를 사 들고 지척에 있는 외돌개로 향했다. 올레 수첩(패스 포드)은 사지 않았다. 그것은 중간중간에 올레길을 걸었다는 표식으로 스탬프를 찍는 작은 책자인데 굳이 그럴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에서다. 걷는 것이 목적이니……,
외돌개 가는 길에는 신선바위와 기차바위라는 맛보기 암석을 지나는데 튀어나온 절벽이 아찔하다. 올레길 처음부터 다리가 휘청거린다.
아찔한 절벽을 지나니 삼면을 감싼 해안에 밀려오는 파도를 안고 높게 서 있는 바위가 왼쪽 눈을 찌른다. 저 멀리 바다에 떠 있는 범섬을 향하는 돌기둥은 돌이 아니었다. 아! 영락없는 여인의 옆모습이다.
얼마나 상심했던지, 남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큰 입을 더 크게 벌리고 망부석(望夫石)이 된 그녀를, 누가 할망(할머니) 이라 했는가! 내 눈엔 아직 배태도 못 한 아련한 청상(靑孀)의 모습이다.
<청상(靑孀)이시여! 그래도 외롭지는 않겠지요. 이렇게 그대를 위로하는 올레꾼들이 있으니……,>
길가에 핀 이름 모를 들꽃 한 송이를 나는 말 없는 그녀에게 바치고, 그녀의 뒷모습을 보기 위하여 솔밭 길을 조금 더 걸었다. 하늘은 흐리고 쌀쌀한 날씨임에도 뒷모습이 보이는 포토 존에는 관광객들이 사진 찍기에 한창이다. 학창 시절 부산 태종대로 소풍 갔던 옛 추억들이 아스라이 스친다.
관광객들 뒤로 돌아서니, 그녀의 뒷모습엔 <그녀>는 없었다. 거기엔 위엄이 서린 다부진 <그가> 당당히 서 있었다. 최영(1316~1388) 장군이시다. 한라를 근 일백 년이나 지배하던 몽골 군속(軍屬)을 이 땅에서 영원히 몰아내기 위한 마지막 작전에 그는 스스로 이 돌기둥이 되었다.
저 앞 범섬에서 대치 중이던 목호(牧胡; 말 치기 몽골인)들이 장군의 위엄에 눌러 자멸하던 그 위엄 그대로다. 그때가 1374년(고려 공민왕 23년)이니 6백 5십여 년 전의 일이다.
기다림에 지친 여심에 눈시울이 뜨겁고, 장군의 존엄에 내 목울대가 꿈틀거렸다. 이렇듯 외돌개는 하나가 아니다. 외돌개는 망부석이요, 장군바위요, 파도의 어머니다. 아니 어쩌면 제주인들의 영혼인지도 모른다. -6)-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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