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초에, 성남 지부장으로 부임한 이후 나는 업적관리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 업적이 인생을 좌우한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시청의 간부 직원들을 비롯한, 관내 국회의원(당시 3명)과 시 의원(43명?)의 관리(?)가 나의 주 업무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분들의 생일을 챙기고, 가끔은 함께 식사도 하고, 때로는 각급 체육대회나 <한중우호 증진>,<한미교류 협력> 등 시장이 주관하는 여러 행사장에도 참석하는 등 분주하게 살았다.
그 결과 그해 상반기 평가에서 종합업적 1위를 차지했다. 업적평가에는 종합업적과 부분 업적이 있었는데, 종합업적은 모든 업적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것이고, 부분 업적은 각 사업 부분별로 평가하는 업적이다. 종합업적 1위를 한 것은 <시금고> 예금이 큰 역할을 했다.
당시 성남시는 판교 신도시 추진이 한창이었다. 그해에 금고 예금(약 2조 원, 총예금은 4조 원으로 기억)이 가파른 곡선으로 성장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언제나 예산은 먼저 내려오고 집행은 나중에 이루어지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다음에 지부장이 노력해야 할 부분이 기관장 모임이다. 당시 성남시의 기관장 모임은, 법원 지원장과 검찰 지청장을 고문으로 하고 시장을 회장으로 농협 지부장을 간사로 시의회 의장. 교육장. 3개 경찰서장. 소방서장. 세무서장. 기무부대장. 우체국장. 상공회의소 회장. 한전 지점장. 근로복지공단 이사장 등 모두 28인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명칭은 성남시 기관장 친목회, 약칭으로 <성목회>라 하였다.
모임은 매월 한번 개최하였으며, 농협 지부장이 간사를 맡은 것은 간사가 회비를 관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금융기관의 지점장은 기관장 모임에 참여치 못했다.
지청장과 지원장은 모임에 거의 참석하지 않았다. 그분들은 바쁘기도 하겠지만, 기관장 모임에 참석하는 것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리라. 당시 지원장은 기억에 없는데, 지청장은 임기 3년 중에 세 사람과 같이했고, 차례로 이봉희. 이한성. 황교안(존칭 생략)이었는데, 이한성 청장은 국회의원을 지냈고, 황 청장은 한나라당 대표를 역임했다.
한번은 기관장 모임 자리에서 성남시 금고 얘기가 화제에 올랐다. 어느 기관장이 농협은 모 시중은행(당시 국민은행)보다 점포 수도 적은데, 성남 같이 큰 지역에서 <시금고>를 특정 은행에만 독점 거래하는 것은 불공평하니, 복수로 거래해야 한다는 여론이 많다고 하자,
그때, 시장이 나에게 물었다.
“농협이 금고를 관리한 지가 얼마나 되었나요?”
“네, 성남시가 생긴 1973년 이래로 농협이 담당했습니다.”
“그래요? 그러면 농협이 금고를 맡은 이후 무슨 금고 관련 사고가 있었나요?”
시장은 나에게 재차 물었다.
“아닙니다. 아직 한 번도 금고 문제로 사고는 물론이고, 말썽이 생긴 일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 금고를 다른 은행으로 옮겨야 한다는 소리가 들리나요? 잘하고 있는 은행을 두고 다른 은행으로 옮겨야 한다는 것 자체가 특혜 아닌가요? 나는 그것이 특혜라고 생각해요. 문제없이 잘하고 있는 금고를 이리저리 옮긴다면 또 다른 특혜 의혹이 생겨요. 그대로 두는 것이 옳습니다.”
참으로 명쾌한 답변이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타 은행에서 금고 문제로 시장을 찾아가 애걸복걸한 사실이 있었고, 심지어는 은행장까지 지방으로 다니면서 금고 유치를 독려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만큼 행정기관의 금고 계약은 총칼 없는 전쟁이었다.
여기서 잠깐, 금고 계약 이야기를 이어 가보면, 금고 계약 조건에는 시민들의 이용 편리성이 상당한 점수를 차지하는데, 시민들의 편리성에는 은행의 지점 수가 큰 영향을 차지하는바, 농협이 모 은행에 비해 적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점포 수를 계산 함에 있어, 지역농협(참고로 농협에는 지역농협과 중앙회 농협이 있었다)을 전체 농협의 점포 수에 포함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의 논란인데,
농협의 입장은 당연히 지역농협도 농협이니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이고 타 은행들은 포함하면 안 된다는 주장이다. 타 은행 주장 근거는 지역농협은 제1금융권이 아니라는 것이고, 농협의 주장은 지역농협도 제1금융권은 아니지만, 엄연한 금융기관이니 포함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아무튼 사소한 문제지만 금고 유치가 그만큼 치열한 전쟁터와 같다는 것을 반증하는 사례다. 아마 지금도 그럴 것이다. 당시 국민은행 점포가 중앙회보다는 많았지만, 지역농협을 포함하면 농협이 더 많았다. 농협의 총점포수는 서른여섯 개였고, 국민은행은 이십여 개였다.
그래서 나는 점포 수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점포 신설에 주력하였다. 그 결과 2004년 5월에는 <성남공단출장소>를, 6월에는 <서현기업금융지점>을, 9월에는 <분당정자역지점>을 개설하였다. 이로써 중앙회 점포만 열여섯 개에서 열아홉 개 지점으로 늘었다. 이후에도 점포 개설을 계속 추진하였다.
금고 예금을 농협에 전속시킨 것은 군사혁명(?) 시대의 산물이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산업화와 농업의 중요성을 동시에 인식한 사람이었다. 농협이 잘되어야 농촌이 잘 살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중앙부처는 물론이고 지방의 모든 금고를 농협과 거래하라는 지시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것이 정권이 바뀌어도 상당 기간 이어져 오고 있으니 다른 금융기관에서는 불만이 많을 것이다. 지금은 많이 달라져서 완전 경쟁 시대가 되었지만,……,
참고로 당시 시장은 한나라당 소속이었다. 이듬해(2005년) 5월 9일 한나라당 당 대표인 박근혜 의원이 성남시를 방문하였다. 그 자리에는 한나라당 국회의원과 도의원들이, 민간인으로 상공회의소 회장과 내가 동석하였고, 시장의 현안 설명과 박근혜 대표의 인사가 있었다.
기타 토의 시간에, 나는 한나라당의 농정에 대한 철학이나 비전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박근혜 대표는 그렇지 않다고 반박했다. 약간의 설전이 오갔으나, 나는 더 이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괜히 분위기를 깰 필요까지는 없었고, 설사 얘기하여도 큰 변화를 기대할 수 없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장은 금고 문제만큼은 확실하였다. 한나라당 소속이기 때문에 시 금고를 농협에 맡겨야 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시장은 시끄러운 것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고 게다가 농촌 출신이었고, 농업에 대한 평소 애정이 남다른 인물이었다. 그것이 금고에 대한 당신의 평소 소신으로 굳어졌을 것이다.
당시 농협 성남시청출장소를 비롯한 성남시지부의 여러 직원의 역할도 매우 컸으며, 그래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때 같이 근무하며 고생했던 직원들(특히 점포 개설 업무 담당 직원인 이대호 팀장, 정운수 과장 등)이 모임을 만들었다. 그 이름을 <열성회>라 했는데, 열심히! 영원히! 성남을 사랑하자는 뜻으로 <열성회>로 지었다. <열성회>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나는 농협에 만 39년을 근무하는 동안에 5년간(감사 수반으로 3년, 실장으로 2년)을 감사실에서 근무하였지만, 연속으로 만 3년을 근무한 곳은 성남이 유일하다. 그래서 성남이 가장 애착이 가고, 그래서 그 시절이 행복한 순간들이었고, 그래서 감사하게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오늘이 마침 22대 국회의원 선거일인데, 내가 살고 있는 산청보다 더 성남시 국회의원 후보자들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끝으로 고인이 되신 당시 이대엽 성남시장님의 명복을 빌면서, 이 글을 마친다. 감사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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