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릴 때마다 한잔」
포장 술집에는 두 꾼이, 멀리 뒷산에는 단풍 쓴 나무들이 가을비에 흔들린다 흔들려, 흔들릴 때마다 독하게 한잔씩, 도무지 취하기 않는 막걸리에서 막걸리로, 소주에서 소주로 한 얼굴을 더 쓰고 다시 소주로,
꾼 옆에는 반쯤 죽은 주모가 살아 있는 참새를 굽고 있다 한 놈은 너고 한 놈은 나다, 접시 위에 차례로 놓이는 날개를 씹으며, 꾼 옆에도 꾼이 판 없이 떠도는 마음에 또 한잔, 젖은 담배에 몇 번이나 성냥불을 댕긴다. 이제부터 시작이야,
포장 사이로 나간 길은 빗속에 흐늘흐늘 이리저리 풀리고, 풀린 꾼들은 빈 술병들에도 얽히며 술집 밖으로 사라진다. 가뭇한 연기처럼 사라져야 별수 없이, 다만 다 같이 풀리는 기쁨, 멀리 뒷산에는 문득 나무들이 손 쳐들고 일어서서 단풍을 털고 있다.
감태준의 <흔들릴 때마다 한 잔> 전문
<어설픈 해설>
가을비 내리는 어느 오후 두 사내가 포장마차에 들어선다. 그 포장마차에는 반쯤 늙어서 비틀어진 주모가 갓 잡은 참새를 굽는다. 주모가 주모다워 술맛이 난다.
밖에는 가을비가 가슬가슬 내리니, 단풍나무들이 바람에 흔들흔들 흔들린다. 흔들리는 것은 단풍나무뿐이 아니다. 두 사내도 흔들린다. 흔들리면서 막걸리를 마신다. 소주도 마신다.
밖에 내리는 비에 담배가 젖었는지 몇 번이나 성냥을 당겨야 겨우 불이 붙는다. 그래 이제부터 시작이야, 포장 사이로 난 길은 빗속에 흐늘흐늘 풀리는데,
풀린 술꾼들은 술병들에 얽히면서 이리저리 술집 밖으로 사라진다. 연기처럼 사라진다. 멀리 뒷산에 문득 나무들이 손 쳐들고 일어서서 살랑살랑 단풍을 털고 있나니…… 흔들릴 때마다 한잔씩 하면서.
<시인 소개>
감태준(1947~ ) 시인은 경남 마산 출신으로 서라벌예대 문창과를 졸업하고 1972년 《월간 문학》에 시 「내력」으로 등단, 《현대문학》 편집장과 주간, 중앙대 교수. 한국시인협회 회장 역임.
시집으로 『몸 바뀐 사람들』, 『마음이 불어 가는 쪽』, 『마음의 집 한 채』, 등이 있으며, 저서로 『이용학 시 연구』, 『한국 현대 시 감상』 등이 있음.
녹원 문학상. 한국시인 협회상. 윤동주 문학상. 한국 잡지 언론상 등을 수상함. 《나무위키》, 《위키백과》 등 참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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