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2022년 11월 19일 자에
어머니에 대한 일상을 「고집쟁이 인생」이란 제목으로 블로그에 올린 글인데
뼈대를 다시 짜고 살도 붙이고 제목도 바꿔서 더 구체적으로 올립니다.
「여자의 일생」
나는 갑술생(1934년) 개띠해에, 딸만 넷인 집안에 맏이로 태어났지요.
소학교 다니다가 해방되자 학교 그만두고
아버지가 운영하던 서당에 좀 다녔고요.
처녀 적에는 영민(英敏)하다고 소문난 억척이었고
방년 십육 세(1949년)에 결혼하고 이듬해에 첫아들 임신하고 바로
남편(24세)이란 작자는 군(軍, 동란)에 끌려가더니,
여편네를 얻어서 딴살림 차려 버렸지요.
그 후 나는 남부끄러운 일이지만,
어쩔 수 없이 지게 지는 남장 여인이 되었고
남편 복 없다고 군담이나 듣던 *임촌댁이 되었소.
가진 것 없이 혼자 살려니 찢어지도록 가난했는데
가난도 가난이지만 더 견디기 힘든 것은
동지섣달 긴긴밤에 독수공방 지내려니 장딴지가 성할 리가 있었겠소!
그런 와중에 가끔 찾아준 미운 남편 덕에 아들 하나와 딸 하나를 더 얻었소,
이제는 모두 장성하여 장가들고 시집도 보냈지요.
딸은 막내인데 착한 사위 만나 내 옆에서 나를 봉양하며 살고
아들 둘은 때때로 찾아주니 감사하지요.
나는 산청에서 태어나 장남을 따라 부산과 김해를 거쳐
다시 산청으로 돌아와서 13년째 살고 있다오
산청으로 와서는 봄이면 텃밭에서 참깨. 들깨와
상추. 고추. 가지. 토마토. 오이도 키우면서 화초도 가꾸지요.
키운 작물을 나도 먹고 자식들과 이웃에 나누며 살아가고요.
여기서 문제는 참깨와 들깨가 헛갈리지요.
참깨는 기름만이 목적인데 들깨는 기름도 좋고 잎도 좋지만,
나는 들깨보다는 참깨를 한참 더 선호하지요.
따지고 보면 기름은 참기름이나 들기름이나 거기서 거기이긴 하다만…
거짓을 죽어라 싫어하고 오직 참만을 좋아하는
나의 참(眞)사랑 사상,……,오직 진실! 그런 내 고집을 누가 꺾으리오
참깨를 말릴 때면 날아 앉는 비둘기들과 대화를 나누지요
“비둘기야, 비둘기야. 쪼매만 묵고 가거라.
니도 묵고, 나도 묵어야재, 나무 관세음보살”
한편 나는 요즘 몸이 많이 쑤셔요.
쑤신다는 것은 담이 붙는다는 다른 말이고요.
담이 붙었다는 것은 그만큼 근육이 없다는 것이고
근육이 없다는 말은 다른 말로 뼈가 약하다는 뜻이겠지요.
구순을 지나니 어디 성한 곳이 있을까만은
왠지 그 말이 아들딸의 잘못으로 다가온 듯하여
때로는 일 나가는 내 손을 부여잡고 일 그만하시라고 사정도 해보지만
나는 들을 수 없고요. 고집불통 나를 이길 수는 없지요.
늙을수록 늘어나는 내 고집을 누가 막으리오
몸을 괴롭혀야 건강한 것은 만고의 진리 아니겠소
듣고 보니 일리가 있는 말씀이라고 아들딸들은 고개를 꺼덕거려요.
그래서 수년 전부터는 일 그만하시란 말보다
“노모님 알아서 하세요”가 요즘 자식들의 이구동성이지요.
또한, 경우(境遇)에 없는 말을 하면, 시어머니도 나를 어쩌지 못하는 성격이었다오.
아니 나 보고 덜된 사람들은, 별나다고 손가락질하는 거 내 다 안다만
내 살아온 과거지사를 생각해 보우, 보시다시피 나는 특별한 삶을 살았지요.
내만큼 귀하게 태어나서 고생하며 천(賤)하게 산 사람이 조선천지에 어디 있겠소.
사람들은 개가(改嫁)하면 되지 뭔 소리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어림없는 말씀
일부종사(一夫從事)는 전래의 법도요, 팔자소관 아니겠소, 그렇게 알고 살았지요.
그래도 요즘은 세상이 많이 좋아졌지요.
다달이 연금도 나오고 복지도 많이 낳아졌고요.
그렇지만 나는 근검절약이 몸에 배어서 전기도 아껴야 하고
기름도 아껴야 하고 휴지도 아껴야 하고, 심지어 공짜인 *물까지도 아껴 써야 한다오.
이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겠소, 안 그래요? 세상 사람들요.
오늘도 텃밭을 가꾸는 나를 *망운당(望雲堂) 마님이라 하지요
망운당이라, 짓고 보니 참한 이름이지요. 구름을 바라보는 집이라, 참말이라
여기서 보면 저 멀리 구름 너머로 천왕봉이 바로 보이기도 하지만
그 뜻이 망운지정(望雲之情)이라, 효도에 있다고 하니 가히 기특하지요. 감사하지요.
살면서 세간에는 남편 복 없는 년이 아들 복도 없다고 하더이다 만
나는 그것은 수긍하기 어렵소, 참말이오,
아들 둘은 은퇴하고 잘살고 있고, 막내딸은 직장생활 잘하고 있소
여기서 장손(長孫) 자랑 하나만 하면, 그 잘나가던 신문사 기자 그만두고
수년 전에 미국 가서 사업한다는데,
그 나라는 세계에서 제일 잘 산다는데
그런 곳에서 사업을 하려면 노력을 많이 해야 할 텐데……
내가 도울 일은 아무리 찾아도 없으니, 그저 잘되기를 빌 뿐이지요.
각설하고, 말썽 많던 지아비는 2007년에 먼저 하늘나라로 올라가고
큰동생은 안타깝게도 나보다 먼저 저세상으로 갔다만
남아있는 이웃한 두 동생과
부처님께 절하면서 생이 다하는 날까지 그렇게 살려고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임촌댁(林村宅)은 내가 ‘임촌’이란 마을에서 태어났다고 붙여진 나의 택호.
*물(水)은 지하수를 파서 전기로 퍼 올리지만 물 자체는 공짜.
*망운당(望雲堂)은 큰아들이 퇴직하고 큰며느리가 마련한 안식처이자 나의 당호.
※첨언 하면, 수년 전 코로나로 곤혹스러워하셨는데 요즘은 원기를 회복하시고 즐겁게 사시는 모습에 자식 된 도리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시길 빕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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