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략.
시위 군중은 발 디딜 틈조차 없이 명동의 거리를 가득 메워 2만 명이 육박하였고, 농성자들이 해산한 성당 구내에는 또 다른 농성자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최일구 기자를 비롯한 MBC 경찰 기자들은 이 상황을 기사로 만들어 데스크에 송고했다.
그러나 데스크는 <MBC 뉴스데스크>용으로 <평온을 되찾은 명동>이라는 꼭지의 제작을 경찰 기자들에게 지시했다. MBC 간부들은 민주화 열기를 반감시키기 위한 여론조작 용으로 <시위가 끝났다>는 식의 거짓 뉴스 제작을 지시한 것이다.
MBC 경찰 기자들은 그런 악랄한 지시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기자들은 근처 다방에서 곧 긴급회의를 열어 오후 5시 40분부터 1시간 40분 동안 취재를 거부하고,
“취재팀의 이 같은 행동은 조직을 파괴하려는 행위가 아니며 MBC의 발전과 함께 취재기자로서의 최소한의 자긍의 행동”임을 밝히는 성명서를 만들었다.
역시 역사의 현장을 지켜보는 취재기자들의 판단은 옳았다. 2주일 후 국민의 민주화 의지에 굴복한 소위 <6.29선언>이 나왔다. 6월 민주항쟁의 열기는 언론계에도 새바람을 몰고 왔다.
그 바람은 노동조합 결성으로 나타났다. 1987년 10월 29일 『한국일보』 노조의 결성을 시발로 11월 18일 『동아일보』, 12월 1일 『중앙일보』 등으로 확대되었고, 12월 9일엔 MBC에 노조가 탄생하게 되었다.
12월 16일에 실시된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노태우는 36.6%(828만 표)의 득표율을 기록해 28.0%(633만 표)와 27.1%(611만 표)을 얻는 데 그친 김영삼과 김대중을 따돌리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36.6%짜리 대통령이었다.
민주화를 염원했던 유권자들은 이 선거 결과에 대하여 “죽 쒀서 개 줬다”며 분노했지만, 민주화 열기 마저 사라진 건 아니었다.
12.16 대선 이후 돌변한 회사 측의 집요한 탄압이 이루어지기 시작했지만, 6월 항쟁의 정신을 이어받은 방송 민주화 투쟁의 열기는 지방으로도 확대되었다.
1988년 1월 11일에는 마산 MBC 노조가 결성되었으며, 1월 30일엔 목포 MBC 노조, 2월 1일엔 여수 MBC 노조, 2월 6일엔 대구 MBC 노조, 2월 20일엔 광주 MBC 노조,
5월 14일엔 부산 MBC 노조가 결성되었다. 5월 20일엔 KBS 노조가 결성되기에 이르렀다. 강준만의 『손석희 현상』 <인물과 사상사> 22쪽~23쪽, 25쪽 인용.
1992년 8월 MBC는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과정에서 피해 농가와 관련된 방송을 준비했지만, 방송사 고위층의 방송 불가 판정을 받았다. 이에 MBC 노조는 9월 2일 세 번째 파업에 나섰는데 노조가 50일 동안 파업을 벌이며 요구했던 건 <공정방송>이었다.
이 파업으로 모두 7명이 구속되었는데, 당시 저녁 7시 <뉴스앵커>였던 손석희도 노조 파업 행사 팀장을 맡고 있어 주동자 중 한 명으로 구속되어 20일간 수감 생활을 했다.
당시 손이 밧줄에 묶여 있는 와중에도 얼굴엔 환한 미소를 머금고 있던 손석희의 사진 한 장은 이후 방송 민주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이미지가 되었고, 20여 년 후 당시 태어나지도 않았던 젊은이들에게 손석희의 과거를 알려주는 상징이 되었다.
네티즌들은 이 사진을 보면서 “손석희, 역시 믿음직해”, “손석희, 젊을 때도 강직했네”, “손석희, 잘 생겼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이 사건 이후 손석희는 <공정방송>의 상징이 되었다.
-중략-언론학자인 나에게 손석희가 강한 인상을 남긴 건 그 사진과 더불어 그가 1993년 9월 10일 『노동자신문』에 기고한 「부끄러운 언론의 얼굴」이라는 칼럼이었다.
나는 이 글의 일부를 나의 『한국 대중 매체사』(2007)라는 책에 싣고 매년 <한국언론사>라는 과목을 강의할 때마다 소개한다. 이 칼럼은 1986년< 평화의 댐> 사건에 대한 고해성사인 셈이다. 강준만의 『손석희 현상』 <인물과사상사> 35쪽~36쪽에서 인용.
★각설하고 그 시절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병술년을 보내며> 부 지부장 최흥섭
올 병술년은 돌이켜 보면 2005년 종합업적 꼴찌 사무소에서 상위권으로 진입하기 위해서 지부장님을 비롯하여 직원 여러분의 마음고생이 가장 컸던 한 해를 보낸 것 같습니다.
전국에서 제일 큰 성남시지부에서 존경하는 신 상조 지부장님과 유능한 직원 여러분과 함께한 2년은 제 개인적으로 영광으로 생각되며 영업점 근무 중 가장 오래 근무한 사무소이면서 또한 향후 농협 생활에서 잊지 못할 것입니다.
제가 이 지면을 통하여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첫째로 있을 때 잘하자는 것입니다. 즉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직장 동료, 친구, 가족 등에게 잘하자는 것입니다.
둘째로 부부가 같이할 수 있는 취미생활을 하자는 것입니다. 같은 취미생활을 함으로써 영원한 동반자로 가는 길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정해년 새해에는 소원성취하시고 항상 건강하길 바랍니다. 끝.
★최 부 지부장은 그 후 본부로 올라가서 부장으로 퇴임하였다. 지금도 나와는 가끔 만나는 사이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길 빈다. end 47)-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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