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청산골
*해외투자 부실로 백두 은행 도산 위기. 은행원 등 7명 구속 수사*
아침 신문을 읽고 있던 영수는 사회면 머리기사에 신경이 쓰였다. 더 읽어 보자.
<수조 원 대의 외화 상품이 부실화되어 은행이 도산 위기에 처해있다. 검찰에서는 은행원들이 외국 채권을 매입하면서 브로커의 사기에 놀아난 결과로 보고 수사를 계속하고 있다. 검찰은 또 은행 고위층과 내부통제 관련자는 물론, 금감원 등 감독기관에 대해서도 공모나 직무 유기가 있었는지 수사를 확대키로 하였다>
아하, 또, 터졌구나. 왜 이러지. 이 친구들. 지난해에는 수백억 원어치의 시딘(CD)가 뭔가를 가지고 해외로 날라 세상을 시끄럽게 하더니. 심심하면 터지는 은행사고를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은행이 망하든지 은행원이 구속되든지 말든지 관여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그가 은행원들의 구속에 신경이 쓰이는 이유는 단 한 가지, 같은 동네의 영웅이자, 그의 고추 친구 두 놈 때문이다.
은행 사고가 신문에 날 때마다 그는 그놈들도 언젠가는 당하지 않을까 하는 예감이 좋지 않아서이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그는 그런 일만은 막아야 한다는 사명감에서 은행 사고에 민감해졌다.
은행이란 돈을 만지는 곳이 아닌가. 자본주의 사회이니 돈이 최고지. 돈을 주무르니 그놈들의 대우도 최고라고 한다. 그래서 세간에서는 은행이란 신이 내린 직장이라는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다. 사실이 그런 모양이다.
경우 녀석만 하더라도 지난해에는 옛집을 헐고 아주 <삐까뻔쩍한> 집 한 채를 지어 부모님께 크게 효도 한 번 하지 않았는가. 그 친구가 은행에 들어간 지 겨우 4년째다. 그 짧은 기간에 수억대 돈을 모았으니 참으로 훌륭하다. 그렇게 대우 좋은 회사가 어디에 있다고 사고를 치는지 영수는 한심하다 못해 안타까웠다.
오늘 그는 과수원에 풀베기 작업을 마무리하는 날이라, 낫 두 자루를 숫돌에 갈아 날을 세웠다. 물론 키 큰 풀이야 예취기로 작업이 가능하지만, 잔풀이나 돌 속에 파묻혀 있는 풀은 낫으로 베어 주어야 깔끔하다.
며칠 전에 태풍이 지나가더니 이제 더위도 한풀 꺾였고 가끔은 시원한 바람도 불었다. 뒷산 깊숙이 숨어 있는 과수원에는 홍옥이 제법 붉은 빛을 띠기 시작한다.
초봄에 적과(摘果)를 열심히 해 준 결과로 과실이 실하게 영글었다. 열매가 너무 많이 달려 속아 주는 일을 왜 적과라 하는지 그는 알 수 없었다. <속과>라 하면 이해하기도 쉽고 좋으련만.
추석이 열흘 정도 남았으니 그 전에 초물(初物)을 공판장에 내놓으면 상품(上品)이 될 것이다. 청산골은 해발이 높아 일교차가 크다. 그래서 당도가 높다. 그러니 품질도 좋다.
그가 제대하고 이곳에 임야를 사서 사과나무를 심은 지가 올해로 7년째다. 그동안 과목이 잘 자라 주어서 기분이 좋았다. 그 결과 땅을 살 때 빌린 조합 채무를 지난해에 드디어 탈(脫) 빚 할 수 있었다.
여기서 조합이란 그가 조합원으로 가입한 갑산농업협동조합을 말한다. 농사지은 지 6년 만에 그의 명의로 과수원 3천 평이 고스란히 남았다. 올해 농사도 평년작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아마 년 말이면 목돈을 예금 할 수 있을 것이다. 만년 마이너스 통장만 내밀든 그도 예금 통장에 8단위 아라비아 숫자의 잔액이 있게 될 것이고, 그러면 조합의 미스 노(盧)도 그를 보는 눈이 달라지겠지. -계속-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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