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요.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는 게 문제겠소? 우선 헤어 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
그의 목소리에는 진실한 열정이 담겨 있었다. 나도 모르게 감명을 받았다. 그의 마음속에서 들끓고 있는 어떤 격렬한 힘이 내게로 전해오는 것 같았다. 매우 강렬하고 압도적인 어떤 힘이,
다시 말하자면 저항을 무력하게 하면서 꼼작할 수 없도록 그를 사로잡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정말이지 그는 악마에게라도 사로잡혀 있는 것 같았다. 악마가 느닷없이 달려들어 그를 갈가리 찢어 놓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천연덕스러웠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나의 눈길을 받고도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이라면 낡은 노퍽재킷 차림에 허름한 중절모를 쓰고 앉아있는 그를 어떻게 볼까 궁금했다.
바지는 헐렁하고 손은 더러웠다. 수염을 깎지 않아 더부룩한 붉은 턱, 작은 눈, 커다랗고 공격적인 코, 이것들이 다 투박하고 상스럽기만 하다. 입은 큼지막하고 입술은 두껍고 육감적이다. 정말이지, 참으로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다.
“부인께 안 돌아가시겠단 말인가요?” 마침내 내가 물었다.
“절대 안 돌아가오”
“부인께서는 다 없던 일로 하고 새로 출발하실 수 있다고 하던데요. 아무런 탓도 하지 않으시고요”
“멋대로 하시라지”
“사람들이 비열한 인간이라고 욕해도 괜찮단 말인가요? 부인과 아이들이 비렁뱅이로 놀아도 상관없고요?”
“상관없소.” (69쪽)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것은 대체로 자신을 속이는 말이다. 그 말은 아무도 자신의 기벽을 모르리라 생각하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한다는 것을 뜻할 뿐이다.
또한 기껏해야 자기가 이웃의 지지를 받기 때문에 다수의 의견과는 반대로 행동하고 싶다는 뜻을 나타낼 뿐이다.
자기가 속한 집단의 경향이 탈인습적이라면 세상 사람의 눈에 자신도 쉽사리 탈인습적으로 비치기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터무니없는 자존심을 가지게 된다. 위험부담 없이 용기 있는 행동을 함으로써 자기만족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75~76쪽)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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