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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역에서> 6

단편소설

by 웅석봉1 2024. 3. 3.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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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사랑에 빠지는 듯하더니 1년이 지나니 사랑보다는 인생에 더 깊이 빠지고 있었어요. 사랑도 힘든데 인생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당신은 안고 있었어요. 내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당신을 보면서. 방황하는 당신을 보면서 때로는 밥도 못 넘기는 당신을 보면서……,

 

내가 당신에게 해줄 것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고민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나는 당신에게 그렇게 내가 경멸했던 아양도 떨어보고, 어떤 날은 일부러 자정을 넘겨 귀가하기도 해보고, 머리 모양도 바꿔보고 하였지만, 당신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지요.

 

당신의 심연은 오히려 더 깊어만 갔지요. 결국 나는 당신을 나의 새장에서 풀어주는 길만이 유일한 길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내 마음을 결정하고 나니 내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 없었어요.

 

드디어 어젯밤. 당신이 하려는 그 말들. 그 말을 내가 당신의 입으로 듣는 것은 차마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렇게 당신에게 당신이 나에게 하시고자 한 그 말을 받아 당신이 듣고자 하는 나의 대답을 하겠어요.

 

이제 당신의 새로운 인생을 찾아 떠나가세요. 망설이면 늦어집니다. 떠나세요. 혹시라도, 은선이와 은우는 걱정하지 말아요. 이제 애들도 다 컸어요. 이미 그들도 알고 있는 일이에요.

 

이 집은 내 명의지만 처분하는 대로 당신 몫을 보내 드리겠어요. 그리고 이혼서류는 당신의 인감증명서 1통만 발급받아 주시고, 여기 동봉한 이혼 합의서에 서명하여 주시면 내가 알아서 처리하겠어요.

 

이혼이란 너무 싶게 생각해서도 안 되지만 너무 어렵게 생각할 일만도 아니어요. 오늘도 5백 쌍이 넘은 사람들이 여러 저러한 이유로 이혼하고 있어요. 이혼은 이제 인생의 멍에가 아니라 그 일부분이 되었어요.

 

우리가 이혼하더라도 당신과 내가 한 가지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어요. 그것은 우리는 서로가 싫어서 헤어지는 게 아니어요. 우리는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지는 거지요. 그러니 서로 미워하지 말아요. 그것이 우리의 운명인지도 몰라요.

 

운명! 누군가는 운명 같은 것은 없다고 단언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운명은 있다고 믿어요. 운명이 없으면 우연은 어떻게 설명할 수가 있겠어요. 그 어느 날 우리가 용산역에서 홀연히 만난 것은 우연이 아니고 무엇이던가요.

 

사랑하는 당신.

 

당신과 함께한 수많은 시간, 참 행복했었어요. 그리고 당신. 그동안 고마웠어요. 이제 어디에서, 어느 하늘 아래서 무엇을 하시든지 늘 당신께 신의 가호가 함께 하시길 빌겠어요. 마음 편히 떠나세요. 사랑하는 당신이여…… 은선이 엄마가.

 

이것이 은선이 엄마가 나에게 보낸 편지야, 읽어줘서 고맙고,……, -계속-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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