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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주옹(酒翁)을 찬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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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석봉1 2022. 10. 26.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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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주옹(酒翁)을 찬양하며

 

 

젊은 시절 우리를 항상 즐겁게 하던 한 친구가 있었다. 그랑 함께하면 우리는 언제나 용기를 얻어 하나가 되었다. 연애질도 같이하고 수박 서리도 함께하였다. 허물없는 친구였다. 그런 친구가 언젠가 우리 곁을 소리도 없이 떠나버렸고 우리는 세파에 시달려 친구가 없는 줄도 모르고 살아왔었다.

 

그런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우리 곁에 혜성처럼 나타났다. 반갑고 기쁘다. 그를 환영하면서 그를 회고한다.

 

그 친구의 고향이 어디인지는 물어보지 않았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친구는 성품이 좌우한다. 그래서 그의 성품을 기억한다. 그는 시원시원하고 아리하고 새콤하고 달브드레 하다. 그 어떤 이도 사람의 마음을 이처럼 즐겁게 하지는 못했다.

 

어떤 이를 사귀어 보건대 소가(燒哥)는 쓰고, 와가(Wine)는 텁텁하고 양가(洋哥)는 구역질나고 맥가(麥哥)는 씁스브리하다. 특히 김빠진 소가나 맥가는 금방 썩지만, 그 친구는 오래 둘수록 양념이 되었다. 그는 또 유산균과 효소의 보고(寶庫)이니 웰빙의 원조였다.

 

그뿐만 아니라 기름기를 멀리하고 풋고추 하나면 그만이니 서민이요, 들판의 농부들과 공사판의 인부들이 특히 좋아하니 노동자의 벗이었다. 그는 또 싫어도 좋아도 내색하지 않았다. 좋은 듯 아닌 듯 은은하게 마음으로 다가올 뿐이었다.

 

그렇다고 그가 무골호인만은 아니다. 빗나간 세상의 멱살을 잡을 줄도 안다. 그 때문에 그와 함께한 우리는 늘 정심(正心)을 버리지 못했다. 그리니 그 친구는 선비요 교양인이었다. 그런 친구이니 한때는 국민 중에 7할이 그의 팬이었다.

 

그러던 친구가 사라진 시기는 80년도가 기점이 되었을 것이다. 그해 서울의 봄은 한낱 꿈이었고 민주의 함성마저도 검은 아스팔트 위에 붉게 쓰러져 버렸다.

 

암흑에 빠진 민중은 끓는 목마름으로 독종만을 찾게 되었다. 그때 나도 그를 버리고 독종에 잡종까지 좋아했었다. 그로서는 우리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그 틈에 소가와 양가와 맥가 들이 그의 자리를 차지했고 그는 설 자리를 잃어갔다.

 

솔직히 말하면 그 시절 그에게도 큰 잘못이 있었다. 당시 외국 것들을 마구잡이로 챙기는 시류에 편성하여 그도 그의 영혼을 값싼 수입쟁이에 팔아 버렸다. 그 결과 그의 성품까지 변해서 텁텁하고 껄껄해졌고 심지어 고약한 트림까지 올라오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버렸고 그는 갈 길을 잃고 스스로 떠났던 것이리라.

 

그런 친구를 우리는 가끔은 그리워했으나 쉽사리 만날 수 없었다. 그러던 그가 최근에 옛 모습보다 더 세련된 모습으로 우리 곁에 돌아왔다. 그것도 왕년의 인기를 능가하려는 듯 선풍적이다. 요즘은 외국 나들이도 자주 하면서 국위선양도 한다니, 기특하기까지 하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노라니 하도 반갑고 고마워서 내가 마치 그라도 된 듯이 흥분된다. 오랜만에 마주 앉아 함께하니 옛 추억이 아리하다.

 

어린 시절, 맑은 대낮에 우리 집 마당에서 친구들과 땅따먹기 놀이를 하고 있는데 관()에서 두 사람이 들어섰다. 그들은 마루 밑에 있는 쇠스랑을 찾아들고서 며칠 전에 옮긴 마당의 거름더미를 쿡쿡 찔렀다.

 

한참을 이리 찌르고 저리 찌르니 드디어 쇠스랑 끝에서 '달가닥 다락' 하는 소리가 났다. 그때 내 가슴도 철렁하며 내려앉았다.

 

며칠 후가 막내 이모 시집가는 날이었다. 그 후 거액의 벌금을 가난한 어머니가 물었을 것이다. 그때는 동네마다 가끔은 그런 일이 벌어지곤 했다. 여린 백성이 농사지은 쌀로 잔치 술 한 도가니 담근 것이 큰 죄가 되는 시절이었다.

 

60년대, 중학생 시절 어느 봄날에 내 짝의 입에서는 아침부터 홍시 냄새가 솔솔 나곤 하였다. 처음엔 친구가 감을 먹고 학교에 왔나 보다 했다. 그런데 한 날은 이 친구의 얼굴까지 약간 볼그스름했다. 한참 후에 안 일이지만 그 친구는 아침에 술지게미를 사카린에 타서 먹고 학교에 왔다고 한다.

 

양식이 없어 아침밥을 먹지 못한 친구의 안타까운 사실을 알고는 참 많이 우울했었다. 그런 사정을 알고도, 점심시간에 슬그머니 교실을 빠져나가는 짝에게 나의 고구마 도시락이나마 내밀지 못한 것이 부끄럽기만 하다.

 

또 있다. 겨울방학 중에 시골의 친구 집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다. 마침 그때 친구 방의 아랫목에 커다란 술 단지가 익어가고 있었다. 향긋한 내음에 끌려 친구와 나는 밀대로 빨대를 만들어 술독에 꽂았다.

 

처음엔 맛이나 보자고 시작한 것이 따뜻한 액체가 목을 넘어가니 달짝지근하고 새콤한 맛이 기가 차서 멈출 수가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실큰 빨았다.

 

둘이서 배가 산처럼 높이 오를 때까지 빨고는 곧 잠이 들었다. 다음날 해가 중천에 뜨고서야 일어나 보니 술독의 술이 괴어올라 방바닥이 흥건하였다. 나는 잠자는 친구도 깨우지 못하고 줄행랑을 쳤다.

 

우리가 빨아 먹든 단지의 술이 설익어 친구 누나의 혼사를 망쳤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전해 듣고 나는 누나를 향하여 국궁(鞠躬) 사죄하였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모골이 송연하다.

 

오늘 천리타향에서 주옹(酒翁)을 대하니 옛 추억이 활동사진 필름처럼 달달거린다. 주옹에 얽힌 일화가 어디 이뿐이며 나뿐이랴.

 

오늘은 그가 극복한 재기의 역사를 듣지는 못했지만 언젠가는 그때의 소꿉친구들과 끈 풀고 잔 주고받을 날이 왜 없겠는가. 이제 인생 3기를 시작하는 순간에 불과하니 말이다.

 

-2011년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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