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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살이>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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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석봉1 2024. 5. 23.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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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옥상의 창고도 확장 개조하였다. 창고의 묵은 서류들은 서현지점의 여유 공간으로 이관하고, 확보한 공간에는 탁구대를 설치하는 등 직원들이 쉴 수 있는 장소를 만들었다. 이름하여 <Now and Here 쉼터>, 점심을 먹고 잠시나마 휴식을 취할 수 있게 한 것이다.

 

<Now and Here>란 직역하면 <지금 그리고 여기>인데, 이것이 바로 인생살이 그 자체가 아닐까, 생각한다. 여기에 액자 하나를 걸었다. <天時不如地理 地理不如人和>

 

유교의 경전인 사서(四書, 대학. 중용. 논어. 맹자) 중에 맹자(公孫丑 章句下, 공손추는 제나라 사람으로 맹자의 제자)에 나오는 <천시불여지리 지리불여인화(天時不如地理 地理不如人和)라는 명구(名句)를 넣었다.

 

해석하면, 天時地利 그리고 人和가 나라를 지키고 군사를 쓰는데, 즉 업적을 올리는데 혹은 인생을 사는데, 세 가지 요소인바, 천시보다는 지리가 지리보다는 인화가 중요하다는 말이리라. 즉 자연보다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뜻이리라. 사상의 중요성을 말함이리라.

 

우리 성남시지부의 직원들은 여건이나 사무소의 위치를 탓하기보다는 인화가 먼저라는 생각에서 이런 간판을 달았다. 당시 그만큼 인화가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

 

탁구대와 휴식 공간을 마련한 것은 사비(私費)로 한 일이다. 당시 나는 성남상공회의소가 위탁하는 모 대학 경영대학원에 등록하여 1년 정도 적을 두고, 공부도 하고 여행도 한 바 있었는데, 그 비용을 본부에서 예산으로 지원해 주었다.

 

그것은 내 개인에게 준 돈이라기보다는 우리 성남지부에 지원해 준 것으로 생각되어, 그래서 나도 성남지부에 무언가 기여(寄與)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그 고마운 마음의 표시로, 이런 시설을 한 것이다. 직원들부터 만족시켜야 고객도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이다. 고객 응대는 직원들이 하기 때문이다.

 

또한, 직원들을 만족시킬 더 좋은 방법을 찾아보았다. 먼저 생일이 떠올랐다. 그래서 생일을 챙기기로 했다. 어떻게? 매월 첫 생일이 도래하는 직원의 생일에, 그달에 생일이 있는 직원들을 모아놓고 책 한 권씩을 선물하기로 하였다. 책이래야 읽기에 가벼운 수필집 정도였다고 기억한다.

 

물론 사비로 한 일이다. 이 일은 내가 은퇴한 후 남양농협에 상임이사로 선임되어 근무할 때도 계속하였다. 그것이 상사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공사를 마친 후 역대 지부장들을 모시고 자축연을 가졌다. 초대 지부장님을 비롯하여 칠팔 분이 자리를 함께하였다. 이 자리에서 두 분이 과거의 잘잘못을 따지면서 멱살잡이까지 가는 비시가 붙었다. 잘못하다가는 분위기를 깰 정도였다.

 

나는 이분들을 말리려고 나도 모르게 큰 소리가 나왔다. “은퇴하고 나면 모두가 과거고, 모든 게 내 탓이라는데, 어찌 지부장님들께서 남 탓을 하십니까?”, 그러고는 서로 늙어 가면서 조금씩 양보하며 사시는 게 좋을 것이라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속마음은 알 수가 없었지만, 그분들은 그제야 서로 악수하고 수그러들었다.

 

그즈음인 20041129일에 우리나라 시인 세계의 거목인 김춘수 교수께서 향년 82세로 성남시 분당의 서울대 분당병원에서 타계하였다. 그는 경남 통영 출신으로 일본 니혼대학교를 중퇴하고, 통영중학교 교사로 출발하여 경북대학교와 영남대학교의 교수, 그리고 11대 국회의원을 지낸 분이다.

 

그는 전두환 대통령 시절에 대통령을 찬양한 시를 지은 흠결이 있지만, 시인으로서는 독보적인 존재였다. 그는 한국 현대 시() 3대 흐름 중에 한 흐름을 대표하는 시인이었다. 특히 그의 시 <>은 내가 좋아하는 시다. 여기 옛날을 생각하며 소개한다.

 

/ 김춘수(1922~2004)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이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전문-

 

나는 꽃이라는 시를 직원회의 석상에서 낭독하였다. 시가 원래 그렇듯이 읽을수록 알듯 말 듯 하면서 처절하다. 그 후 은퇴하고 제주도에서 올레길을 걸을 때, 하얀 눈 위에 떨어진 동백의 그 붉은 꽃잎이 너무도 처절한 모습을 보았다. 그래서 시인의 꽃은 아마도 동백이었을 것이라 짐작한다. 12)-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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