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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3-1

서평

by 웅석봉1 2024. 1. 26.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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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소설 유토피아는 토마스 모아(1478~1535)의 대표작이자 근대소설의 효시다. 가상의 섬나라 유토피아공화국의 정치·사회·종교·풍습 등을 리얼(Real)하게 표현한 공상 소설이자 사회 비판 소설이다.

 

유토피아는 그리스어로 없다라는 의미의 ou-장소를 뜻하는 topos-를 합성한 단어다. “어디에도 없는 그런 곳이라는 뜻이다. 바로 실현하기는 어려우나 소망스러운 곳이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하겠다. 오늘날 유토피아하면 모두가 완벽한 이상향을 뜻하는 일반명사로 굳어졌다.

 

소설유토피아1516년 원제 최상의 공화국과 새로운 섬 유토피아에 관하여로 라틴어로 출간되며 1518년 수정되었다. 그 후 작가의 사후 16년이 지난 1551년에 랄프 로빈슨(1520~1577)에 의하여 최초로 영국에서 영문으로 번역되었고, 가장 일반적으로 인용되는 번역본은 길버트 버넷(1643~1715)에 의하여 1684년에 출간되어 오늘에 이른다.

 

작가는 1478년 런던에서 판사의 아들로 태어나 명문 <세인트앤소니> 학교와 옥스퍼드대학(중퇴), 링컨법학원에 다녔으며 1501년 변호사가 된다. 1505년 결혼하여 네 자녀를 두었다. 아내는 넷째 아들을 출산하면서 사망하였고, 곧 연상의 미망인과 재혼하여 독실한 신앙과 청렴한 생활로 자녀 교육에 모범을 보였다.

 

그는 26세의 젊은 나이에 의회에 진출했으나 헨리 7(1457~1509)의 과도한 조세부담에 반대하여 의원직을 사퇴한다. 그 후, 헨리 8(1491~1547)의 즉위로 공직에 다시 나선 이래 1510년 런던 대리집정관(부시장)을 시작으로 재무장관. 하원의장. 랭커스터의 상서령에 이어 1529년 대법관이 된다.

 

그는 또 플랑드르 통상 조약 개정을 위한 협상 대표로 출국하여 좋은 성과를 거두어 헨리 8세의 신임을 받았고 그 시기에(1515) 유토피아2권의 주요 부문을 저술했으며, 1권은 귀국한 후에 완성하였다.

 

그는 청빈과 공명정대한 법 집행으로 명성을 얻었으며 헨리 8세의 충실한 신하로서 소임을 다 한다. 그러던 그가 1532년 헨리 8세가 로마 가톨릭을 탈퇴하고 왕비와 이혼하자 이에 반대하여 대법관직을 사임한다. 당시로서는 상상을 초월한 소신 있는 행동이었다.

 

그 후 헨리 8세와 새 왕비 앤 불린의 결혼에 반대하여 왕비 즉위식에 불참하고, 앤 불린의 아들이 왕위를 계승한다는 왕위 계승법에 서명하기를 거부함으로써 결국 권력의 칼날을 잡게 되어. 이어서 런던탑에 구금된다.

 

런던탑에서 그는 유명한 신앙서 시련과 위안을 저술하였으며, 1535년 재판에서 반역죄로 사형선고를 받아 그해 76일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다. 그는 사형 집행장에서 내 수염은 죄가 없으니 자르지 마라.’ ‘내 목은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라는 말로 죽음에 이르러서도 유머와 여유를 잃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나는 왕의 좋은 신하로 죽지만 그보다 먼저 하느님의 착한 종이다.” 그는 죽음으로서 신앙과 진실과 지조를 지켰다.

 

그와 절친인 에라스무스 (1469~1536) 그는 눈보다 순결한 영혼을 가진 사람이었다. 영국은 과거에도 그리고 이후에도 그와 같은 천재를 다시는 발견 할 수는 없을 것이다.”라고 애도 했다. 로마 교황(비오 11)청은 그의 사후 400년이 지난 1935520일 모아에게 성인의 칭호를 부여했다.

 

그의 저서로는 피코 델라 미란돌라 전(1510).유토피아,(1516) 미완의 저서 리처드 3세전등이 있다.

 

유토피아<토머스 모아>의 국가관이자 사회관이다. 당시 영국은 봉건 체제가 무너지고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싹트기 시작한 때였다. 1권에 나오는 양이 사람을 잡아 먹는다는 표현은 그 당시 영국 사회의 병폐를 한마디로 집약한 유명한 말이다.

 

엔클로저 운동으로 농촌은 사라지고 농민은 도시빈민으로 내몰렸다. 반면에 수익이 많아진 귀족, 사제는 사치와 낭비로 허우적거렸다. 이런 현실을 보고 그는 고뇌했다. 돈이 그 사회를 지배하지 않는,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이 존중되는 사회를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그 가능성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이 풍자소설을 쓴 것이다.

 

토머스 모아의 이러한 사상은 당시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그리고 신대륙 발견이 크게 작용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유토피아의 중요성은 그 이상에 있다기보다는 그 비판성에 있다 하겠다. 르네상스의 대표주자 에라스무스는 모든 정치적 악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가를 알고자 하려면 유토피아를 읽으라.”고 절규하였다. (3-1)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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