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희망에 가슴이 풍선처럼 부풀었다. 지난 7년 동안 고향에서 흙만 파먹은 보람이 있다. 가끔 읍내에 나가면 사회적 신분에 쪼금은 쫄 때가 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에게는 일류은행에 다니는 든든한 두 친구가 있기 때문이다.
하기야 그도 은행 다니는 두 놈보다는 못 미치겠지만 촌놈치고는 성공 대열에 들어섰다고 자부하고 있다. 그 두 놈은 워낙 수재들이라 초등학교 때부터 전교 1등을 서로 주고받은 친구들이니 이들과는 비교하기가 곤란하다.
아무튼 두 친구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했고, 그놈들 공부시키려고 부모님들이 등골이 빠지도록 고생했으니. 그리하여 그 어렵다는 은행에 당당히 취업하였으니, 소 팔고 논 팔아 공부시킨 보람이 있었다.
영수도 머리가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취미가 학문보다는 실용 쪽이었다. 그래서 고2 겨울 방학 때 대학이냐, 창업이냐를 두고 방문을 걸어 잠그고 한 달 동안을 고민한 적이 있었다.
그가 대학을 망설인 까닭은 첫째가 가정 사정이었고 다음이 졸업 후의 거취 문제 때문이었다. 부모님 등골 빠지고 소 팔고 논 팔아 공부해서 대학 졸업해도 반반한 직장에 취업하는 사람은 졸업자들의 반(半)도 안 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그가 그 반도 안 되는 부류에 들 것이라는 예감이 있어 대학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이런 사회 현상을 우려했을 뿐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가 대견스러웠다.
수천만 원에 달하는 등록금과 4년이라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기 때문이다. 그 돈과 시간이면 다른 무엇이라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대학 4년이 모두 허무하다는 말은 결단코 아니었다.
어느 것이 참 인생을 사는 길인가를 깊이 고민했을 따름이었다. 그때 영수가 느낀 바는, 인생에 있어서 참으로 어려운 문제는 주관식이나 사지선다형이 아니라 바로 오 엑스 문제라는 사실이었다. 대학이냐? 창업이냐? 그것이 문제였다.
결국 그는 고민과 고민을 거듭한 끝에, 창업하기로 의지를 잡았다. 기업만이 창업인가 농업도 엄연한 창업이었다.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아버님의 유언을 따른 셈이다.
어머니와 그는 얼마 안 되는 밭을 팔고 조합에서 수천만 원의 융자도 받아 산골짝 임야를 사서 개간하기 시작하였다. 그것이 오늘의 이 과수원으로 발전했다.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그는 경우와 지영이한테 카톡을 날렸다.
*야! 오늘 신문 잘 봐라. 은행원들 구속되었더라. 그럴 리 없지만, 조심들 하여라. 영수가*
한참을 지나니 두 놈이 꼭 같이 *야. 인마. 너나 잘해* 카톡이 “카톡~카톡”하고 울렸다. 오냐, 그러면 안심이다. 하여간 너희들, *추석에 빈손으로 오지 말고 내 선물 꼭 챙겨 오너라. 부탁한다.* 그는 재차 카톡을 보냈다.
두 놈은 설, 추석 명절 때 고향에 올 적마다 그의 선물은 빼 먹지 않았다. 금 년 구정 때는 그 비싼 <조니 워커> 그것도 <브루> 한 병씩을 그에게 선물로 주고 갔다. 그놈들은 영수에게는 금쪽같은 친구들이다. -계속-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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